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1-02 11:15
로고스와 레마 (5): 마흔 살에 든 생각,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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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와 레마(5): 마흔 살에 든 생각, 내가 10년만 젊었으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3-4]

1.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 선배가 물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직하여 1982년 7월 회사의 부서를 배치를 받아서 출근을 시작한지 얼마가 안 되어 오랜만에 만난 학교 선배에게 받은 질문이다. 그 당시 내 나이 25살. 지금의 내 둘째 아이 나이보다 더 어렸던 시절. 지금 생각하니 참 좋은 나이가 맞기는 한 것 같은데 그 당시 좋은 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지금 이 시대의 25세 젊은이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어쩌면 미래도 불확실하고, 직장이든, 배우자든, 아무것도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모든 사회 환경이 오히려 30여 년 전 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을지.

"예, 올해 스물다섯 살입니다." 내가 25세 이라고 하니 선배가 하시는 말씀, "참 좋은 때다. 내가 자네 나이이면 뭐든 할 수 있겠다. 난 자네보다 열 살이나 많네. 35세씩이나 되어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결혼하여 애까지 있으니 뭘 다시 시작하기도 어렵고."

그리고 5년쯤 시간이 흘러 나도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을 때 다시 만난 선배. 다시 물었다. 자네 나이가 얼마냐고.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 :예, 올해 30살입니다." "참 좋은 때다. 내가 자네 나이이면 뭐든 할 수 있겠다. 난 자네보다 열 살이나 많네. 40살씩이나 되어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학부형이 되어 이제는 뭘 다시 시작하기도 어렵고."

그리고 다시 5년이 시간이 흘러서 다시 만난 선배. 다시 물었다. 자네 나이가 얼마냐고. "자네 올해 나이가 얼마인가? "예, 올해 35살입니다." "참 좋은 나이 때다. 내가 자네 나이이면 뭐든 할 수 있겠다. 난 자네보다 열 살이나 많네. 45살씩이나 되어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직장생활 다 끝나가는데 이제는 뭘 다시 시작하기도 어렵고..."

내 나이 35세, 선배 나이 45세... 여전히 열 살 차이, 똑같은 질문, 똑같은 하소연. 첫 질문을 받고 10년이 지났는데, 5년마다 한 번씩 같은 질문과 하소연. 다른 점은 각각의 나이가 5살씩 많아졌을 뿐이었다. 하긴 45세가 많기는 하네.

그 질문을 받고 문득 생각했다. 선배뿐만 아니었다. 나 자신도 나보다 어린 후배를 보면 똑같은 질문을 해 왔었다. 선배가 40세이고 내 나이 30세 일적에도 나는 나보다 다섯 살 어린 후배에게 똑같은 질문과 하소연을 했었다.

2.

선배의 똑같은 질문과 변화 없이 나이 드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때부터 생각을 바꾸었다. 선배에게 나이 질문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후배들에게 나이 질문을 하지 않고 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기로 했다. 5년 뒤 “40세가 될 내”가 지금 “35세의 나” 에게 묻기로 했다.

5년 뒤의 나: 자네 올해 나이가 얼마인가? 지금의 나: 예, 올해 35살입니다. 5년 뒤의 나: 참 좋은 때다. 내가 자네 나이이면 뭐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스톱. 나는 따져 물었다.

지금의 나: 선배님은 제 나이 때라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5년 뒤의 나: ……

나는 생각했다. 5년 뒤, 10년 뒤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인 지금의 나를 보고 훈수할 말이 무엇일까? 직장생활 3년만 하고 공부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은 나. 그 동안 일에 빠져서 잠시 뒤돌아 볼 틈도 없이 밤낮을 현재의 회사와 현재의 집과 현재의 교회만 왔다 갔다 할 때 문득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 것이다. 대답을 주저하던 나의 5년 뒤의 선배인 “미래의 내”가 한동안 생각하여 답한다.

5년 뒤의 나: 내가 너 나이라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고, 술도 줄이고, 하고 싶은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할 게 참 많군.

그리고는 구체적으로 노트에 기록을 해 보았다. 그 때가 1992년 내 나이 35살 때 느꼈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구체화 해 보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운동과, 술 끊는 것과 신앙의 재점검 그리고 공부 재개에 대한 준비였다. 선배 덕분에 이렇게 35살의 나이에 마흔 살의 생각을 미리 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4년 뒤, 1996년 나는 유학생으로 선발되었고, 교회의 중직으로 선발되면서 내 의지가 아닌 더 큰 힘을 가지신 분의 은혜를 받아 1996년 3월 16일 나와 후배들을 괴롭히던 술을 완전히 끊을 수 있었다. 

1997년 6월 25일, 한국전쟁의 일어났던 날, 대학을 졸업한 지 거의 18년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1996년 회사에서 유학생에 선발되어 미국에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게 된 것이다. 3년만 회사생활을 하고 공부를 계속하려고 한 것이 3년마다 새로운 일이 맡겨져서 다람쥐 쳇바퀴 돌던 생활에 대변혁이 일어난 것이다.

3. 

어릴 적에 많이 보던 무협지에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이 축지법(縮地法)이다. 무술에 내공이 뛰어난 사람이 서울 부산 거리의 천리 길을 지금의 KTX보다 더 빠르게 걸어다니는 것이다. 마치 땅을 종이지도처럼 접어서 축약해서 건너고 다시 지도를 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없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어찌 공간의 축지만 가능할까? 시간을 과거와 미래로 나누어서 축약해 보면 축시법(縮時法)은 없는 것일까? 어쩌면 흔적이 남겨져 있는 공간의 이동보다 흔적이 없는 시간의 이동이 더 쉬운 게 아닐까? 

특히나, 과거만 회상하고 후회하고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미래는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변화만 없다면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이 곧 미래이기도 하니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먼 미래일수록 예측이 어렵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예를 들어, 오늘이 수요일이면 수요일에 3일 뒤의 토요일 저녁에 일어날 복권 추첨의 번호는 예측하지 못하더라도 그 하루 뒤 4일 뒤의 일요일 저녁 뉴스 정도는 어느 정도 예측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현재의 습관들과 환경의 변화를 잘 관찰하고 준비하면 점쟁이나 예언자가 아니라도 스마트한 추측은 가능하리라. 요즘처럼 루틴 하지 않는 시대에서는 슘피터의 말처럼 미래를 예측한다기 보다는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4. 

어릴 때 기억하는 어머님의 모습은 웃음이 거의 없으신 분이었다. 16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가난과 시집살이에 웃을 일도 행복해 보일 일도 별로 없으신 어머님이 일 년에 한두 번은 하루 종일 웃고 있었다. 밭농사를 가는 아침부터 머리를 곱게 빗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환한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 당시 중학생이던 어린 나는 어머니의 그 모습이 매우 걱정이 되었다. 힘든 시집살이에 어머니가 멀리 도망가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하루 종일 불안해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은 서울에서 유학하던 큰형이 편지를 통해 집에 온다고 한 날이었다. 어머니는 아무에게도 이야기 안 했지만 큰형이 오는 그날을 아침부터 기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리 좋은 소식을 안다는 것은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기쁘게 참아 낼 수 있는 것이다. 산 아래 멀리 신작로의 먼짓길을 다니는 버스가 올 때쯤이면 허리를 펴고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어머니는 늘 장남이 혹시나 올까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오직 하나의 기쁨인 장남과의 만남을 위하여 힘든 일도 배고픔도 가볍게 참고 기다리신 것이다. 

5.

현업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고문역할을 하면서 틈틈이 후배의 회사를 방문하여 이야기 할 때가 있다. 그들에게는 젊음이 가장 큰 무기이지만 대부분 그들은 자기의 젊음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다. 자신들이 꽃인데 미처 꽃인 줄 모르고 사는 것이다.

후배 회사에 “이미영”이라는 마케팅 담당 직원이 있었는데 벤처회사 직원들과 단체 저녁 식사 중에 이런 질문을 뜬금없이 한 적이 있었다. “이미영씨는 언니가 사미영씨가 있고 오미영 씨도 있는데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시나요?” “네?” 황당할 것이다. 

“20대의 이미영(2미영)”에게 가상의 언니인 “40대의 이미영(사미영)”과 “50대의 이미영(오미영)”에게 물어서 그들의 후배인 이미영씨에게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산다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었던 것이다. 황당해 하는 이미영씨에게 다음에 만날 때까지, 언니 사미영과 오미영에게 물어서 이미영이 지금 무엇을 하면 좋을지 종이에 적어오라고 숙제로 준 적이 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눈을 천정에 두고 다시 나를 내려다 보자. 천정에 있는 눈은 나의 10년 뒤의 미래의 내 눈이다. 1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 곧, 10년 뒤의 나를 되돌아 보는 것이다. 아끼는 동생이나 후배에게 훈수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노트에 기록하고 지금 바로 실천하자.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권강현, 삼성전자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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