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독서모임에서 선정해서 읽게 책이다. 모임 참여하려고, 무슨 책인지도 잘 모르고 근처 도서관에서 빌렸다. 제목만 봐서는 행동경제학 쪽 책인가, 근데 왜 제목이 저럴까, 이렇게 혼자 생각했는데, 책을 펼쳐보니 소설이었다.
줄리언 반스라는 영국 소설가의 작품. 책을 읽는데 문체가 간결하면서 지적이었다. 스토리 전개는 압축적이면서도 오히려 풍성한 느낌. 마치 근래 읽은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필립 로스의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읽을 때와 비슷한 산뜻하고 지적 상쾌감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반전이 있다고 하여, 마음에 대비를 했지만, 정말 깜딱이야 할 정도의 반전이 맨 마지막에 숨어 있다. 소설은 1부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과 사회 초년생의 성장기와 연애담을 거쳐, 2부에선 갑자기 나이 들어 60대가 된 상태에서 회고와 새로운 사건으로 과거와 교차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나이들수록 성장과 성숙을 하고, 인생 경험을 통해 통찰과 깊이를 더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상례이고 일반적이겠지만, 소설 속 노년의 서정적 자아는 그렇지 않음을, 자신의 결여를 유감 없이 보여준다. 60살이 넘어서도 20대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의 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반복한다. 애정 했던 아니 애증 했던 과거의 한 여인에 대한 태도에서도.
우리는 과연 경험과 시련을 통해 성장도 하고 성숙하기도 한다. 동일한 유발 자극에 의해 이제는 의젓하고 노련하게 대응하기도 한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나이 들어도 여전히 20대의 마음이고, 어린애이고 철딱서니 없이 굴기도 한다.
보통의 사회나 일부 문학에서는 전자에 주안점을 두어서, 인간 모델을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최소한의 뭔가를 유지하기 위해 어른인 척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포괄되지 않는 또 하나의 커다란 생의 영역이 있고 숨은 정념이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성장소설의 모델과 반대되는 반성장소설도 있는 것이고, 우리가 신이현의 <숨어있기 좋은 방>(한국의 대표적 반성장소설)을 읽을 때 느꼈던 충격과 기묘한 쾌감은, 그런 숨은 정념을 부채질하는 전복성이 있기 때문이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넓은 의미에서 반성장소설에 가깝다. 저자는 스스로의 기억의 착각과 자기 중심적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다. 그 폭로를 통한 성찰과 성숙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속이는, 나이든 어린아이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어떤 리얼리즘적 상투성도 거부하는, 이러한 반성장소설은 자연주의적 미덕이 있다. ‘바람직함’의 실현이 아니라,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 인간 정념의 처절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근데 그 슬픈 부조리를 줄리언 반스는 묘하게도 유머와 약간의 따스함의 방식으로 보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