작성일 : 15-03-30 13:03
후쿠자와 유키치 다시보기 (11): 국가 간의 이(理)와 이(利)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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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 다시보기(11): 국가 간의 이(理)와 이(利)

1. 국가 간의 자연 상태

지난 회에 검토했듯이 후쿠자와에게 공리주의란 개인의 이익추구의 경쟁을 장려하는 원리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추구를 권리로서 보장하고, 그것이 사실상의 권력관계나 공동체적 압력에 의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주장이었다. 애초에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행복추구를 사회전체의 행복의 향상과 조화시키려 하는 지향성을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개개의 지知를 충분하게 연마하여 자기의 행복추구에 대해서 충분하게 이성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면, 그 지향성이 명확한 것이 되어 그에 의해 자기의 판단을 음미하고, 욕망을 규율하게 된다고 후쿠자와는 생각했다. 개인의 권리를 단지 자기보존의 욕구와 동일시하지 않았던 셈이다. 후쿠자와의 논리구성에는 서양의 도덕학의 직접적인 인용뿐 아니라, 주자학적 논리를 도입하려 했던 의사가 현저하다. 개개의 이기적인 행복추구가 예정조화적으로 사회전체의 행복의 총량을 늘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사람들의 사회성의 완성을 목표로 함에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후쿠자와는 이성적인 자기 권리의 보전이 타자의 권리보장과 조화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원리가 국가관의 이해대립이나 경쟁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후쿠자와는 막부 말기에 출간한 『서양사정』「초편」(1866년) 및 「외편」(이것은 챔버스의 경제학서로부터의 번역이 주를 이루고 있다. 1868년)에서 freedom, right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그것을 「자주자유自主自由」, 「통의通義」라는 용어로 번역하면서, 개인의 권리가 실력의 강약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고 논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자와가 국제관계의 현상을 논할 때는 동시대 외교론의 기조와 거의 똑같이, 오로지 자국의 생존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연 상태로 취급한 경우가 많다.

『서양사정』「외편」의 「각국교제」의 장은 Chambers’s Educational Course, Political Economy for Use in Schools, and for Private Instruction(1852년)의 “Intercourse with nations with each other”라는 장을 번역한 것인데,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각국이 자립하여, 그 본국을 지키고, 그 영토를 잃지 않는 것은 많은 경우 병력에 의해서이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각국이 서로 쟁탈할 걱정이 없으나,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침략과 약탈에 끝이 없다. 특히 문명의 발전이 늦은 미개한 나라에서는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가 없고, 전쟁에 의한 해독이 극심하다. 타인에게서 해를 입는 자는 자기 친구들을 모아 자력으로 복수하는 수밖에 없다. 속담에도 있듯이, 힘이 있는 자는 이치가 아닌 것을 이치로 바꾸고, 힘이 없는 자는 해를 입는다는 말 그대로이다. 문명개화의 가르침이 점점 세상에 퍼져나가 제도 법률이 차츰 명확해지면, 이러한 폐해도 그에 따라 그치겠지만, 각국 교제의 현상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낡은 시대에 야만적인 민족끼리가 필부의 용맹함(『맹자』 양혜왕편에 있는 말. 어리석은 자가 혈기에 날뛰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다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현재 문명이 발달했다는 나라에서도 자칫하면 전쟁을 벌여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탕진해 그 해가 막대함이 극심한데, 실로 한숨이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을 정도다.

이 글은 번역문이기는 하지만, 이후의 후쿠자와가 국제정치관에서도 계속되는 논조를 보여주고 있다. 

후쿠자와가 서양문명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상세하게 논한 『문명론 개략』(1875년)에 다음과 같은 기술이 있다.

전쟁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재앙이지만, 서양각국은 지금까지도 항상 전쟁을 계속해 왔다. 도적, 살인이 인간이 행하는 커다란 악행이지만, 서양각국에서도 물건을 훔치는 자가 있고 사람을 죽이는 자가 있다. 국내에도 당파를 이루어 권력을 다투는 자가 있고, 또 그것에 패하여 불평을 말하는 자가 있다. 하물며 국가들이 서로 관계하는 방식에 이르러서는 권모술수가 더욱 만연해있다. 단지 널리 전체를 조망하면 대개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지, 결코 현재의 상태를 보아 이것이 곧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향후 수천수백 년이 경과하여 세계인민의 지혜와 덕이 크게 진전하고, 태평안락의 극한에 도달하는 일이 혹시 있다면, 현재 서양각국의 상태를 보고, 그 야만성을 애처롭게 여겨 마음이 아플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문명의 발달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서양각국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문명론 개략』 1권)

또 『맹자』나 『논어』를 언급하면서 기묘한 해석을 피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통속국권론』(1878년) 제7장 「외전外戰이 부득이한 경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맹자, 사 권, 고자편(『맹자』 고자장 구상 제10장을 가리킨다.)에서의 의義와 생生 둘을 겸할 수는 없다.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는 논의가 있는데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지금의 금수와 같은 세계에 거하여 최후에 호소할 수 있는 도道는 필사必死의 짐승의 힘뿐이다. 이 말인즉슨 도道에는 두 가지 도가 있어서 죽이는 쪽과 죽임을 당하는 쪽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거짓(=엉터리)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서 『맹자』의 원문은 「孟子曰、魚、我所欲也。熊掌、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舍魚而取熊掌者也。生、亦我所欲也。義、亦我所欲也。二者不可得兼、舍生而取義者也」인데, 생선과 곰발바닥 어느 쪽도 맛있지만 양쪽 다 취할 수 없다면 곰발바닥을 취하는 것처럼, 생生과 의義도 양쪽을 얻을 수 없다면 의를 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주희의 『집주』에 의하면 ‘생生을 바라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生을 바라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의리의 양심이라는 것이다.’라는 이해가 통상 독자들의 마음에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또 ‘도에는 두 가지 도가 있어’라는 부분은 『논어』안연 제12권 19장의 「季康子問政於孔子曰。如殺無道。以就有道。何如。孔子對曰。子爲政。焉用殺。子欲善而民善矣。君子之徳風。小人之徳草。草上之風必偃」를 가리키는 듯하다. 『논어』에 ‘만일 무도한 자를 죽여서 도를 실현할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라는 이강자의 물음이 있는데, 이에 대해 공자는 ‘군자가 정政을 이룸에 어찌하여 죽임이 있겠는가. 군자가 선을 바라면 민民은 선이 된다. 군자의 덕이 바람과 같은 것이라면 소인의 덕은 풀이 된다. 풀에 바람이 불면 분명 풀은 나부끼기 마련이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자와가 이를 인용하며 제시한 것은 ‘생生’과 ‘의義’ 가운데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살기 위해 ‘의義’나 ‘도道’를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논어論語』나 『맹자孟子』에 익숙한 독자는 놀랄 것이다. 

『통속국권론通俗國權論』의 위와 같은 별난, 『맹자』・『논어』 인용에 이어지는 것이 아래의 유명한 구절이다. 

한 몸 처세의 길이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만국교제의 길도 또한 이와 다를 리 없다. 화친조약이나 만국공법이라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말이지만, 단지 외면상의 의식儀式과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외교의 현실은 권위를 다투어 이익을 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고금의 사실을 보면 빈약하고 무지한 소국이 조약과 만국공법에 의지해 독립이라는 체면을 유지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소국만이 아니라 대국과 대국 간에도 서로 대립하여 상대의 틈을 노리다가 조그마한 틈이라도 엿보이면 이를 결코 놓치는 일이 없다. 상대의 틈을 발견했는데도 그것을 내지르지 않는 경우는 단지 상대보다 병력이 약한 경우일 뿐이다. 이러한 방식이 아니라 외교로 살아남는 방법은 없다. 백 권의 만국공법이 있어도, 대포 몇 문에 미치지 못한다. 책권이나 되는 화친조약으로도 한 바구니 탄약에 미치지 못한다. 대포, 탄약은 이미 확립된 도리를 주장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있지도 않은 도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기계이다. 

이러한 언급은 또 있다. 약 15년 후의 저작인 『시사소언時事小言』(1881년)에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갖는 ‘권리’를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힘’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골육(=친족)간에도 관계가 어느 정도 멀고 서로의 권리가 거의 대등한 경우에는 서로를 정情으로서 대하지 않는다. 하물며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에서 서로를 정으로서 대하는 일은 더욱 없다. 나라와 나라 사이는 극도로 먼 인연이라서 조금이라도 친근한 정과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당당하게 권리의 동등함을 주장하며, 서로 간에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고, 서로와 다투고 서로를 범하는데, 권리 주장도 이제는 진력이 난다고 할 정도가 되어야 그러한 다툼이 겨우 그치게 된다. 이러니 국가 간의 교제에 정을 가지고 대처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에 의지할 수 없다고 한다면 국가는 무엇으로써 타국을 대할 수 있을까? 정의 반대는 힘이다. 외국교제의 근본은 완력이라 해도 좋다. 옛날에는 이 완력이라고 하면 정말로 사람 팔뚝으로 하는 싸움을 가리켰겠지만, 인간의 지혜가 개명한 오늘날에는 팔뚝 대신 기계를 사용해서 혹은 팔뚝으로 기계를 사용해, 이 기계로 사람 죽이는 것을 발명했다. 이것이 곧 군함, 총포다. 나라를 지키는 데에는 사람 죽이는 기계가 필요하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병兵은 흉기가 되고 전쟁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했지만(1), 이러한 주의로 인해 병기를 폐하고 전쟁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이 말은 단지, 함부로 병력을 가지고 희롱하여서는 안 된다는 훈계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만국과 대등하게 맞서는 한 나라로서 그 나라를 보호하여 타국의 멸시를 막고, 또 타국을 두려워 엎드리게 하기 위해 군함, 총포를 갖추어 육해군 병력의 준비를 엄중히 하는 것은 봉건시대의 무사가 검을 차는 것과 같은 일이다. (『시사소언』 제4편 「국권이라는 것」) 

여기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서로의 ‘권리’ 존중이 아니라, 단지 자기의 실력이다. ‘정’과 ‘권리’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는 ‘권리’가 친소의 감정과 구별되어야 하고, 이성에 의거한 규범의 요청이기 때문이 아니다. ‘권리’는 오로지 ‘힘’에 의해서만 뒷받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쿠자와가 여기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홉스적인 자연 상태로서, 거기서 ‘권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홉스적 자연권, 즉 각자가 자기보존을 위해 각자의 힘을 행사할 권리가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권리란 실력의 차이와 상관없이 주장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국제관계에서는 포기하고, 개인들 사이에서라면 모르지만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그런 입장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중적인 잣대 사용을 보여주고 있다.

2. 군사경쟁의 최적조건

혹시 ‘권리’란 그럴듯하게 포장된 투쟁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후쿠자와의 생각이라면 ‘자유’에 대한 생각은 또 어떠했을까?

후쿠자와는 『통속국권론』 등에서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정치체제에서야말로 사람들의 ‘애국심’(patriotism의 번역어)이 발달하고, ‘국권’도 강화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즉 적어도 국내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을 기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론兵論』(1882년)이라는 저작에서는 다른 주장을 하였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현재 중국군의 부진함을 보고, 중국인을 문약하다고 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인이 약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병기가 약한 것이다. 군대의 편제방식이 약한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군장비의 정밀함과 대오편제隊伍編制의 우수함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 인물의 강약은 그 후에 생각해야 할 요소이다. 
중국인을 문약하다고 보고, 이를 멸시하는 것이 대개 일본 무인과 같은 자들의 평가이나 타당성은 없다. 또 정치학자들의 평가라는 것도 중국인을 경멸하는 경우가 많지만, 설득력이 없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병兵을 강화하여 나라를 지키려면 민심의 일치가 필요하며, 민심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정치사상을 품어, 자발적으로 호국의 염念을 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중국의 정치풍속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실, 즉 전제정부 하에서 오히려 강병强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치학자들의 이론은 이른바 부유腐儒(=쓸모 없는 학자)의 이론이며 현실을 보려하지 않는 자의 의견이다. 일국의 영원 대계를 목적으로 삼고 백년의 경세經世를 관찰한다면 이런 이론도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국병마의 일은 백년 앞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압제정부의 병兵에서도 강한 자가 승리하고, 약한 자가 패배하기 마련이다. 강약은 군인의 수, 병기의 정밀함, 대오편제의 우수함, 국가자본의 풍부함만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지극히 압제적인 군주이지만, 병력이 매우 강하여, 그 압제 정치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고 그 병력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군으로 유럽을 유린한 것은 나폴레옹의 정치가 자유관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근년에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프로이센에게 패배한 것은 프랑스의 정치가 압제정치이고 프로이센의 정치가 자유정치였기 때문이 아니다. 

즉, 나라의 강함을 위해서라면 ‘자유’보다는 ‘압제정치’가 더 적절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독립이 국가의 독립을 뒷받침한다는 후쿠자와의 지금까지의 주장이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 『병론兵論』이 쓰인 것은 조선에서 일어난 군사 반란, 즉 일본대사관 습격 사건이 벌어진 이른바 임오군란에 대해 청나라가 ‘속국’인 조선의 보호를 위해 파병을 결단하고, 일본이 그것에 위기감을 느껴 조선에 제물포조약을 강요했던 시기이다. 청나라는 ‘부진하기’는커녕 조선에서 일본보다도 군사적인 우위에 있었다. 일본은 이 시점에서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교섭에 의해 조선에 영향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보면 후쿠자와의 논의는 일본 국내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실제적 영향력을 배제하는 이론적 근거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인정해버리는 결과를 낳고 만다. 조선은 독립국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은 도의적으로 그것을 지원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일본으로서는 군사적 영향력의 크기와 상관없이 청나라를 견제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압제정부의 군대이든 자유정부의 군대이든 상관없이 강한 자가 승리하고, 약한 자가 패배하기 마련이다.’라는 말은 막부 말기부터 일관되게 후쿠자와의 저작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아시아를 ‘문명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과 모순될 뿐 아니라, 실제로 자국이 군사력에서 열세일 때에 이익을 빼앗기거나 손해를 입어도 어쩔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제언으로서도 이런 주장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모순에 대해 후쿠자와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현재로서 충분하게 ‘문명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는 변명 같은 논의가 등장한다. 

세계의 인민이 현재 매일매일 문명화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단지 입으로만 문명을 주창하고 도리를 주장하는 자들도 적잖이 있다. 만국공법이란 것도 이 문명화의 결과인데, 어쩌면 세계인민의 공의여론은 문명이라고 주창하면서 어느 정도 병력의 폭동을 제지하는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 공의여론의 세력은 아직도 분명하지가 않아서 일국의 내부 여론에서 주장되는 (정치적 정당성에 관한) 대의명분 등의 논의와 함께 이야기할 바가 아니다. 대개 세계 어느 나라도 전쟁에 이기면 반드시 그 명분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패배하면 반드시 죄명을 뒤집어쓴다. 명분이 바르고 그 이후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승리하면 그 때문에 명분의 바름을 얻게 된다. 따라서 나는 오늘날 세계의 나라간 전쟁이 시작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명분의 정당성을 미리 따져 묻거나 하지 않는다. 승패가 정해진 다음에 그 승패의 소식과 함께 개전開戰의 명분이 무엇이 되었든 정당화된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만년의 후쿠자와는 더욱 노골적으로 국가 간 관계에서 도덕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일시동인一視同仁(옮긴이 주 : 신분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인애仁愛를 베풂), 사해형제 등을 주창하고, ‘대동’주의를 논한 걸출한 인물들이 몇 안 되기는 해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바람을 말한 것일 따름이지 실행불가능한 주장이다. 오히려 현실은 그와 정반대여서, 일시동인은 무시되고, 세계의 ‘형제’들은 서로를 대함에,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고, 죽이지 않으면 죽임당하는 짐승 같은 무대극을 연출하는 것이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적 운명이었다. 따라서 현대의 입국立國 원리를 논하는 자가 외교나 국방을 지칭할 때는 이른바 정당방위의 필요에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짐승에게는 짐승과 같은 방법으로 응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해야지 일시동인을 입에 올리는 것은 어리석다 하겠다. 현대는 ‘생존경쟁’이라는 네 글자를 입국의 격언이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세계의 인문이 미개한 탓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개인의 죄는 아니다. 현대 세계는 ‘짐승들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짐승들 세상에서 서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한, 그 수단의 미추를 선택할 만한 여유는 없다. 혹 ‘권리의무’나 ‘동맹의협同盟義俠’이라는 것도, 이른바 만국공법이 허락하는 한에서 외양만을 꾸민 것이지 그 내실에서 단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일 따름이다. (『복옹백여화福翁百餘話』 1901년)

이 장 첫머리에 소개된 『서양사정』에서 ‘각국교제의 상태’은 아직 야만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던 견해를 다시 반복하고 있는 듯한 발언이다. 이는 결국 후쿠자와의 자유주의적인 정치론이 현실 세계의 민족주의 열기에 대해 무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 회에서 그러한 사태에 이르는 후쿠자와의 사고 구조에 대해 일보 진전된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주>
(1)『노자』 31장, 「兵者不祥之器、非君子之器。不得已而用之、恬惔爲上。勝而不美。而美之者、是樂殺人。夫樂殺人者、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을 인용하였다. 무기는 불길한 것으로서 군자가 지녀야 할 것이 아니며,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쓰는 일이 있다 해도, 승리를 기뻐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4, 2015년 4월, 마츠다 고이치로(松田宏一郎), 일본 릿쿄대학 법학부 교수; 고양국제고등학교 교사 윤채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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