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대다수의 학자들은 '유교'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변화하는 세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신분적 기득권과 당리당략에 따라 모든 것을 사고하고 행동했던 조선의 지배층과 그들이 신봉하던 유학은, 국가가 망하면서 당연히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전통을 폄훼하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조선의 전통과 유학은 부분적으로 긍정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움직임을 대표하는 사상운동 가운데 하나가 ‘실학’(實學)이었다. 실학은 일본의 강점 이전에 유학의 내부에서 '근대적인 것'을 자생적으로 산출하고 있던 사상운동이자 역사의 진보에 부합하는 사회적 변화로서, 조선 사회 스스로가 모색하던 일종의 사상과 역사의 정향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 지배는 불필요한 것이며, 조선인 스스로가 이미 근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다산 정약용을 만나 왔다.
하지만 조선의 전통을 긍정적으로 보고자 했던, 특히 유학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계승하고자 했던 현대 한국의 학자는 매우 드물었다. 동아시아 문명의 종주국이었던 이웃 나라 중국조차 신문화 운동을 통해 “공자를 타도하라!”는 표어를 내걸고, 민주와 과학이라는 서구적 가치를 수용하려는 분위기가 더욱 널리 퍼졌다. 유학은 낡은 것의 이름이었고, 민주와 과학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고집스럽고 고루한 문화보수주의였다.
조선왕조 500년을 지배했던 국가의 이념이자 삶의 방식이었던 유학은 1948년의 제헌헌법의 제정, 1960년대의 경제개발 계획의 수립과 추진,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화 운동 등 20세기 한국인의 삶이 요동치던 때 어디에서도 그 목소리를 들어보기 어려웠다. 어쩌면 1960-70년대를 거치며 독재를 연장하고자 했던 유신(維新) 체제가 등장하면서 역사에 얼굴을 들이민 것이 아마도 가장 뚜렷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사롭지 않게 전통을 긍정하는 오늘의 분위기, 즉 막스 베버가 기독교를 통해 자본주의의 출현을 설명했듯이 유교가 있었기에 동아시아의 몇몇 나라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성공했다는 ‘유교자본주의론’이나, 서구적 ‘근대’가 보편은 아니며, 전통과 가치를 달리하는 아시아는 서구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는 ‘아시아적 가치론’과 같은 담론의 등장은 유교가 부활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2. 어떤 전통, 누구의 유학?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가부터 서구화 혹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유교가 몰락했던 동아시아 역사를 특징으로 한다면, 21세기 말부터는 분명 유교가 다시 긍정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힘과 운동으로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미 일제 강점기, 박정희 정권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며 오늘날에는 훨씬 넓은 관심을 받으며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이런 현상을 반가워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면 70년대 이후 경제적으로 고속성장을 이루고, 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 제도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성취한 과거를 돌아볼 때, 전통을 예전과 다르게 조망하면서 서구적 근대와 다른 무언가를 탐구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분명 필요하고 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때 우리가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는 그 대상인 ‘전통’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최근에 와서야 천착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서양을 한쪽 축으로 세워놓고 그에 대척적인 개념들을 만들면서 '전통'을 구축해 왔거나, 근대를 향해 나아가면서 결코 서구와 같은 사회에 도달하지 못한 어떤 지점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늘날 '동양'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학적 토론에서 우리는 어느 한 서양인 학자가 지적하는 이런 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자>를 소개하는 책에서 한스-게오르그 묄러는 이런 말을 한다.
<노자>에는 자유(liberty), 평등(equality), 정의(justice)는 물론 민주주의(democracy)와 같은 개념이나 가치가 나오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런 고전들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군주와 신하, 스승과 제자, 어른과 아이처럼 권위주의적으로 서열화된 관계와 그 규범들이다. 비록 우리가 공자의 인(仁) 속에서 사랑과 인간다움의 가치를 찾는다 해도 그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에 적합한 것인가의 여부는 또 다른 토론을 요하는 문제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처럼 서양과의 ‘다름’이라는 것이 ‘전통’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을지 몰라도 오늘날 그렇게 찾아진 전통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합당한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학의 가치를 따지는 것을 넘어서서 그 유학이 어떤 전통을 대변하는가, 그리고 그 유학이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3. 홍대용, 기철학자에서 사회사상가로!
박희병 교수(이하 저자)의 책 <범애와 평등-홍대용의 사회사상>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커다란 의미를 갖는 저술이다. 거의 20여 년이라는 오랜 관심의 산물로서 나온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시간적 길이 때문이 아니라, 저자가 이 책을 내기까지 그동안 펴낸 책들의 이력을 볼 때, <범애와 평등>은 저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학문적 지향이 잘 드러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저자는 문학자로서의 책보다 <한국의 생태사상>(1999), <운화와 근대>(2003)와 같은 사상 연구의 저술이 두드러진 연구의 이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 펴낸 18세기 중인 역관 출신의 시인을 다룬 <나는 골목길 부처다-이언진 평전>(2010), <저항과 아만>(2012)와 같은 책은 조선 사회의 질곡과 갈등 속에서 피어난 삶의 몸부림을 강렬한 이미지로 재조명한 저술들이다.
중인 신분으로 태어나 역관으로 생활하면서 갖는 신분적 질곡을 시적 언어로 저항하며 살아냈건만 결국에는 스스로 자신의 시를 불태워버려야 했던 시인 이언진의 절규를 두 권의 책으로 펴낸 그의 저술은,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매우 의미 있는 조선 문학의 지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 <범애와 평등>은 그런 그의 저술의 귀착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이란 18세기 인물은 그간 철학계에서는 잊혀진 조선의 과학사상의 측면에서 주로 주목받아온 사상가이다.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에 혼천의를 제작하고, 수학 연구에도 몰두하였으며, 청(淸) 나라에 다녀온 이후에는 청을 오랑캐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새로운 사조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홍대용으로서, 그는 조선의 실학사상을 일구어 낸 사상가로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그간의 이런 연구 경향은 “아직 본론에 들어가지 못한”(6쪽) 홍대용 연구이며, “자연과학 연구조차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향하고 있는 곳은 사회사상”이며, 따라서 “홍대용 사상의 본령은 사회사상에 있다”(같은 곳)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홍대용이 장자(莊子)와 묵자(墨子)를 주체적으로 원용하여, 유교의 차등적 사랑인 인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서는 사랑인 범애(汎愛)로까지 확장하고, 사회적 관계의 평등을 제고하는 제도개혁론까지 주장한 ‘독자적인 사상가’라는 것이다.
적어도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우리는 이제 그를 박제가, 이덕무 등의 연암 박지원 서클 사상가들의 선배로서 북학사상을 흥기시킨 사람이라거나, 자연에 대한 관찰과 계량화된 수학적 세계관을 보여주었던 과학사상가로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회개혁을 통해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사상가로서 그의 존재를 다시 조명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충격적인 이야기들이다.
4. 홍대용을 이해하는 새로운 키워드, 범애
처음 책을 펼쳐들었을 때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저자가 홍대용 사상이 보이는 평등 지향적 관념인 “인물균(人物均)”―인간과 만물이 평등하다는 뜻―을 기호 낙론(洛論)의 기철학 전통에서 찾았던 기존의 학설을 뒤집어, 이단이자 금기의 책이었던 <장자>에서 그리고 청천벽력과도 같이 <묵자>에서 찾는다는 점이었다. 조선의 사상계에서 <장자>를 말하기도 어려운데 감히 <묵자>를 말하다니,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는 게 내 첫인상이었다.
바로 이 지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저자는 책의 제목을 ‘범애’와 ‘평등’이라는 표제로 삼은 것이다. 저자의 말은 이렇다.
“유가가 묵자를 미워하며 배척한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겸애’(兼愛)를 주장한 데 있다. 유가의 본령은 ‘차등애’에 있는데, 묵자의 겸애는 차별 없는 사랑, 곧 ‘평등애’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홍대용이 겸애를 진리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주목되는 것은, 묵자의 겸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한정되지만, 홍대용은 이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물론이려니와 ‘사람과 사물(즉 자연)’의 관계 및 ‘자족과 타족’의 관계로까지 확장시켜 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제목 중에 보이는 ‘범애’라는 말은 홍대용에 의해 확장된 겸애를 지칭한다. 사회와 자연을 아우르는 홍대용의 도저한 평등사상의 배후에는 바로 이 ‘범애’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6-7쪽)
왜 저자의 이런 말이 눈에 확 띄었던 것일까? 우리는 소위 ‘국사’를 통해 그리고 80년대에 등장한 민중사와 같은 역사 서술을 통해, 고려의 만적, 조선의 임꺽정, 동학운동이 이루어 낸 차별에 대한 저항적 외침을 들어왔기에 그 의미를 느낄 심장을 갖고 있지 않다. 평등한 개인을 바탕으로 한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신분적 차별이라는 말이 갖는 삶의 질곡과 무게를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사를 연구해 온 한 외국학자의 이런 지적도 있다. 우리가 ‘노비’라고 부르는 이른바 노예계급이 조선의 경우 1894년 갑오경장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법적 사회적 제도로서 존재해 왔다는 것은 한국의 역사학에서 의미 없는 진술처럼 지나치듯이 서술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겨우 100여 년 전까지 우리는 노예제도를 인정해 온 국가와 문명에서 살아왔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에게 불성(佛性)이 있기에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 속에서도 귀족과 노예가 공존할 수 있었던 고려 사회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이 인의예지의 본성을 갖추고 있다는 사상을 국가적 이념으로 공인하였던 조선 사회에서 노예제도가 엄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것이 단지 이념과 현실의 괴리일 뿐인 것인가?
5. 영원한 금기, 묵자를 말하다!
고대 중국에서 천민 출신의 사상가로서 유가를 비판하였던 묵자는, 유가의 차등적 사랑의 대안으로 ‘겸애’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묵자와 그의 제자들이 천민이라는 그의 출신성분은 20세기 사회주의 이념을 신봉하는 역사가와 사상가들에 의해 혁명적 사상가로서 영웅시되었다. 공자의 보수적 반동사상에 반대하는 인민의 영웅이자 모범으로 칭송되었던 것이다. 1949년 신중국의 성립은 이를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평등의 실현을 국가적 이념으로 하는 사회주의 중국에서조차 묵자는 계승해야 할 전통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1949년부터 1960년대 문화대혁명이 본격화되기 이전까지, 사회주의 중국에서 일어난 전통 계승 논쟁을 살펴보아도 평등의 사상가 묵자는 영웅으로 칭송만 될 뿐 현대에 계승해야 하는 사상가로 주장하는 학자가 없었다는 것이 캄 루이(Kam Louie)의 지적이다. 묵자는 평등을 지고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주의 중국에서조차 무성한 찬양 속에서 실은 푸대접을 받은 것이다.
흔히 이단(異端)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양묵’(楊墨)이 맹자에 의해 언급되며 비판적인 말로 성립된 후, 한(漢) 나라가 성립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그 묵자의 사상이, 엄격한 신분제도를 유지하고 노예제도를 버리지 않았던 조선 사회에서 평등의 이름으로 한 사상가를 통해 부활하였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홍대용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노씨와 묵씨는 가르침은 다르지만 순박함과 검소함은 또한 취할 만하다네.”(71쪽)
“양씨의 위아(爲我)는 소부, 허유, 장저, 걸닉의 유이니, 그의 청고(淸高)하여 세속을 끊은 것은 넉넉히 완악한 것을 변화시켜 염치 있게 할 만하였고, 묵씨의 겸애와 근검과 절용은 세상의 급박한 사정에 대비하여 위로는 시속을 구제하고 아래로는 사사로움을 잊을 수 있게 하였으니, 또한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현명합니다... 이를 금수로 여겨 배척하는 것은 혹 지나친 일이 아니겠습니까? (...) 이단의 학문이 행해진다고 해서 세상에 해가 될 게 무엇이겠습니까?”(71-2쪽)
이단을 운운하는 것은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사회에서, 비록 사적인 편지에서 한 말이긴 하지만, 홍대용이 “몇 번이나 유에서 도망쳐 묵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소”(69쪽)라며 고민을 토로한 것은 저자의 말처럼 “조선 사상사의 일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수많은 조선의 사상가들 모두에게 자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이단이거나 사이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짧은 인용이지만 저자의 흥분된 진술에 공감하는 것은 평자만의 감흥일까?
7. 홍대용을 보는 새로운 눈, <범애와 평등>
이 책 범애와 평등은 바로 이러한 저자의 감흥(?)을 엮어낸, 그러나 치밀한 자료조사와 치열한 사색의 결과를 담아 펴낸 홍대용 사회사상에 대한 연구서이다. 총 6개의 장과 부록으로 구성된 이 책은, 또한 그간의 학계에서 연구해 온 경향에 대해 여러 가지로 이의를 제기하는 도발적인 성격의 책이기도 하다.
우선 제1장, “무엇이 문제며 어떻게 할 건가?” 에서는 책 전체의 문제의식과 내용을 개괄적으로 제시하면서 홍대용을 바라보는 시선을 교정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그의 사승관계로부터 오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서 그의 사상을 해석한다든가, 그의 과학사상이 서학에서 온 것이라는 환원론적 해석 등은 홍대용이 다양한 사상적 계기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나가는 독창성을 살리지 못하는 '박제화' 해석이라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홍대용이 청나라를 방문하였던 ‘연행’(燕行)과 그 경험인 ‘중국 읽기’야말로 이전과 이후를 가를 만한 중요한 기준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그 후 그의 정신 속에서 발현되는 창조적 사고는 저자에 의해 세 가지로 조명되는데, 그것들은 사상의 자유추구, 화이론(華夷論), 평등의 문제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주제를 다루면서 제2장과 제3장에서 홍대용의 사회사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장자>와 <묵자>를 원용하여 스스로의 사상을 체계화하는 내외 합일의 창조적 과정으로서 이해하고자 한다. 특히 주로 과학사상과 사회사상으로 나뉘어 연구되었던 홍대용의 주저 <임하경륜>(林下經綸)과 <의산문답>(醫山問答)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사상의 본령이 사회사상쪽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사상의 특징을 ‘범애’(汎愛)라는 말로 표현되는 평등 지향적 사상이다.
이어지는 장에서 저자는 북학파의 일원으로 간주되어 왔던 그간의 연구 시각과 달리 홍대용과 박지원 일파의 사상적 차이에 주목하면서, 중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박지원, 박제가와의 차이, 문명과 물질적 가치를 보는 관점의 차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상적으로 유학을 벗어나지 못한 박지원, 박제가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홍대용은 ‘공관병수’(公觀倂受)라는 독특한 학문적 방법론을 통해 이단까지 자신의 사상 속에 포섭하여 새로운 세계관과 사회적 원리를 창조해 내었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제5장은 홍대용이 주장했던 평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저자가 평등의 문제를 개념적인 차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개혁론자들, 예컨대 유형원, 정제두, 이익, 유수원,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등과 비교하면서 구체적으로 토지제도, 교육제도, 신분제도 등을 다각적으로 비교 검토한다는 점이다. 이런 저자의 노력은, 평등의 문제를 추상적 이념의 문제가 아닌 구체적인 삶의 과정과 제도의 차원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홍대용의 문제의식을 보다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장치처럼 보인다.
적어도 나는 이 책 <범애와 평등>이 보여주는 이러한 내용적 요소들로 인해서도 마땅히 주목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만나야 하는 ‘유학’ 혹은 ‘유교’가 있다면, 그것은 고원한 형이상학의 체계를 수립한 철학이거나 뛰어난 우주론과 세계관을 구축한 과학사상 이전에, 신분을 넘어서서 인간다운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추구했던 사회사상으로서, 그리고 이를 구체적인 삶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제도개혁론으로서 ‘유학’을 논했던 그런 사상가의 유학이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홍대용은 아마도 그런 인물 가운데 가장 앞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범애와 평등>은 홍대용 사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조선시대 유학사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주며,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지침으로서 손색이 없지 않나 싶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저자의 책을 통해 본론에 해당하는 연구를 시작해야 할 듯하다. 또한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의미와 가치를 갖는 방식으로, 전통 유교 사상이 부흥하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음을 밝힙니다. copyrights@aporia.co.kr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4, 201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