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구절은 “큰 덕의 모습은, 오직 도만이 이에 따른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또한 “큰 덕의 모습은, 오직 도만을 옳다고 인정하여 따른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구절만 보고서는 과연 노자가 어떠한 의도로 이렇게 말한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노자는 다음 구절에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숨겨놓았다.
38-7: 故失道而後德,失德而後仁,失仁而後義,失義而後禮。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에 비로소 덕이 있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있으며, 인을 잃은 후에 의가 있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있다.
그러므로 상위개념인 도 즉 태평성대의 통치이념이 사라지게 되면 그 하위개념인 덕이 나타나고, 덕이 사라지면 그 하위개념인 인이 나타나며, 인이 사라지면 그 하위개념인 의가 나타나고, 의가 사라지면 마지막으로 예가 나타난다.
결국 노자는 21장의 첫 구절에서 “아름다운 덕의 모습은, 오로지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의 통치이념인 도를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거니와, 나아가 ‘도’ 바로 밑의 하위개념은 ‘덕’이 됨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이러한 개념을 근거로 하여, 다음의 구절을 풀이해보자.
42-1: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앞에서 이미 박(樸)은 오로지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순일(純一)한 덕(德)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이러한 덕은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의미하므로, 중(中)과 화(和)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삼(三)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덕경]의 67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67-4: 我有三寶,持而保之。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어, 그것을 지키고 보호한다.
나에게는 이러한 태평성대의 통치이념을 지키고 보호하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
67-5: 一曰慈,二曰儉,三曰不敢為天下先。
첫 번째는 자애로움을 말하고, 두 번째는 검소함을 말하며, 세 번째는 감히 세상의 앞에 서지 않음을 말한다.
그 첫 번째는 지도자가 선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모두 포용하는 자애로운 태도이고, 두 번째는 사치와 향락에 빠지지 않고 검소한 태도이며, 세 번째는 백성들의 뜻을 자신의 뜻보다 앞에 놓는 겸손한 태도이다.
67-6: 慈, 故能勇; 儉, 故能廣; 不敢為天下先,故能成器長。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검소하기 때문에 넓힐 수 있으며; 감히 세상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에, 천하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은 자애로웠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고, 검소한 생활을 함으로써 덕을 쌓아 백성들의 신망을 얻었으며,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이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42-1은 이제 “태평성대의 통치이념은 순일한 덕을 낳고, 이러한 순일한 덕은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태도와 어느 누구하나 버리지 않고 함께 가는 태도를 낳으며, 이 둘은 다시 자애로움과 검소함 그리고 감히 세상의 앞에 나서지 않는 겸손함을 낳고, 셋에서 세상 만물이 파생되어 나오게 된 것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바꿔 말해서 노자는 “자애로움과 검소함 그리고 감히 세상의 앞에 나서지 않는 겸손함을 실천해야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태도 및 어느 누구하나 버리지 않고 함께 가는 조화로운 태도를 행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오로지 나라와 백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순일한 덕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태평성대의 통치이념인 도로 나아가게 된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이는 다름 아닌 “도를 이루는 구성요소들 간의 유기적인 조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도덕경] 28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28-7: 樸散則為器,聖人用之則為官長,故大制不割。
가공하지 않은 목재가 흩어지면 곧 도구가 되고, 성인이 그것을 이용하면 곧 백관의 수장이 되니, 그러므로 커다란 법도는 분할하지 않는다.
순일한 덕이 공정함과 조화로움의 둘을 낳고, 이 둘이 자애로움과 검소함 그리고 겸손함의 셋을 낳으며, 이 셋이 만물에 고루 퍼져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가 깨져서 도의 구성요소들을 조화롭게 운용하지 못하면 그 구성요소들이 흩어지게 되고, 그 흩어져버린 구성요소들 중 하나 혹은 몇몇 개만 실천하게 되면 태평성대를 이끈 성인들조차도 일개 관료밖에는 될 수 없다. 따라서 참된 지도자인 성인들은 이러한 도리를 이해하여 도의 구성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조화롭게 잘 실천하였기 때문에 모든 관료의 수장 즉 최고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니, 참된 지도자는 이러한 긴밀한 연계성을 나누지 않고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즉 중국은 예로부터 지도자를 세 계층으로 나누고 있으니, 정치를 담당하는 지도자를 대동사회의 지도자인 성인(聖人)과 소강사회의 지도자인 군자(君子) 그리고 실무담당 전문가인 그릇(기: 器)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성인이나 군자와 같은 지도자는 덕(德)을 행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뢰를 얻는데 주력해야 하는 반면, 실무담당 전문가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능력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인과 군자를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성인은 태초부터 존재했으므로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道)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대동사회의 지도자인 반면, 군자는 비록 성인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소강사회의 지도자를 일컫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의 구성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조화롭게 실천하지 못하고 하나 또는 몇몇 개만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들은 바로 그릇인 전문가가 된다.
이제 지금까지 설명한 개념들을 바탕으로 하여, 노자가 주장하는 도(道)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공자가 애공을 모시고 앉았다. 애공이 말하길: “감히 묻습니다. 사람의 도는 누구를 큰 것으로 여기오?” 공자가 엄정하게 낯빛을 고치고는 대답하여 이르길: “임금께서 이 말씀에 이르신 것은 백성들의 덕입니다. 진실로 신은 감히 사양치 않고 대답하겠습니다. 사람의 도는 정치를 큰 것으로 여깁니다.” (애)공이 말하기를: “감히 묻겠는데 어떤 것이 정치를 한다고 일컫는 것이오?” 공자가 대답하여 이르길: “정치는, 바로잡는 것입니다. 임금이 바르게 하면, 곧 백성들이 정치에 따릅니다. 임금의 행하는 바는, 백성들의 따르는 바입니다. [禮記(예기)] <哀公問(애공문)>
이를 정리해보자면, 人道(인도: 사람의 도)는 “바로잡는 것”이니 바로 예악제도로 절제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반면, 天道(천도: 하늘의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하늘이 부여한 천성에 따르는 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무위자연을 강조한 노자는 천도(天道)를 주장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러한 개념으로 다음에 열거하는 [도덕경]의 문장들을 살펴보면, 왜 노자가 이처럼 반복해서 천도(天道)를 언급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9-5: 功遂身退,天之道。
공을 이루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이처럼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은 공로를 세워도 그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겸손해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으니, 이는 지도자가 지켜야 할 하늘의 도리 즉 순리인 것이다.
47-1: 不出戶,知天下;不窺牖,見天道。
대문을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알 수 있고; 창밖을 보지 않아도 하늘의 도를 알 수 있다.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의 통치이념인 도를 진정으로 이해하면, 굳이 나아가 다른 것들을 보지 않아도 세상의 돌아가는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으니, 천성에 따라 무위로 다스리면 굳이 번거롭게 법률과 제도를 강화하여 일일이 관여하고 통제하지 않더라도, 백성들이 자신이 처한 바를 알고 만족하게 된다.
73-1: 勇於敢則殺,勇於不敢則活。
구태여 하려하면 곧 죽게 되고, 구태여 하려하지 않으면 곧 살게 된다.
지도자가 억지로 작위하여 제도로 억압하면, 곧 백성들이 등을 돌리게 되어 그 자리가 위태롭게 된다. 하지만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하면, 곧 백성들이 지도자를 따르기 때문에 그 자리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
73-2: 此兩者或利或害,天之所惡,孰知其故?
이 두 가지는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한데, 하늘이 싫어하는 것은, 누가 그 연유를 알겠는가?
억지로 작위하여 제도로 억압하는 것과 천성에 따라서 다스리는 것, 이 두 가지는 때론 복이 되기도 하고 때론 재앙이 되기도 하는데, 하늘이 싫어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어느 누가 알겠는가?
73-4: 天之道,不爭而善勝,不言而善應,不召而自來,繟然而善謀。
하늘의 도리는, 싸우지 않아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반응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느슨해도 일을 잘 꾸민다.
이처럼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 통치이념은, 자애로운 덕으로 감화시키기 때문에 싸우지 않아도 상대방이 복종하게 되고, 말이나 명령을 함부로 내리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이 알아서 지도자의 뜻에 화답하며, 굳이 소집하지 않아도 기꺼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오고, 법률이나 제도로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느슨한 것 같지만 오히려 일을 잘 도모한다.
73-5: 天網恢恢,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서, 성기지만 새지 않는다.
이처럼 하늘이 부여한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은 대단히 크고 넓어서, 법률과 제도로 통제하는 사회의 입장에서 언뜻 보기에는 엉성하고 부족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백성들의 뜻에 따라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원망이나 불만을 사지 않게 되어 나라를 오랫동안 평안하게 유지할 수 있다.
77-1: 天之道,其猶張弓與!
하늘의 도리는, 그것이 마치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다!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이란, 마치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서 여러 조건들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조준하고, 그런 후에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77-2: 高者抑之,下者舉之,有餘者損之,不足者補之。
높으면 그것을 낮추고, 낮으면 그것을 높여주며, 남으면 그것을 덜어주고, 부족하면 그것을 보충해준다.
조준한 것이 목표보다 높으면 낮춰주고, 낮으면 높여주며, 힘이 남으면 빼고, 부족하면 더해주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중(中: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중간 즉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과 “화(和: 어느 것 하나 소외됨이 없이 함께 어우러짐)”이다.
77-3: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하늘의 도리는,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함을 보충해준다.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은, 이처럼 남음이 있으면 그것을 덜어서 부족한 쪽으로 보충해주는 것이다.
79-4: 天道無親,常與善人。
하늘의 도리는 편애함이 없으니, 항상 선한 이와 함께 한다.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은 공정하고도 객관적이니, 항상 순일한 덕을 베푸는 지도자와 더불어 존재한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그럼으로써 타인을 위하니, 자기는 더욱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타인에게 베푸니, 자기는 더욱 넉넉해진다. 하늘의 도리는 이롭지 해가 되지 않고; 성인의 도리는 (타인을) 위하지 다투지 않는다.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은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고 끊임없이 베풀었으므로, 백성들이 그 지도자를 믿고 따르게 되어서, 그 자리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천성에 따르는 통치이념은 결코 어느 누구에게나 해롭지 않고, 이러한 통치이념은 백성들에게 순일한 덕을 베푸는 것이지 착취하는 것이 아니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노자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4, 2016년 4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