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이달의 서평] 감정의 격동

무엇이 동정심을 촉발했는지를 살펴본 나(아마도 클라크)는 무수한 골칫거리를 발견했다. 그것의 목록은 블루스 기사에서 열거되는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난, 파트너의 부정(不貞,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 재난의 희생자가 되는 것, (...) 외모가 매력이 없는 것, 교통 사고, (...) 우울증, 두려움, 공적 모욕, 당혹스러운 일의 돌발, 피곤, 악평, 휴가를 망치는 것, 지루함, (더위나 추위가 연속되거나 교통 체증이 연속되는 등의) 짜증나는 일 등을 언급했다. (<감정의 격동: 연민 2> 쪽수 563-64)
   
누구든 하나 쯤은 해당될 것이다. 어떤 것은 내 문제가 아닌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내가 당장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위의 문제들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법적 제도와 정치 체계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른바 논의의 사각지태에 버려진 작은 문제들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 구조적으로 혹은 법적 장치를 통해서 제도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이고 그래서 그것들은 개인적으로 알아서 처리하거나 견디어야 하는 문제들이라는 소리다. 이런 작은 문제들에 담긴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고민이 근 30년에 걸친 치열한 사유와 꼼꼼한 독서를 바탕으로 빚어낸 작품이 <감정의 격동>이다. 보충하면 이렇다. 저자 마사 너스바움(Martha C. Nussbaum)에 따르면,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결코 작은 물음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행복은 바로 이런 작은 문제들과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그것들이 단지 감정의 현상들로 취급되는 바람에, 학술 논쟁이든 정치 정쟁이든 담론 세계에 재대로 상정 한 번 못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문제들은 그야말로 온전히 개인이 견디야만 하는 것들로 취급되었고, 특히 감정이 감당해야 하는 그리고 감정에게 버려진 문제들 정도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감정이 최소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현대 도시 문명이 만들어 낸 갓가지 “골칫거리”들을 처리하는 하수구 역할이 그 하나이고, 그럼에도 그 골칫거리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버팀목 역할이 다른 하나라는 점을 말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렇게 중요한 감정에 대해서 그 대접이 영 말이 아니라는게 저자의 일갈이다. 그래서 그녀는 주장한다. “이처럼 우리(아마도 너스바움)는 감정이 도덕철학적 주제의 도드라진 부분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할 것”(26쪽)이라고 말이다. 한편으로 “감정은 우리의 정신적-사회적 삶의 풍경을 형성” (25쪽)하고, 다른 한편으로 “감정은 나 자신의 안녕에 중대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는 어떤 외적인 (즉 통제 불가능한) 것과 관련해 현재의 사태를 등록하는 나만의 방식”(30쪽) 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그동안 받은 푸대접을 생각해 보면, 아닌게 아니라 “감정”이 참으로 안쓰러울 정도이다. 저자의 말대로, 심지어 “현재의 사태를 등록하는 나만의 방식”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임에도 말이다. 다시 말해서, 기호, 취향, 성향, 나아가 성격 그러니까 자기 정체성을 결정하는 작업 일반을 책임지고 있는 것임에도 말이다.

혹자는 저자의 구체적인 개별 언명들에 대해서 크고 작은 이의와 반대들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반대나 이의들이 저자가 던지는 근본적인 문제 의식을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정확하게 현대도 문명들이 만들어낸 골칫거리들과 병리적 현상들이 작은 문제들은 아니고 그런데 그것들을 어쨌든 떠안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며, 어찌되었든, 서양 철학이 그동안 감정을 천덕꾸러기 취급했고, 또한 감정에 어떤 위로와 대접을 제대로 해 준 적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 한에서 말이다. 적어도, 이성 중심의 전통적인 철학이 저 현대 문명의 골칫거리들에 대한 제대로된 해명과 해결책을 제공한 적은 없었다. 이 점에서, 칸트의 이성 철학에 맞짱뜨려는 너스바움의 감정 철학에 대한 구성 시도와 그 노력은 그 자체로 높히 살 만하다.   
 
너스바움이 제시하는 감정 철학의 기본적인 특징은 대체로 이렇다. 나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한 계산과 가치 판단을 수행하는 것이 실은 감정이고, 그러나 감정은 홀로 있지 않고 ‘연민’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너’와 ‘우리’로 확장가능하며 그런데 이 확장의 심연에는 우주사적인 원리인 사랑이 작용하고 있다는 정도로 말이다. 이를 뒷바침하는 근거로 그녀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아우구스티누스, 스피노자, 스미스, 루소,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의 생각들을 불러낸다. 여기에 단테, 에밀리 브론테, 말러, 휘트먼, 조이스 그리고 프루스트를 분석의 무대 위로 초청한다. 심지어 자신의 유년기 기억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경험마저도 끌어낸다. 쉽지 않는 일이다. 어쩌면, 책의 진정성은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할 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체험을 사유와 실천의 대상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여러 철학자들과의 일전을 벌이는 너스바움보다도 혹은 문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의 시선을 던지는 너스바움보다도 실은 자신의 체험과 감정에 말을 거는 너스바움이 책을 읽는 중에 나에게는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실은, 자신의 안쓰러운 감정에 말을 거는 그녀의 모습 자체가 어쩌면 자신이 주창하려는 감정 철학을 어떻게 실천하고 실행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에. 즉,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적인 점에서 너스바움이 보여주는 차별성들을 당연히 인정해야 하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 그녀의 감정 철학이 “실천”을 강조했던 고대 스토아 철학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죽음과 고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상대화시키는 훈련 혹은 수련을 서양 고대 스토아 학자들은 meditatio(훈련)라고 불렀는데, 자신의 어머니의 죽움에 대해 너스바움이 보여준 사례가 여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런 종류의 대표적인 실천가가 세네카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세네카의 비극 작품들이 중요하다. 이 작품들은, 통상적으로 알려진 바는 반대로, 극단적인 감정 상태에 휩쓸리거나 물들지 않고(apatheia) 자신의 생각과 의지(voluntas)를 굳건하게 지키는 연습을 시켜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읽기를 통해서 감정을 혹은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을 praemeditatio(예비 훈련)라고 부른다. 소위 “힐링인문학”이 여기에서 유래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유에서, <감정의 격동>은 감정 구조와 체계에 대한 사변적 이해를 넘어서서 그녀 자신의 실천 사례까지 덤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그런데, 책의 뒷표지에 적혀 있는“2.500여년에 걸친 ‘감정 탐구’의 결정본!”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과연 그럴까? 각설하고, 이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책은 감정 일반에 대한 종합적인 성찰을 담은 이론서가 아니다. 책는, 저자 자신도 <감사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쪽수 1301-06), 책은 1993년에 행해진 한 강연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진행된 연속 강연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복잡한 골칫거리의 지뢰들이 깔린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감정 문제 일반에 대해서 종합적인 철학적 반성과 이론적 검토가 요청된다는 너스바움의 문제 제기가 더 이상 흔들릴 수 없는 학문적 그리고 문명사적 의제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감정의 격동>이 “결정본”이 되려면, 책의 주요 논지에 본격적으로 상정되어서 다었어할 감정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들이 두려움과 분노이다. 정작 다루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이것들은 제대로 된 지면을 할당받지 못했다. 예컨대 두려움과 분노가 소위 ‘나에게 달려있지 않는 것들’에 대한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대응하는지에 대하여 책은 주목했어야 했다. 궁극적으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여는 열쇠가 감정이라면 말이다. 연민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이유에서 <감정의 격동>은 이제 막 반환점을 지난 작품으로 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연민의 짝패(antistrophe)가 실은 두려움이다. 우리가 연민의 정을 갖는 이유는 단적으로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불운과 불행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타자를 연민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에서 두려움이 실은 우리를 하나로 연대시키고 결속시키는 더 근본적인 존재-조건인 셈이다. 연민은 시혜적인 성격을 강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두려움은 인간은 운명과 신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그리고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인간 조건(conditio humana)을 전제로 삼아 작동하는 감정이다. 두려움의 관점에서 연민의 문제를 살폈다면, 혹은 연민에서 관점에서 두려움의 문제를 저울질 했다면, 감정 문제 일반을 보다 더 종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살필 수 있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만약 너스바움이 바쁘다면, 어쟸든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일 것이다.

이어서, <감정의 격동>에는 저 “골칫거리들”을 어떻게 정화(katharsis)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가 상대적으로 크게 빈약하다. 이와 관련해서, 너스바움은 저 골칫거리들을 개인적인 사건들이자 감정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로 보는 것은 아닌 지 싶다. 사정이 그렇다면, 내 생각은 크게 다르다. 물론, 저 골칫거리들이 최종적으로는 감정이 떠맡아야 하는 것들이지만, 이 가운데에 많은 문제들은 개인의 감정에게 떠맡기기 전에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가난과 재난이 그것들이다. 가난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되어 버렸기에 하는 말이다. 굳이 청년 실업 문제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또 다른 예시를 찾으려 굳이 멀리 나갈 필요가 있을까 싶다. 여기-지금 한국 사회가 그 실례이기에.

그렇다면, 너스바움이 두려움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단적으로, 저자가 논의를 “연민”에서 곧바로 “사랑”으로 이끌고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대로, 저 골짓거리들에 대한 정화 기제가 기본적으로는 “사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십분 동의한다. 하지만, 저 골칫거리들이 깔린 삶의 지뢰밭에서 머물러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저자가 말하는 단테의 “기독교적 사랑”이 과연 효력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지금은 중세가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차라리 “사랑”으로 이왕 밀고 나간 김에 더 끝까지 밀고 나가서 현대 도시 문명의 심판자로 상정했다면 어땠을까싶다. 내 생각에, 특히 3권 <사랑의 등정>은 아주 우아한 책인데, 여기에 사랑에 대한 묵시록적(apocalyptic)인 시선을 담은 글이 한편 정도 추가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현대 도시 문명에서의 감정 문제가 사랑만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지를 따질 필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밝은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어두운 관점에서도 감정 문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감정의 격동>은 감정 문제를 학문 세계에 안착시킨 중요한 책이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친 책이다. 어쩌면, 감정 문제를 학문 세계에 상정시키는 일 자체가 이미 많은 에너지와 큰 시간을 강요했을 것이기에, 책에서 검토되지 않은 다른 감정들을 살피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뱀다리 하나를 덧붙이겠다. 만약 너스바움이 퇴계와 율곡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논쟁을 읽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지를 말이다. 굳이 서양어법을 빌어서 말하자면, 퇴계와 율곡에게 소위 “감정과 이성”은 서로 없어서는 안되는 짝패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책이 훨씬 날씬한 몸매를 뽐낼 수는 있었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 이 글은 한국일보에 게재된 것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입니다.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3, No.9, 2015년 9월,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