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말로는 ‘근대’로 번역되는 ‘모던’에는 여전히 뭔가 매혹적인 요소들이 있다. 미술 영역에서의 용어로는, 모던(근대) 아트와 컨템퍼러리(현대, 동시대의) 아트를 구분하려고 하지만, 좀 더 심플하게 보면 현대 미술은 모던 아트의 혁명적 변화의 연속선 상에 있을 뿐인 어떤 지점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미술뿐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모던’은 거대한 화두이다. 철학에서도(스피노자와 칸트를 상기하자) 정치학에서도(정치학계에서의 최초의 근대인 마키야벨리를 떠올려보자) 모던은 뭔가 근본적인 인류사의 변화였다. 그것은 홉스봄이 <혁명의 시대>에서 말한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정치혁명이라는 근대 세계의 2대 혁명과 등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책도 실은 그 ‘모던’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법학계) 분과적 버전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법학계(특히 형법)에서의 모던으로 상징되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체사레 베카리아이다.
그동안 책을 읽다가, 이런저런 책에서 여러 번 인용이 되어서 궁금했고, 조국 교수의 <법 고전 산책>이란 책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것까지 봤다. 하지만 직접 책을 읽을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y독서 모임에서 선정해서 읽게 되었다.
책이 절판되어서, 오래된 중고책을 좀 비싼 가격에 사서 읽었는데. 책 상태는 참 그랬는데, 그리고 책 편집도 성실하지 않게 오자가 많았지만, 내용은 상당히 좋았고, 이 책에 애정이 있는 역자들이 쓴 서문도 이 책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핵심은 형법 영역에서 법률이 근대적 계몽정신에 한참 모자르게, 예전의 고대적 관행적 행태과 관습에 머무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것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평등주의적이고 인민주의적 가치에 한참 멀게 어긋나 있고, 세습적 특권자들의 임의성이 작동하는 문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비판적 대안을 내세우고 있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표현의 오리지날은 이 베카리아의 책에서 먼저 등장했고, 이후 벤담이 자신의 공리주의 이론을 펼치면서 인용했다고 한다. ‘최대다수 최대행복’이라는 건조해 보이는 공리주의적 가치가, 실은 베카리아가 처음 이 말을 할 때는 매우 평등주의적이며 특권적인 것과 거리를 유지하는 차원에서의 인민(민초, 평민, 국민으로 번역해야 할까)주의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특권과 세습에 대항하는 해방적 표현이였던 것이다.
특히나 고문과 사형제와 관련된 저자의 근대적인 해방적 정신의 스탠스에게 비롯되는 일갈은 마치 <상식/인권>을 쓴 토머스 페인의 멋진 필치를 연상케 한다. 읽을수록 흐뭇하고 고무되는 느낌, 좋은 의미에서의 ‘페인’적 느낌이, 법학 고전을 읽을 때도 느낄 수도 있다니, 싶은 것이다.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책이고, 핵심은 5-6개 정도의 챕터에 몰려있다. 내가 읽은 지산(2000년 출간) 버전으로 말하자면, ‘12장 고문’과 ‘16장 사형’이 핵심이고 또 그 정도로 괜찮은 통찰을 보여주는 챕터는 ‘2장 형벌의 기원과 형벌권’, ‘9장 밀고’, ‘35장 자살 및 국적이탈’, ‘41장 어떻게 범죄를 예방할 것인가’ 정도이다.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토머스 페인의 <상식, 인권> (필맥, 2004)을 읽고 좋았던 분들에게 강력 추천. 또한 거꾸로 이 책 읽고 좋았던 분들은 페인의 <상식, 인권>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