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신들」은 화해를 추구하는 작품입니다. 4.3사건을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는다면 기억하자고 말하는 것도 막연하고, 화해하자고 말하는 것도 덧없는 시도입니다. 때로는 말이 상처에 소금을 뿌립니다. 그러나 좋은 말은 천냥 빚도 갚습니다. 그러나 말로서 모든 빚을 탕감할 수는 없습니다. 화해의 조건은 진실의 발견이고, 진실의 인정 위에서 동시에 책임을 인정하고 이행하는 것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화해의 조건을 제대로 갖추기가 어렵습니다.「목마른 신들」은 제목을 통해서 비장하게 4.3의 진실을 폭로합니다. 작가는 황당한 죽음, 죽음같지 않은 죽음, 개죽음을 언급합니다. 제주4.3의 망자들은 인간의 품위에 어울리는 고유한 죽음, 인간다운 죽음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 만명이 목마른 신들이 되어 제주도 산야를 떠돌며, 제사상에서 혼령으로서 음복도 못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혼령중에서도 아주 비참한 혼령들입니다. 산죽음이란 살아도 살고 있다 할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마도 목마른 신들에서 등장하는 노파가 그랬을 것입니다. 극도의 트라우마와 고통을 겪은 순이삼촌이 바로 산죽음입니다. 다만 육체에 대한 방아쇠를 30년후에 당겼을뿐입니다. 순이삼촌이 「목마른 신들」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수의 어머니로 등장했을 것입니다.
철학자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전쟁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에 양측이 서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12)고 했습니다. 현기영 선생은 제주4.3의 피해자들과 대한민국 간에 화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제주4.3피해자들에게 반칙을 자행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좌로부터 다랑쉬굴 유해자료, 4.3사건을 다룬 영화, 산으로 피난한 주민들]
목마른 신들은 죄다 반칙의 죽임, 그 결과입니다. 사람의 죽음에는 대의를 위한 것이 있습니다. 순교, 영웅적 죽음, 의사, 열사, 순직 등. 이럴 때 희생(犧牲)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13) 천수를 누리다 맞이한 편안한 죽음도 있습니다. 병사나 우연한 사고사도 있습니다. 또는 심각한 중죄를 저질러 처형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별히 죽음에 이를 정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타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개죽음이라고 말합니다. 개죽음이 국가권력에 의해 계획적으로 자행되었다면 망자나 유족은 그러한 국가와 화해할 길이 없습니다. 복수를 위해서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관계입니다.
「순이삼촌」은 마을 주민을 소개(疏開)한다고 거짓말로 유인하여 수 백 명을 학살하였던 북촌리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군경은 사면한다는 취지로 자수운동을 독려하고 개과천선의 기회를 준다며 야산대토벌에 대한 지원을 이유로 150명의 자원자들을 트럭에 싣고 가서 학살하였습니다. <쇠와 살>에 1:11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는 군경 한사람이 사망하면 민간인 10명이 죽어야한다는 학살비례원칙입니다. 원래는 1:10이었는데 마을 어르신이 무고한 청년들의 살해에 항의하자 다시 그 어르신까지 죽였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학살이 스포츠의 요소를 갖추고 자행되기도 합니다. 배의 후미에 손을 묶어서 줄지어 앉혀놓고 바다를 쾌속으로 달리다 갑자기 방향을 꺾어서 바다에 추락시켜 수장합니다. 제주도 신혼여행 사진의 명소인 폭포 옆에서 마을 주민들을 끌어다 총살하여 시신을 망망대해로 유기합니다. 그래서 혼령을 불러다 쓴 가묘(假墓)가 많습니다. 군경의 공격에 의해 화산섬의 굴들은 그대로 가족의 합장묘가 되었습니다. 6.25전쟁에서 군경은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의 수직갱도 입구에서 보도연맹원들의 뒤통수에 총을 쏘아 갱도 밑바닥부터 시신을 차곡차곡 쌓아올렸습니다. 이러한 학살행위는 상상력의 살인마적 종결판입니다.
[경산코발트광산 유해발굴 사진자료]
유대인 가스실과 시체소각로를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효율적으로 빨리 죽이고 흔적도 없이 치울 것인지가 유사시 국가의 고민입니다. 목마른 신들은 ‘수습하지 못한 주검들’ 또는 ‘당국에 의해 염습을 금지당한 주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마른 신들」은 제주도민의 죽음이 또한 인도에 반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14)라는 점을 폭로합니다.
국가의 본질을 물어봅시다. 제주4.3사건을 통해서 국가가 인간의 선익(善益)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食人)(15)임을 깨닫게 됩니다. 권력자들은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이른바 불편한 그룹을 박멸하고자 합니다. 이에 맞서 우리는 인간을 위하여 새로운 국가관을 말하고, 새로운 인간적인 양심을 말해야 합니다. 국가란 인간의 선익을 위한 도구이며, 인간은 결코 국가의 도구가 아니라는 철학을 내세웁니다. 권력자와 권위가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복종하는 권위주의적 양심이 아니라 매순간 인간적인 선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실천하는 인간주의적 양심을 일깨워야 합니다.(16) 「쇠와 살」에는 넘어진 청년의 코피를 친절하게 닦아주고 나서 그 청년을 학살하는 군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나 학살은 범죄행위이라고 자각하고 선언하고 명령의 수행을 거부하는 군인이 되었어야 합니다. 국가는 숭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국가의 본질에 대한 하워드 진의 절창을 발췌해 보겠습니다.
“악법에 복종하지 않을 시민의 권리, 그리고 위험한 법에 복종하지 않을 시민의 의무를 촉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민주주의는 정부와 법이 신성한 것이 아니라 생명, 자유, 행복이라는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들이라고 상정한다. 도구들은 없어도 되지만 목적은 그렇지 않다.”“우리는 우리 자신과 국가가 이해관계에서는 서로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국가행위자들에 의해 기만당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국가는 권력, 영향력, 부 등을 목적 자체로 추구하고, 개인은 건강, 평화, 창의적 활동, 사랑을 추구한다. 국가는 권력과 부로 인하여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수많은 나팔수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민은 독자적으로 또는 자신의 동료와 연대하여 사유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17)
5. 4.3사건의 본질
제주4.3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제주4.3사건의 본질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공식적인 사죄의 주체가 한국정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정부나 정치가들이 알아야 합니다. 현기영 선생은 제주4.3사건의 진실과 관련하여 끈덕지게 미국의 개입을 시사합니다. 저는 제주4.3사건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국가범죄나 인도에 반한 범죄로 규정합니다.(18) 그러나 이러한 국가범죄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상이합니다.
1)공산폭도론
보수주의자들은 현실의 국가권력에 대한 항의와 도전을 국가범죄로 규정합니다. 이들은 이른바 단독정부를 반대하며 총선거를 거부한 제주도 사람들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동시에 단독정부를 반대하는 행위는 미국의 패권분계선을 거스르는 행동이었습니다. 「쇠와 살」은 불복산(不伏山)으로서 한라산과 제주도, 제주사람들의 운명을 알립니다. “초토작전에 반대한 연대장 김익렬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박진경을 앉혔다. 경찰 총수 조병옥, 9연대 연대장 박진경은 새 국가 건설을 위해서라면 30만 전 도민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천명하였다. 그것은 미국이 결재한 목소리였다. 미국이 그 섬을 ‘레드 아일랜드’라고 낙인찍자, 즉각 붉은 섬이라고 번역되었던 것이다.”붉은 색은 피와 불을 의미했습니다. 이른바 무장대는 일제가 버리고 간 구식총으로 무장한 300~500명으로 추산되는데 군경은 3만 여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였습니다. 군경의 죽음에 대한 보복으로 도피자 가족을 찾아 대살(代殺)을 자행했습니다. 한라산에 숨어든 민간인을“비무장 공비”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형용모순입니다. 어쨌든 최근에도 일부보수주의자들은 4.3을 공산주의자들의 폭동과 반란이라는 틀 속에서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합니다. 그들은 주로 자신들의 법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잠재우기 위해 이 점을 유독 강조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의 봉기는 4.3사건을 해석할 수 있는 계기들중 하나일 뿐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봉기했다고 해서 제주도민을 모두 적으로, 공산폭도로 규정하고 그렇게 토끼몰이 하듯이 죽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2)과잉진압론
다음으로는 법치주의자들의 시선입니다. 그들은 4.3과 관련하여 이른바 단독정부에 대해 봉기한 무장대의 진압은 정당한 것이고 비무장 민간인 학살은 과잉진압이라고 말합니다. 즉 제주도민들에게도 책임을 지우고 정부에게도 일정하게 책임이 있다는 식입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보고서가 이러한 기조 위에서 작성되었습니다. 아마도 현재의 주류적 시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본질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1948년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봅시다. 그렇게 많은 민가를 방화하고 그렇게 많은 민간인을 거리낌 없이 죽이고, 붙잡힌 사람마저 그렇게 많이 처형할 수 있다는 사고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일본군이 동학농민군, 3.1만세참가자들을 학살할 때나 간도특설대(19)가 민중을 학살할 때를 연상시킵니다. 이른바 무장대는 일본군이 버리고 간 소총 300여 자루를 보유하였는데 그들을 진압하는 데에 그렇게 많은 살상이 필요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권력집단은 저항그룹에 대한 폭력을 다른 집단에 대한 본보기로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극한적으로 행사하여 기를 꺽어 놓고자 합니다.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 (20)입니다. 한 마디로 “나 미친놈이다. 건들지 마라. 수틀리면 몰살이다”는 시그널을 주려는 자세입니다. 권력의 극단적 행사가 권력자의 이익이 됩니다. 지배집단이나 패권그룹만이 이러한 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에 약한 저항자들을 완전하게 제압합니다. 제주4.3피살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유형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무장대의 100배 가까운 사람이 살해당했던 것입니다. 비행기 폭격이나 과도한 공격무기에 의해 피해자가 뜻밖에 많아진 것이 아니라 군경은 민간인을 목표물로 삼아 타격하고 유린하였습니다. 이른바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전제하는 과잉진압론이나 과잉대응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경책을 구사하는 미국과 패권주의자들은 김익렬과 김달삼의 휴전약속을 완전하게 전복하였습니다.과잉진압, 오해와 부정확성이 야기한 오폭이나 오발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정밀한 타격을 통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살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주4.3사건의 민간인 살상의 본질은 과잉진압의 결과가 아니라 광적인 학살극이었고, 인도에 반한 범죄입니다.
[김달삼과 김익렬]
3)원자폭탄 투하와 영화 <피아니스트>
1948년이라는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여서 전쟁범죄의 청산이 유럽과 일본에서 진행중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쟁범죄의 청산이 마무리되고 냉전체제가 공고해지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냉전질서의 두 축인 미국과 소련의 전쟁범죄는 거론되지도 않았습니다. 미국은 패배가 임박한 일본에 원자폭탄을 두발이나 투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천황을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았고 731부대의 범죄를 불문에 부쳤습니다. 미공군과 영국공군은 공포에 떨며 드레스덴으로 피난한 수만 명의 독일 민간인들에게 엄청난 양의 폭탄을 퍼부어 몰살시켰습니다.(21)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
소련군은 수 만 명의 독일군 포로들을 강제노동으로 혹사시키다 죽게 만들었습니다.(22) 이 모든 범죄는 승전국이자 패권국이 자행했기 때문에 전쟁범죄나 인도에 반한 범죄로 기소되지도 않았습니다. 개인의 우발적인 일탈을 제외하고는 승전국은 전쟁범죄를 한 번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제주4.3사건이 군정기인 1947년에 시작되어 미군의 지휘통제 아래 사실상 마무리되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도 미군의 개입과 관련한 정황들을 시사하는 사진자료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사진을 찍은 시선은 학살을 지지할까요 반대할까요?
[오라리 방화사건]
[크레이그호]
이미 지구적 수준에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한 미국과 소련이라는 슈퍼파워가 한반도에 그어놓은 정치적 세력분계선을 제주도 사람들이 낭만적 민족주의에 입각해 행동으로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식민강점을 겪었던 민족으로서 통일조국을 염원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정당한 것입니다. 단지 대세가 그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분단을 추구하던 정부권력자들과 국제적인 분할을 획책하는 미국의 것이었고, 제주4.3학살은 정치적 분계선을 흔들려는 제3세력에 대한 패권주의자들의 최초반응이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단련된 무자비한 살륙작전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력 대 무력의 싸움으로서 상대적 폭력이 아니라 거의 무장하지 못한 제주도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절대적 폭력을 행사하며 불태웠습니다.
6. 화해굿
「목마른 신들」속에서 학살에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죄인으로 연루되지 않는 사람은 「목마른 신들」을 설계한 작가, 작품 속에서는 4.3때 억울하게 죽은 영수를 달래다 최근에 저 세상으로 간 그의 어머니, 영수의 혼령이 달라붙은 서청노인의 손자 정도일 것입니다. 그들도 여전히 법적인 죄나 도덕적인 죄로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이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물론 젊은 날에 심방은 학살에 가담하였기에 도덕적인 죄뿐만 아니라 법적인 죄도 저질렀습니다. 심방은 한라산 반대쪽 마을에서 서청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국가권력이 서청의 만행을 문제삼지 않고 적극 후원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엄청난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그는 군경의 중산간마을 초토화작전에서 어머니를 잃어버린 4.3의 피해자였습니다. 순수한 가해자도 아니고 순수한 피해자도 아닌 회색지대에 속한 사람입니다. 역사 속에서는 늘 이러한 유형의 인간에게 극복하고 화해시키는 소명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작가, 정신과의사, 철학자, 만신은 바로 이러한 콤플렉스와 갈등을 예민하게 느끼고 형태를 부여합니다. 작가는 인간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허구를 창조합니다. 저는 형이상학적 죄가 인간을 구원하고 스스로 구원받으려는 의식이자 열망이라고 전복합니다. 이러한 죄책감과 트라우마가 평범한 인간을 신학자로, 철학자로, 사회운동가로, 작가로 만듭니다.(23) 수면제를 쏟아 부었던 청년은 무병이라는 용광로를 통하여 하나의 탈출구를 발견하고, 화해자로서 작가의 열망을 실현합니다. 「목마른 신들」은 사죄와 화해의 포럼으로서 굿을 사용했습니다. 2001년 작가 황석영은 『손님』에서 황해도 굿형식을 이용하여 화해를 향한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을 놀랍게 펼쳐보였는데, 이러한 기법은「목마른 신들」에서도 이미 시도되었습니다.「목마른 신들」에서 심방은 인물들의 상이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질료로 사용하여 열정적인 화해굿을 펼칩니다. 가해자인 서청노인이 혼령에게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면서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다음 편에 계속]
[영화 <만신>의 한 장면]
<주>
(12) 전쟁법을 전쟁사유에 관한 법(jus ad bellum), 전쟁중의 법(jus in bello), 전후처리법(jus post bellum)으로 구별하는데, 전쟁사유에 관한 법은 이른바 정전론으로 수렴되고, 전쟁중의 법은 민간인보호와 부상자보호로 요약된다. 전후처리법은 전쟁범죄자의 처벌과 배상책임과 관련된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예비조항 6조)>에서 전쟁중의 법을 위와 같이 제시하였다. “어떠한 국가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동안에 장래의 평화 시기에 상호 신뢰를 불가능화게 할 것이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적대 행위, 예컨대, 암살자나 독살자의 고용, 항복 조약의 파기, 적극에서의 반역 선동 등을 해서는 안 된다.”칸트/이한구(역),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서광사, 1992, 18쪽 이하.
(13) 희생자(犧牲者)나 집단희생(集團犧牲)라는 말은 학살과 집단학살을 은폐하는 완곡어법이다. 과거사정리기본법은 집단희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희생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제례적 의미에서 순교 또는 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헌신, 죽음의 감수를 의미한다. 따라서 군경에 의한 집단희생이라는 표현은 성립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는 이재승, 국가범죄, 앨피, 2010, 185쪽. 동일한 의미에서 홀로코스트(holocaust)도 종교적인 의미에서 희생(번제의 제물)을 의미한다. 아감벤은 유대인 대학살을 표현하는 용어로서 부적절하다고 홀로코스트를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는 자들, 새물결, 2013, 37~46쪽.
(14) 전시 평시를 막론하고 민간인에 대한 학살, 고문, 강제이주, 폭행,...을 인도에 반한 범죄라고 하며,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연합국통제위원회법률 제10호에 의해 명문화되었으며, 각종 국제군사재판소에서 주요한 전쟁범죄의 대표적 형태로 등장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관할범죄이기도 하다. 참고로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아니다.
(15) 아파치족 전사 <제로니모>는 아파치족 전사들을 이끌고 멕시코 수비대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며 자신의 권위를 굳혀 갔다. 어느 날 제로니모는 자신의 무훈에 기대어 백인들을 완전히 인디언 땅에서 몰아내겠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멕시코 대통령처럼 권한을 집중시켜 왕으로 추대해 달라고 인디언 지도자들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인디언 지도자들은 그의 요구를 수락하지 않았다. 인디언들은 거대한 국가를 사람 잡아먹는 식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식인의 노예로 전락하기보다는 자유인으로서 싸우다 죽겠다고 결정했다. 노예로 사느니 싸우다 죽는 것이 자유인의 품위에 어울린다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 실존주의자들의 선택이었다. 이 부분은 나카자와 신이치/김옥희(역), 곰에서 왕으로, 동아시아, 2003, 169쪽.
(16) 프롬/문국주(역), 불복종에 관하여, 범우사, 1996, 17쪽 이하.
(17) Zinn, Howard, Nine Fallacies on Law and Order (New York: Random House/Vintage, 1968), 119-122.
(18) 조성봉 감독의 다큐멘타리 영화 <레드헌트>는 국가범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19) 만주에서 조선인 독립군을 붙잡기 위해 설치한 조선인 특수부대이다. 한국군대의 지휘관들중 이 부대 출신이 적지 않았다.
(20) 닉슨이 공산권을 다루는 외교전략이었다고 하나 힘을 가진 세력이 약자에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전략이다. 이미 마키아벨리는 간명하게 “때때로 실성한 체하는 것이 매우 현명한 일이다”고 정치가들에게 조언하였다. 마키아벨리/강정인‧안선재(역), 로마사논고, 한길사, 2003, 418쪽(제3권, 제2장).
(21) 연합국의 영국 공군(RAF)과 미국 육군 항공대(USAAF)가 1945년 2월 13일부터 2월 15일까지 독일 작센 주의 수도 드레스덴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한 사건이다. 영국군 722대 및 미국군 527대의 중폭격기가 사흘간 3,900톤 이상의 폭탄 및 소이탄을 투하하여 40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이 파괴되고 최소 3만에서 7만여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22) 영화 <피아니스트> 참조.
(23) 허먼/최현정(역), 트라우마, 열린책들, 2012.
** 이 글은 <문학카페 유랑극장>이 2014년 5월 10일에 제주에서 개최한 문학콘서트에서 발표된 글을 문학카페 유랑극장으로부터 전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을 밝힙니다.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5, 2014년 5월, 이재승,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