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만세", 중앙에 있는 깃발은 오색기로 신해혁명으로 수립된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국기로 위에서부터 붉은색은 한족, 노란색은 만주족, 푸른색은 몽골족, 흰색은 회족(신강, 위구르), 검은색은 티벳족을 가리킨다. "오족공화"의 슬로건은 곧 사라지고, 한족이 헤게모니를 행사하게 된다. 왼쪽은 당시의 중국 육군기, 오른쪽은 쑨원(孫文)의 청천백일기로 지금도 대만에서 사용하고 있다. 위 그림은 1929년으로 추정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 사진은 다음 책에서 확인가능하다. Made in China by Reed Darmon, Chronicle Books LLC, 2004.
1.
파리 테러에 뒤이어 러시아와 프랑스에 의한 시리아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몇 나라가 더 참여할지, 지상군을 파견해서 점령이 이루어질지 아닐지 현재로선 알수 없지만, 한 가지는 알수 있다. 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초래하는가? 현대 테러리즘이 국민국가의 존립근거에 대한 정면 공격이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지난 십여년을 보면, 쇠퇴해가던 국민국가가 오히려 힘을 얻는 반면, 국제협력, 지역통합, 경제통합 등은 점점 물건너가는 분위기다. 오히려 국민국가가 약해진 적이 있었다는 주장에 의문이 생길 정도.
2.
프라센지트 두아라(Prasenjit Duara)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은 그가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 만들어졌다거나 발명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기를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두아라가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 역사적 기원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어 '역사'라는 이름의 서사로 기록된 이 주체는 실제로 과거의 산포된 역사의 일부를 전유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아라에 따르면 훗날 'nation(민족 혹은 국민)'가 자신의 역사라고 기록하는 과거는 당시에는 문화, 족(族), 영토, 봉건, 왕조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훗날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적 서사를 구축할 때, 이들 중의 일부를 선택해서 활용하고(전유), 나머지는 배제하고 심지어 역사에서 지워버리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구축되어 있는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역사는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 주체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사실과 주체와 담론들을 'nation(민족 혹은 국민)'의 역사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사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취사선택과 의미의 변형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라진 쪽, 배제된 쪽, 이용된 쪽을 살펴봄으로써, 'nation(민족 혹은 국민)'의 이름으로 기록된 '역사'가 아닌 다양성을 가진 역사 이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것을 그는 역사의 양지분기(bifurcated conception)이라 칭한다(24). 흩어져 있는 과거를 하나의 서사구조로 모아 전유하는 과정을 폭로함으로써, 그 너머에 있는 억압 너머에 역사성을 회복하겠다고 말한다. 저자의 책 후반부는 근대 중국사에 이런 관점을 도입해서 양지분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 역사성 추구가 성공했즌지는 다소 회의적이지만.
"(두아라의) 주된 주장은, 민족이라는 논쟁적이고 우연적인 개념이 민족사(national history)를 통해 시간을 거쳐 진화해 온 동일한 민족적 주체(subject)라는 허위의 실체로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단선론적·목적론적인 계몽주의 역사(Enlightenment History)에서 비롯하였다. 국민국가에서 '역사'는 전통과 근대, 위계제와 평등, 제국과 민족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의 독특한 형태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구도에서 민족은 왕조·귀족·성직자·(봉건)관료를 극복하여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체현한, 새롭게 실현된 지고(至高)의 '역사' 주체로서 등장한다. 민족이야말로 근대라는 미래에 그 운명을 실현시키는 집단적인 역사 주체가 된 것이다"(22-23).
두아라는 근대역사학이 민족주의/내셔널리즘에 경도된 계몽주의 역사관이고, 단선론이면서, 목적론이라고 말한다. 시대구분과 단계론은 이런 역사관의 결과이고, 이 모든 것은 헤겔적이다. 헤겔적이라는 말은 역사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통해서 통렬한 비판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이제 그런 단계가 아니라는 말을 우리는 아주 일상적으로 했다. 모두들 역사의 전개 혹은 발전은 역진불가능(irreversible)하다는 식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자신들이 성취해낸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예상치 않은 상황 속에 당황해 하고 있다.
3.
두아라를 읽다보니 시대착오적이라 여겨지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에 다른 관점이 열린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교과서를 다시 쓰고, 국정화하겠다는 주장은 고전적인 역사의 전유화 전략, 'nation(민족 혹은 국민)'라는 역사적 주체를 구성하는 서사 형성의 서투른 현대적 재현인 셈이다. 두아라는 역사적 집단이 다양한 사회를 유일한 사회적 총체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타자'와 대조되는 자신의 특정한 형태를 중심으로 하여 그 사회적·문화적 경계를 강화시키는 것과 관련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폐쇄의 과정"이다.(107) 하나의 역사적 주체란 타자에 대한 배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땅에 처음 국민국가라는 것이 형성되던 식민지에서 해방된 시절에 처음 등장한 'nation(민족 혹은 국민)'은 일본 혹은 친일을 타자로 하여, 민족을 결속시키는 형태의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었다. 이 담론은 오랜 식민지 지배를 거쳐 형성된 대중의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그러나 미·소의 갈등과 그로 인해서 이루어진 냉전구조는 다른 형태의 'nation(민족 혹은 국민)'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 주체의 타자는 좌익 혹은 북한이었고, 이 'nation(민족 혹은 국민)'의 이름은 반공이었다. 그리고 이 'nation(민족 혹은 국민)'을 불러낸 이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국민국가(nation-state)를 형성하고, 약 40여년간 일관성있게 지배를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며 폭압적인 군사 권위주의 체제, 즉 군부독재에 대한 염증과 반대로 'nation(민족 혹은 국민)'에 대한 다른 부름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독재와 친일을 타자로하는 반독재, 반친일을 화두로 하는 새로운 부름이었다. 이 부름은 재야와 학계를 통해서 소위 말하는 사회 속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국가권력을 장악해서 다소 어정쩡하지만, 또 다른 국민국가(nation-state)를 형성할 수 있었다.
4.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달리 말하면, 'nation(민족 혹은 국민)'을 향한 두 가지 호명이 서로 다투는 형국이다. 그들은 자신의 호명을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전유했고, 그에 대항해서 반독재, 친일비판의 역사를 다시 기술했으나, 이제 다시 역사를 전유함으로서 'nation(민족 혹은 국민)'에 대한 일방적 호명을 되찾으려는 시도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물론 반공으로 지칭되는 종북·좌빨을 배제하는 국민이다. 이점에서 선명한 경계나 확인된 정체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호명 그 자체다. 호명이 이들은 'nation(민족 혹은 국민)'으로 불러낸다. 반면 반대세력은 민족과 국민이라는 호명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을 뿐더라 나중에는 시민, 주민, 인민, 민중, 다중 등 여러가지 계몽적 사고(발전론적이고, 단선론적 역사관)를 통해 다른 호명을 시도했으나 반복해서 실패했다. 'nation(민족 혹은 국민)' 이 국민으로 불리기 원한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이 땅에는 하나의 국가와 두 개의 국민이 있다. 아니다 두 개의 국가와 세 개의 국민이 있다. 이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붙리는 'nation(민족 혹은 국민)'들은 두 개의 국민의 부름 앞에 둘 중 하나에만 배타적으로 속하지 않는다. 호명에 반응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은 어느 경우에는 그 부름에 응답하고, 어느 경우에는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유동적인 존재들이다.
이 투쟁이 격렬한 또 하나의 이유는 식민지 시기 'nation(민족 혹은 국민)' 형성과정과 연관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점차 국권을 상실해가던 당시, '민족'이라는 이름의 'nation' 호명이 실시될 때, 다른 국민국가들과 달리 이 'nation'은 'state'를 결여하고 있었다. 'state'없는 'nation'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순수성이 유독 강조되었다. 혈연적, 언어적, 문화적 순수성이 발명되고, 도입되고, 주장되고, 고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민족 혹은 국민을 호명할 때, 그 구성원의 순수성을 전제하고, 그 과정에서 상정된 '타자'에 대한 때로 폭력적인 배제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비국민, 비네이션이 되어버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다투는 이 싸움이 그토록 격렬한 또 하나의 이유다.
국민국가는 근대사회와 함께 종말을 맞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듯 싶었지만, 시대는 점점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데, 국민국가는 아직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생명이 다하기 전에 최후의 발그레한 미소인지 아닌지 알수는 없지만, 국민국가의 서사로서 역사를 해체한다고 국민국가가 약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사족. 대한민국의 민국과 국민이라는 호칭은 신해혁명 후 성립된 중화민국에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 불필요한 줄 알면서도 굳이 'nation(민족 혹은 국민)'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는 이유는 민족 혹은 국민이라는 단일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우리를 사로잡는 담론구조 때문에, 의도적으로 낯설게 읽기 위해서이다.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3, No.12, 2015년 12월, 이원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