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2-26 12:29
도란도란(圖蘭道欄) [7]: 몸으로 '학문하기'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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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圖蘭道欄) [7]: 몸으로 '학문하기'

공자는 며칠 전에 당한 봉변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음 지었다. “허허, 열자(列子) 그 사람도 참 …. 그건 아는 것이 아닌데, 안다는 것은 그런 유가 아닌데….” 그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 저간의 사정은 이러했다. 

꼬마들에게 농락당한 공자

공자는 여느 때처럼 제자들과 함께 산책 차 길을 나섰다. 명상도 하고 제자들과 담론도 나누다가 언뜻 길가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아이를 보았다. 애들은 으레 싸우는 거지 하며 무심코 지나치던 그는 바람결에 들려온 말소리에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섰다. 

아이 1 : 해는 아침에 가장 가깝고 낮에 가장 멀어. 봐,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보이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이잖아. 막 떴을 때 해가 가장 크게 보이니까 해는 아침에 가장 가까운 거야. 
아이 2 : 천만의 말씀! 해는 점심 때 가장 가깝고 아침에는 오히려 가장 멀어. 봐봐, 난로에 가까이 갈수록 더워지고 멀어질수록 추워지잖아. 아침에는 서늘하고 낮에는 따뜻하니까 해는 낮에 가장 가까이 있는 거야. 

호기심이 문제였다. 평소 이런 유의 논쟁을 멀리했던 지라 무심히 지나치려 했지만 타고난 호기심이 발동돼 공자는 그만 갈 길도 잊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 아이들은, 그가 공자란 걸 알아차리고는 누가 옳은지를 물었다. 순간 박학다식함 그 자체였던 공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돌았다. ‘그냥 가던 길이나 갈 것을…’ 후회도 잠시, 그의 눈에는 비아냥 기 가득한 아이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그리고 비수같이 꽂혀오는 말, “누가 당신더러 아는 게 많다고 하던가요?”

이 일화는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에 나오는 얘기이다. 공자보다 한참 후학인 열자는 여느 도가(道家)들처럼 천진무구한 아이를 가상으로 내세워 주요 논적 공자와 그의 추종자들을 몰아세웠던 것이다. “당신들! 많이 안다고 자부하던데, 당신들이 참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

‘뜻을 두다’와 ‘사랑하다’의 차이

앎, 나아가 진리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의 주된 화두의 하나였다. 서구의 경우, 이에 대한 탐구는 진리로서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나 그 본질을  규명하는 작업 및 그것을 진리라고 인식하는 과정의 논리적 정합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왔다. 이는 기본적으로 진리란 것이 인식 주체인 ‘나’의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이뤄진 것이었다. 진리는 일종의 개념적 실체로서 그렇게 ‘명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공자는, “내가 인(仁)하고자 하는 순간 인에 도달해있다.”는 언명이 환기하듯, 진리란 인식 주체인 ‘나’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싹을 틔우려 볍씨를 물속에 넣으면 볍씨에 물이 스며들어, 볍씨 안에 물이 있고 동시에 물 안에 볍씨가 있게 되는 것처럼, 진리란 ‘나’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속에 있고 내 안에 그것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는 진리 그 자체에 대한 규명이나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의 논리적 정합성이 주된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진리 안에 있고 진리가 내 안에 있는 한 진리는 나의 일부를 이루는 자명한 것이기에, 그것은 내가 자각하고 실천해야 할 대상이지 그것 자체의 본질이나 논리적 구조 등을 따져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자에게 있어 진리, 나아가 앎의 문제는 오로지 실천의 문제였다. 그가 제시한 최고의 앎인 “천명을 아는[知天命]” 경지에 이르기 위해 밟아야 하는 단계를 보면 온통 실천적 강령으로 채워져 있다. 나이 열다섯이 되면 “학문에 뜻을 두어야[志於學]” 하고, 삼십이 되면 “사회적으로 자각적인 존재로 서야[立]” 하며, 마흔이 되면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미혹되지 않아야[不惑]”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알기 위해 앞서 해야 할 것은 이처럼 도덕적 결단이요 윤리적 실천이었다. 서구처럼 “지혜를 사랑한다.(필로소피아)”가 아니라 “학문에 뜻을 둔다.”고 언명했으니, ‘학문하기’의 사회성과 윤리성을 한층 도드라지게 하고자 했음이었다. 

궁극적인 진리를 알고 난 다음에 도달하게 되는 경지 역시 도덕적으로 완성된 경지이지 단순히 지적으로만 완성된 경지가 아니었다. 육십이 되면 “어떤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耳順]” 되고, 칠십이 되면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도무지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나지 않게[從心所欲而不踰矩]” 되는 경지, 곧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경지였다. 공자의 눈에는 여기에 다다른 자가 비로소 최고의 철인(哲人)이었다. 

몸으로 하는 학문

하여 공자 보기에 내가 안다는 것은 내 몸이 할 줄 아는가의 여부로 보증될 수 있었다. 열자가 예시한 꼬마들은 모두 자기 몸으로 체험한 범위 내에서 앎의 일부를 알고 있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해가 가까이에 있는가의 여부는 윤리적 관심사 밖에 있었다. 따라서 공자의 눈에 그것은 처음부터 앎의 영역 밖에 있었을 따름이었다.

훗날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창했던 왕양명(王陽明)은 효를 예로 들어 안다는 것을, 앎이란 것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분명하게 답한 적이 있었다. 그는 공자처럼 행할 줄 알아야 비로소 아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제자 중 하나는 효를 행하지 않는 자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어도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효를 행치 못할 수도 있지 않느냐며 반론을 펼쳤다. 그러나 왕양명은 제자의 반문처럼, 효를 행하지 않는 자도 그것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추호도 인정하지 않았다. 할 줄 모르면 모르는 것이지, 머리로만 안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행할 줄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하는 생각은 허위의식이라는 것이다. 표현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식’과 ‘행동’의 통일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지행합일의 주장도 실은 그 둘이 나눌 수 없는 하나일 때만이 참된 ‘지’(앎)임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따라서 안다는 것은 결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앎의 시작에는 머리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해도, 앎을 완성하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이 하는 것이다. 식이 맞아도 답이 틀리면 모르는 게 되는 것처럼, 완성되지 않은 앎은 완전치 못한 앎이며 안다고 인정받지도 못한다. 

학문을 닦는다 함은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을 머리에만 간직하면 이룰 수 없듯이, 앎을 지향하는 마음은 몸으로 표현됐을 때 비로소 앎이 된다. “당신은 알고 있는가?” 아니, 이 질문은 이젠 이렇게 바뀌어야 하리라. “당신은 할 줄 아는가?”라고.

【관련 원문과 해석】

❍ 공자가 동쪽으로 유람을 다니다가 두 아이가 말다툼하는 것을 보고서 그 까닭을 물었다. 한 아이가 대답하였다. “저는 해가 처음 떠오를 때가 사람들로부터 가깝고 해가 중천에 올 때에는 멀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아이가 말하였다. “저는 해가 처음 떠오를 적에는 멀고 해가 중천에 왔을 때에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가 말하였다. “해가 처음 떠오를 적에는 크기가 수레 덮개와 같은데 해가 중천에 오면 곧 둥근 쟁반과 같아집니다. 이것은 먼 것은 작게 보이고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한 아이가 말하였다. “해가 처음 떠오를 적에는 싸늘하고 서늘한데 그 해가 중천에 오게 되면 끓는 국에 손을 넣은 것처럼 뜨겁습니다. 이것은 가까운 것은 뜨겁고 멀리 있는 것은 서늘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공자도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두 아이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누가 선생님이 지혜롭다고 하던가요?”(孔子東游, 見兩小兒辯鬪, 問其故. 一兒曰, “我以日始出時去人近, 而日中時遠也.” 一兒曰, “我以日初出遠, 而日中時近也.” 一兒曰, “日初出, 大如車蓋, 及日中則如盤盂. 此不爲遠者小而近者大乎.” 一兒曰, “日初出, 滄滄涼涼, 及其日中如探湯. 此不爲近者熱而遠者涼乎.” 孔子不能決也, 兩小兒笑曰, “孰謂汝多知乎.”) - <열자(列子)> 「탕문(湯問)」.

❍ 공자가 말했다. “인이 멀리 떨어져 있던가? 내가 인하고자 하는 순간 인에 도달하게 된다.”(子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 <논어(論語)> 「술이(述而)」.

❍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바로 섰다.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는 마음의 평정을 얻었다. 그리고 나이 일흔! 마음대로 행해도 도무지 법도에서 벗어나질 않았다.(子曰,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 <논어> 「위정(爲政)」.

❍ (왕양명의 제자) 서애가 아뢨다. “요새 사람들은 부모에게 마땅히 효성스러워야 하고 형에게 마땅히 공손해야 함을 알고 있어도 효를 행치 못하고 공손히 행할 수 없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앎과 행함은 분명히 분리된 것이지 않겠습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사사로운 욕망에 의해 절단되어 나뉜 것일 뿐 지행의 본체가 아니다. (…중략…) 어떤 이는 효를 알며 어떤 이는 공손함을 안다고 칭해지려면 반드시 그 사람이 이미 효를 행하고 공손함을 행했어야 비로소 그가 효를 알고 공손함을 안다고 칭해질 수 있게 된다.”(愛曰, “如今人儘有知得父當孝, 兄當弟者, 卻不能孝, 不能弟, 便是知與行分明是兩件.” 先生曰, “此已被私欲隔斷, 不是知行的本體了. (…中略…) 就如稱某人知孝, 某人知弟, 必是其人已曾行孝行弟, 方可稱他知孝知弟.”) - <전습록(傳習錄)> 권상(卷上).

❍ 앎은 행함의 시작이요 행함은 앎의 완성이다. 공자의 학문은 그저 하나의 공부였으니 지행은 두 가지 일로 나눌 수 없다.(知者行之始, 行者知之成. 聖學只一箇功夫, 知行不可分作兩事.)“ - <전습록> 권상.

이 글은 "지행합일――안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이라 제목으로 <사과나무> 2005년 2월호에 게재한 것을 수정한 것입니다. 이 저술에 대한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도란도란]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3, 2015년 3월,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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