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4-24 16:49
노자 다시보기 (16): 天道(천도): 궁극의 大同(대동) (2)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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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다시보기 (16): 天道(천도): 궁극의 大同(대동) (2) 

그렇다면 천도(天道)는 과연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까? 노자는 [도덕경] 80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80-1: 小國寡民,使有什伯之器而不用,使民重死而不遠徙。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으면, 각양각색의 기물이 있어도 쓰지 않고, 백성들이 죽음을 중시하여 멀리 이사하지 않게 된다.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었던 태평성대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면, 백성들이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아서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지도자를 믿고 따르게 되니 굳이 목숨을 걸고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는다.

이는 사실상 지도자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로 보아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타지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이사를 가는 것은, 본래의 터전에 사는 것이 이렇듯 목숨을 걸고 타지로 이동하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지도자가 나라를 잘 다스림으로써 삶의 터전이 행복하다면, 굳이 목숨을 걸고 멀리 이사를 가겠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한 나라에서 타국으로 이민을 가려는 국민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나라 정세가 심각하게 우려할만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노자의 종합적이고도 뚜렷한 정치관이 드러나니 “소국과민”이다. 노자는 주나라의 사관(史官) 신분으로 삼황오제로부터 하(夏), 상(商), 주(周)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고, 이에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의 몰락을 직접 목도하고는 큰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이해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종합적인 통치이념을 제시한 것이다. 이제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堯曰:“嗟!四嶽:朕在位七十載,汝能庸命,踐朕位。”嶽應曰:“鄙德忝帝位。”堯曰:“悉舉貴戚及疏遠隱匿者。”衆皆言於堯曰:“有矜在民間,曰虞舜。”堯曰:“然,朕聞之。其何如?”嶽曰:“盲者子。父頑,母嚚,弟傲,能和以孝,烝烝治,不至奸。”堯曰:“吾其試哉。”於是堯妻之二女,觀其德於二女。
요임금이 말했다: “아, 사악이여! 짐이 재위한 지 70년인데, 그대는 천명을 변치 않게 할 수 있으니, 짐의 자리에 오르시오.” 사악이 대답했다: “덕이 낮아 임금 자리를 욕되게 할 것입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귀족이거나 관계가 먼 사람 숨어 사는 사람 모두를 천거해주시오.” 모두가 요임금에게 말했다: “민간에 홀아비가 있는데, 우순이라 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그러한가, 짐은 그에 대해 들었소. 그는 어떠하오?” 사악이 말했다: “장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완고하고, 어머니는 간사하며, 동생은 교만하지만, 능히 온화하게 부모님을 섬기고, 나아가 수양하니,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가 말했다: “내가 그를 시험해보겠소.” 이에 요는 두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어, 두 딸에게서 그의 덕을 살폈다. [史記(사기)] <五帝本紀(오제본기)> 

요임금이 인재를 천거하라고 하자 모두가 민간에 있는 홀아비인 순을 추천하였고, 이에 요임금은 그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다며 시험해보겠다고 하였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어떻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민간에 있는 홀아비의 이름조차도 들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점이다. 즉 위의 기록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듯이, 당시의 사회는 “소국과민”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임금일지라도 민간의 홀아비 이름조차 들을 수 있었던 것이고, 이때는 요임금이 태평성대를 이끌던 시대였으니 “소국과민”이 바로 “대동사회”를 가리키는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80-2: 雖有舟輿,無所乘之;雖有甲兵,無所陳之;使人復結繩而用之。
비록 배나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일이 없고, 비록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드러낼 일이 없으니; 사람들이 다시 끈으로 매듭지어 그것을 사용하게끔 한다. 

지도자가 덕치로 나라를 평온하게 하니, 백성들이 굳이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아서 배나 수레가 필요 없어지고, 서로 조화롭게 살게 되니 굳이 전쟁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므로, 백성들의 마음이 결승문자를 쓰던 상고의 시대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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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으로 매듭을 지어 사용한다는 것은 끈으로 매듭을 지어 기록한다는 뜻이니, 이는 다름 아닌 결승문자(結繩文字)를 뜻한다. 주지하다시피 결승문자는 새끼를 매듭지어 그 모양이나 수량으로 의사소통을 하던 문자로, 태고의 글자가 없었던 미개사회 즉 고대 페루나 중국에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태고의 중국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를 지칭하고 있는 것일까? 

한자(漢字)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기원은 통상 지금으로부터 대략 3천여 년 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갑골문(甲骨文)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갑골문은 1899년에 중국 안양현 소둔촌 즉 상(商)나라의 수도였던 지역의 폐허에서 발견된 것인데, 상나라는 은(殷)나라라고도 호칭하므로 이 지역을 은허(殷墟)라고 부른다. 따라서 갑골문이란 은허에서 발굴된 거북이의 배딱지인 귀갑(龜甲)과 짐승의 견갑골인 수골(獸骨)에 새겨진 중국의 고대 상형문자인데, 후대에 귀갑의 갑과 수골의 골을 합쳐서 갑골문이라고 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복희씨(伏羲氏)와 여와씨(女媧氏)가 인류를 창조한 이래, 농업을 보급한 신농씨(神農氏)까지를 삼황(三皇)으로 불러왔다. 이어서 황제(黃帝) 헌원(軒轅), 전욱(顓頊) 고양(高陽), 제곡(帝嚳) 고신(高辛), 제요(帝堯) 방훈(放勳) 그리고 제순(帝舜) 중화(重華)를 오제(五帝)라고 호칭함으로써, 이 삼황오제가 다스리던 시기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인 대동(大同: 태고~B.C. 2070)으로 여겨왔던 것이다. 대동사회의 주된 특징은 선양제(禪讓制)인데, 세습이 아닌 지도자의 인격과 행정능력만으로 그들의 지도자를 선출하였다.

하지만 순 임금의 뒤를 이은 우(禹) 임금이 하(夏: ~B.C. 1600)나라를 건립한 이래로, 선양제는 세습제(世襲制)로 바뀌고 세상은 점차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으니, 이 시기부터를 지도자들이 규율을 앞세워 스스로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백성들을 통제한 소강(小康)사회라고 부른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크게 대동과 소강 그리고 혼란기의 세 부분으로 나누게 되는데, 위에서 언급한 가장 이상적인 사회였던 대동 사회는 삼황오제를 끝으로 단절되지만, 소강사회는 각 왕조마다 현철한 임금과 신하들로 인해서 간혹 부활되는 모습들을 보였으니,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하나라 우 임금과 하나라의 뒤를 이은 商(상: ~B.C.1046)나라의 湯(탕) 임금, 그리고 상나라의 뒤를 이은 周(주: ~B.C. 770)나라의 文王(문왕)과 武王(무왕) 및 成王(성왕) 마지막으로 周公(주공)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중국의 한자(漢字)는 빨라야 상(商)나라 때 시작된 것이니, 이를 정리해보면 상나라 이전의 하(夏)나라 혹은 그 이전에는 다른 문자를 썼었다는 논리가 형성된다. 다시 말해서 노자가 말하는 결승문자를 쓰던 시기라 함은, 최소한 하나라 혹은 그 이전의 시대를 지칭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80-3: 甘其食,美其服,安其居,樂其俗,鄰國相望,雞犬之聲相聞,民至老死不相往來。
그 음식이 달고, 그 의복이 아름다워지며, 그 거처가 편안해지고, 그 풍속이 즐거워지며,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리게 되니, 백성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게 된다. 

백성들은 사리사욕이 없어져 만족함을 알게 되니, 기본적인 의식주생활에 대한 더 큰 욕망이 없어져서, 자신들의 생활이 더없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이웃한 나라끼리는 서로 존중하고 예우하여, 굳이 성곽을 쌓거나 그 주변에 못을 파서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경계할 필요가 없게 되니, 이에 세상이 평온해져서 상대방이 서로 바라다 보이고, 닭과 개 우는 소리까지도 다 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이 지도자를 믿고 따르며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데, 굳이 다른 곳으로 옮겨서 살 필요가 있겠는가? 따라서 백성들은 자신들의 천성을 다하며 즐겁게 살 뿐, 죽을 때까지 굳이 서로 왕래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여기서 그가 그리는 이상사회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이는 노자의 “도”가 바로 대동시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제 다음에서 “대동”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昔者仲尼與于蠟賓。事畢,出遊于觀之上,喟然而歎。仲尼之歎,蓋歎魯也。言偃在側,曰:"君子何歎?"孔子曰:"大道之行也,與三代之英,丘未之逮也,而有志焉。大道之行也,天下爲公。選賢與能,講信修睦。故人不獨親其親,不獨子其子。使老有所終,壯有所用,幼有所長,矜寡孤獨廢疾者皆有所養。男人分,女有歸。貨,惡其棄于地也,不必藏于己;力,惡其不出于身也,不必爲己。是故謀閉而不興,盜竊亂賊而不作。故外戶而不閉。是謂大同。
예전에 공자가 납빈(신들의 가호에 보답하기 위해 올리던 제사)에 참여했다. 일이 끝나고, 누각에 올라 둘러보고는, 길게 탄식을 하였다. 공자가 탄식한 것은, 아마도 노나라를 한탄한 것이리라. 언언이 곁에 있다가, 말했다: “군자(스승)께서는 어찌하여 탄식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큰 도가 실행될 때와, 삼대(夏, 商, 周)의 훌륭한 인물들이 정치를 하던 때는, 내가 이를 수 없었으나, 기록이 남아있다. 큰 도가 실행되던 때는, 세상이 公天下(공천하)였다. 어질고 재능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화목함을 갖췄다. (1)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버이만이 어버이가 아니었고, 자신의 자식만이 자식이 아니었다. 노인들로 하여금 귀속되는 바가 있게 하였고, 장년은 쓰임이 있었으며, 어린이들은 키워짐이 있었고, 늙어 부인이 없는 이, 늙어 남편이 없는 아낙, 부모 없는 아이, 자식이 없는 노인, 장애인들이 모두 부양받는 바가 있었다. 사내에게는 직분이 있었고, 아낙은 媤家(시가)가 있었다. 재물은, 땅에 버려지는 것을 싫어하였지만(지니고 싶어 하였지만), 반드시 자기가 소유하지는 않았고; 힘은, 자기 몸에서 나오지 않음을 싫어하였지만(자신이 직접 쓰려 하였지만), 반드시 자신을 위해서 쓰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계략이 막혀 일어나지 못하고, 도적이나 반란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밖의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이를 대동이라고 일컫는다. [禮記(예기)] <禮運(예운)>

여기서 우리는 먼저 “큰 도가 실행될 때와, 삼대(夏, 商, 周)의 훌륭한 인물들이 정치를 하던 때는, 내가 이를 수 없었으나, 기록이 남아있다. 큰 도가 실행되던 때는, 세상이 공천하(公天下)였다.”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즉 공자는 상고시대를 “대도(大道) 즉 큰 도가 실행되던 시대”와 “삼대(三代)”의 두 범주로 나누고 있으며, “큰 도가 실행되던 시대는 공천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최소한 노자와 공자의 “대동”에 대한 가치관은 분명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다음의 “어질고 재능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화목함을 갖췄다.”는 말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는 바로 중(中)”과 “화(和)”로 다스렸음을 뜻하는 것이니, 바로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들의 통치이념 즉 도(道)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천도(天道)는 다름 아닌 대도(大道)임을 알 수 있으니, 노자는 [도덕경]에서 다음과 같이 일관되게 대도(大道)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8-1: 大道廢,有仁義。
큰 도가 폐기되면, 인의가 출현한다.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인 커다란 도가 사라지면, 비로소 인과 의를 중시하는 소강사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25-3: 吾不知其名,字之曰道,強為之名曰大,大曰逝,逝曰遠,遠曰反。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데, 그것을 일컬어 “도”라고 하고, 그것에 억지로 이름을 붙이니 “대(크다)”라고 하는데, “대”라는 것은 지나감을 일컫고, 지나감은 멀어짐을 일컬으며, 멀어짐은 반대로 됨을 일컫는다.

나는 그러한 존재의 구체적인 이름을 알지 못하는데, 그 존재를 도 즉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이라고 일컫고, 그 존재에 굳이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크다고 하는데, 크다는 것은 지나치는 것이고, 지나치게 되면 멀어지는 것이며, 멀어지면 반대로 가까워지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도를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상식과 반대되는 대립면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자에게 있어서 대(大) 즉 “크다”는 개념은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에, 이처럼 말하는 것일까? 이제 그 개념을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자.

1. “도”라는 것은 대단히 크다.
2. “크다”라는 것은 작다는 기준을 초과한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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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크다는 것은 작다는 기준을 넘어서 지나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3. “작다”라는 기준을 넘어서 지나가게 되면, “작다”라는 기준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작다”라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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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기준을 넘어서 지나가면, 이는 본래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멀어지는 것이다.
4. 기준을 넘어서 지나가게 되면 기준에서는 멀어지게 되지만, 그것이 저 멀리 있는 대(大) 즉 “크다”라는 위치에서 보았을 때는 반대로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5. 따라서 “작다”라는 기준을 지나쳐서 멀어지면, 반대로 “크다”라는 “도”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백성들을 다스리려면 국민 위에 군림해야 한다.”는 도리는 작은 도리이니, 이 작은 개념을 지나쳐 멀어지게 되면 오히려 “백성들을 다스리려면 국민 밑에 처해야 한다.”는 큰 도리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34-1: 大道氾兮,其可左右。萬物恃之而生而不辭,功成不名有。衣養萬物而不為主, 常無欲,可名於小。萬物歸焉而不為主,可名為大。
큰 도는 두루 미치기 때문에, 그가 지배할 수 있다. 만물은 그에 의지하여 발생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을 이루지만 있다고 일컫지 않는다. 만물을 기르지만 스스로 주재한다고 여기지 않고, 늘 욕망이 없으니, 보잘것없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이 따르지만 스스로 주재자가 되지 않으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은 모든 만물에 퍼져있기 때문에,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릴 수 있다. 만물은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에 기대어 각자의 천성에 따르기 때문에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고, 나라를 오랫동안 평안하게 유지하지만 자신의 공로라고 자처하지 않는다. 세상 만물을 이끌지만 각자의 천성에 따르는 것일 뿐이기에 자신이 이끈다고 자만하지 않고, 오직 삼가고 노력하여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미약해 보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세상이 모두 대동의 통치이념을 따르지만 또 자기가 통제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진정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53-1: 使我介然有知,行於大道,唯施是畏。
나로 하여금 변하지 않는 앎이 있게 한다면, 큰 길을 걸음에 있어, 억지로 가함을 두려워 할 뿐이다. 

나에게 변치 않는 앎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동의 통치이념을 실천함에 있어서, 결코 천성을 거슬러서 법이나 제도 등으로 억지로 백성들을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53-2: 大道甚夷,而民好徑。
큰 길은 대단히 평탄한데, 사람들은 좁은 길을 좋아한다. 

대동의 통치이념은 각자 부여받은 천성에 따라 스스로 그러할 수 있도록 자애로운 덕으로 포용하는 것이라 평탄하고 평온한데,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법과 제도 등을 세분화하고 강화시켜서 억지로 백성들을 통제하려고 하니, 이는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주>
(1) 이는 바로 “中(중)”과 “和(화)”로 다스렸음을 뜻한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노자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5, 2016년 5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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