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01-01 09:20
동학 다시 보기 (10): 이돈화의 우주관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28,194  


동학 다시 보기 (10): 이돈화의 우주관

1.
20세기의 동학사상가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야뢰(夜雷) 이돈화(李敦化, 1884~1950?)이다. 이 인물은 아직까지 동학·천도교사상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그의 사상은 한국 현대철학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도 좋을 만큼 독특한 사상적 특징과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돈화는 1910~1940년대에 걸쳐 19세기의 동학 이론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재해석하고 재조명하는 저술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동양 전통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최제우·최시형의 사상을 기초로 삼으면서도 근대적 사상·관념을 수용하고 서양철학의 여러 개념 또한 적극 활용함으로써 동학의 사상적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했고 동학의 개념을 보다 명료하게 했다. 그의 이런 이론적 작업의 성과는 <인내천 요의(要義)>(1924), <수운심법강의>(1926), <신인철학>(1931), <동학지인생관(東學之人生觀)>(1945) 등에 집결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신인철학>에 가장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하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이돈화의 우주관, 인생관, 사회관 및 사회개혁론, 도덕관이 비교적 엄밀한 논리전개 속에서 체계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서양철학과 비교의 시야에서 동학이 지니는 의의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앞으로 4차례에 걸쳐 󰡔신인철학󰡕을 중심으로 이돈화의 우주관, 인간관, 사회관 및 도덕·종교에 관한 견해가 갖는 사상적 특징 및 의의를 이야기하려 한다. 본 편에서는 먼저 그의 우주관을 살펴보겠다.

2.
이돈화의 우주관이 지닌 첫 번째 특징은 우주를 신(神)과 등치시켰다는 데 있다. 우주는 곧 신이다. 그는 천도교의 신을 지칭하는 명칭인 한울 개념을 다음과 같이 재해석하여 이 명제의 타당성을 논증한다. 그는 우선 한울 개념에서 인격성을 거세시켰다. 

한울은 인격적 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분에 상대되는 전체, 소아(小我)에 상대되는 대아(大我)를 지칭한다. 종교적 측면에서 볼지라도 한울은 범신론적이고 만유신론(萬有神論)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신인철학>, 9-10쪽) 

앞서 손병희 대에 이르러 동학의 하늘님 개념에 내포된 인격신적 함의가 크게 약화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돈화가 한울의 인격성을 부정하고 천도교의 신관을 범신론적이라고 한 것 역시 손병희와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비록 그가 만년에 이러한 신관을 다시 수정하여 동학의 신관은 일신(一神)론적 다신(多神)관이라 하여(<동학지인생관>, 236쪽) 한울의 인격성을 복원시켰지만, 적어도 한울의 인격성을 부정함으로써 신과 우주를 일치시키는 것은 훨씬 용이해 보이며, 이는 하늘님을 어머니-자연과 거의 동일시한 최시형의 시각과도 매우 흡사하다.

한울이 부분에 상대되는 전체이고 소아에 상대되는 대아를 지칭한다는 말의 의미는 어원적인 측면에서 한울 개념을 분석하고 그것의 함의를 양과 질의 두 측면에서 규정하는 다음 발언을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우리말에 ‘큰길’을 ‘한길’이라 하고, ‘한아버지’를 ‘큰아버지’라 하는데, 이는 ‘한’과 ‘큼’의 의미가 동일함을 뜻한다. ‘울’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범위를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공간적인 측면에서 무궁한 범위와 시간적인 측면에서 삼계(三界)를 관통하는 범위의 총합인 우주 전체를 ‘울’이라고 한다. … 질적인 측면에서 ‘울’은 ‘우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 집’, ‘우리 민족’ ‘우리 인류’ 등과 같은 것이 그렇다. 여기서 ‘우리’란 나와 동류인 것을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울’은 곧 ‘큰 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자로 표현하면 ‘한울’은 곧 ‘대아’라는 뜻이다. (<신인철학>, 9쪽) 

한울은 ‘큰 울타리’라는 뜻을 지니므로, 양적으로 그것은 모든 시공간을 아우르는 우주 전체를 가리키고, 또 ‘울’과 ‘우리’라는 단어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가정 하에, 한울이라는 우주 안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긴밀히 관련을 맺고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질적으로 그것은 모든 개체가 우주적 개체, 즉 대아임을 가리킨다. 이렇게 모든 존재자를 우주적 존재로 규정하는 것 역시 동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사람, 나아가 천지만물이 모두 하늘님을 모신 존귀한 존재라는 최제우, 최시형의 생각이 그것이다. 

위와 같은 논증을 통해 이돈화는 우주와 신을 등치시켰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것은 그가 여전히 신, 즉 한울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최제우의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나 아닌가”(<龍潭遺嗣> 「興比歌」)라는 가사에서 한울의 무궁함을 초월성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무궁하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무기한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울은 시간을 초월한 무궁이며 자존(自存)이다.”(<신인철학>, 11쪽) 또 그는 최제우의 “대도(大道)가 하늘처럼 겁회(劫灰)를 벗어났다”(<東經大全> 「偶吟」)는 시구에서 대도는 한울의 본체적 성격을 가리키고 겁회는 현상계의 변화를 가리킨다고 보아, 이 구절을 “한울은 그 본체적 성격에서 근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풀이했다. 나아가 “한울은 어디까지나 절대적으로 자신이 자신의 원인이 되고 타자의 제한을 받지 않으므로 그것은 자율적 조화를 한다고 할 수 있다”(<신인철학> 11쪽)고 하여 한울이 초월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 또한 제시했다. 이렇게 그는 본체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서양철학의 관념을 한울의 속성을 설명하는 데 도입했지만, 한울이 자율적 조화(造化)를 행한다고 생각한 점에서 그의 한울 본체는 결코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니라 동양 전통의 역동적 운동성을 지닌 도(道) 혹은 천(天)개념에 가깝다. 역동적 운동성을 지니고 부단히 조화를 행하기 때문에, 그것은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것으로 규정된다. 한울 본체와 현상의 관계를 불교 화엄종의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논리를 원용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면 이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일자는 다수 중의 일자가 아니요, 전체·통일·절대·무궁·편재(遍在) 등의 의미를 지닌 일자이다. 그러므로 신은 유일일 뿐이다. 일신교에서 일자라고 하는 일자와 완전히 동일하다. 오히려 그보다도 철저하다. 다자는 일자를 떠난 다자가 아니요, 일자의 바탕이 무궁으로 전개된 다자이다. 그러므로 다자의 종합적 전체는 일자와 같은 것이다. 일자와 다자는 전혀 차이가 없다.”(<동학지인생관>, 231쪽) 한울 본체는 시공간을 초월한 유일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현상계의 시공간 안에서 쉼 없이 자기를 전개시킴으로써 다자를 통해 자신을 표현해내는 내재적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3. 
이돈화의 우주관이 갖는 두 번째 특징은 신 혹은 우주를 생명으로 간주했다는 데 있다. 신 혹은 우주가 생명으로 간주될 수 있는 동학사상의 내적 근거는 지기(至氣) 개념에 있다. 즉 최제우는 하늘님이 자신의 지극한 기운으로 만물을 생육하는 기화작용을 한다고 여겼다. 바로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기화작용, 즉 생명현상이 신 혹은 우주본체 자신의 기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돈화는 한울을 지기본체 혹은 생명본체라고 명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상계를 떠난 만유(萬有)의 근원인 ‘지기(至氣)’ 본체는 물질(物)도 아니고 정신(靈)도 아닌, 불가사의한 생명본체이다.” (<신인철학>, 32쪽) 그는 한울을 ‘능산(能産)적 본체’, 만유를 ‘소산(所産)적 자연’이라 하여 생명본체와 생명현상을 산출하는 존재와 산출되는 존재로 구분하기도 했는데, 이는 천지를 생육하는 존재로, 만물을 생육되는 존재로 보는 전통유학의 관점과 흡사하다. 또 지기본체, 즉 생명본체를 물질도 정신도 아니라고 한 것에서 그가 유물론과 유심론의 대립이라는 서양근대철학의 딜레마를 해소하려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지기(至氣)가 생명본체로 간주된 이상 그것은 의식성과 물질성을 동시에 자기 안에 지니기 때문이다. 

이돈화가 위와 같이 생명본체와 생명현상을 구분하기는 했지만, 그가 훨씬 더 강조한 것은 본체와 현상 사이의 상즉(相卽)성이었다. 생명본체는 생명현상과 분리되지 않는다. 생명본체는 생명현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바꿔 말하면 신 혹은 전체로서의 우주가 생명현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겠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돈화는 만유를 우주 대생명의 표현이라 했다.

지기본체가…현상계에 나타나는 증거를 우리는 만유의 생명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만유는 다 대우주·대생명의 표현이다. 생물계의 현상과 의식현상은 동일한 생명에 근본을 두고 있다. 부단히 창조하고 유속(流續)하는 지기의 생명력이 일체의 의식현상과 생명현상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현상의 근원과 흐름에는 다만 유일무이한 본원적 충동, 즉 생명충동이 있을 따름이다. (<신인철학>, 31쪽)

위 인용문에서 이돈화는 만유가 생명활동을 통해 내보이는 생명현상이든 의식현상이든 모두 전체로서의 우주 혹은 신 자신의 지기, 즉 생명력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하면서 이를 생명충동(élan Vital)이라고도 칭했다. 물론 신 자신의 기운인 지기(至氣)를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비이성적 생명충동 개념과 등치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베르그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돈화가 한울의 창조적 진화라는 관념을 세우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준 것 같다. “이 생명의 흐름은 그것이 잇달아 조직해낸 그 실체들을 관통하여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그것은 각각의 종(種)에 흩어져 있으며, 각각의 개체에 퍼져 있으나 자신의 힘이 조금도 상실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그 힘이 끊임없이 강화되어 그것의 전진과 정비례를 이룬다.”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생명의 힘이 창조적 진화를 통해 끊임없이 강화된다는 이 발언에서 이돈화는 한울이 창조적으로 진화한다는 생각을 얻을 수 있었고,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해 종교적 창조론과 과학적 진화론의 화해를 시도한다.  

‘지기’ 생명이 인력의 요소에 있을 때 그것은 순수하고 단순한 척력과 인력으로 표현되고, 동물계에 있을 때 그것은 충동으로 창조적인 과정을 이루며 장차 나타날 의식의 토대를 닦는다. 그 후 한 차례 비약이 일어나 의식의 요소로 변하면 ‘나는 생명이요’, ‘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관조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신인철학>, 45쪽)

위 인용문은 이돈화의 우주관이 지닌 세 번째 특징이 대우주 혹은 신을 자율적으로 진화하는 존재로 간주한 데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최시형이 자연의 약육강식적인 현상을 인정하면서도 하늘로 하늘을 먹인다(以天食天)는 명제를 세워 그 의미를 진화론자들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설명했듯이, 이돈화도 우주가 무기물, 식물, 동물, 인간으로 차례로 진화해왔음을 인정하되, 그러한 과학적 진화론은 단지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한 성과일 뿐, 현상의 이면에 있는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현상은 본체가 작용을 일으킨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과학적 진화론은 작용의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생명본체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우주가 역학적 운동을 하는 무기물에서 생리적 충동을 지닌 동물을 거쳐 뚜렷한 자기의식을 지닌 인간으로 진화해왔다는 사실은 ‘지기’생명, 즉 한울 자신이 자신의 생명력을 펼쳐 자기 자신을 진화시켜왔다는 의미를 지닌다. 

4.
우주의 진화는 생명의 자율적 진화, 신의 창조적 진화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주의 진화와 신 자신의 진화의 일치는 우선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신과 우주를 동일시하는 것이 논리적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 외에도 신을 이미 완성되어 고정불변하며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진화하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성장하고 진화하는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 과연 이런 신 관념은 최시형의 ‘천주를 기를 것(養天主)’을 주문하는 가르침에 담겨 있다. 최시형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하늘님을 기를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하늘님을 모실 줄 안다. 하늘님이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 마치 종자의 생명이 종자 속에 있는 것과 같다. 종자를 땅에 심어 생명을 기르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은 도에 의하여 하늘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海月神師法說> 「養天主」)

내 마음속 하늘님을 종자 속 생명으로 비유하는 것에서 신을 고정불변한 존재가 아니라 일종의 자라나는 존재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신이 진화한다는 이돈화의 생각은 바로 신을 종자 속 생명처럼 자라나는 존재로 간주한 최시형의 신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돈화는 생명의 관점으로 우주와 신을 동일시했으며 우주의 자율적 진화를 곧 신 자신의 창조적 진화라고 여겼다. 그의 한울 개념은 이와 같은 함의를 갖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인간격(人間格) 개념을 중심으로 이돈화의 인간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1, 2016년 1월, 황종원,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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