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읽기: Geschichte(역사)를 Geschichte(이야기)하라 (2)
박흥식 (영화감독)
피터 포크가 출연하는 영화 속 영화에서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유대인 역을 맡은 엑스트라 가운데 한 명이다. 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피터 포크가 그녀를 연필로 스케치한다.
이 엑스트라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1945년 베를린의 풍경이다. 이런 기억이 자료화면(documentary footage)으로 호머에게 2차례, 천사 카시엘에게 2차례 총 5차례 등장한다. 이것이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변증법적 이미지일 것이다. 불러내온 과거가 현재와 부딪혀 현재성을 지니게 되는 것일 터이다.
피터 포크가 위에 등장하는 엑스트라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포크는 이 엑스트라를 그리며 ‘... extras, extra people… ’이라는 말로 엑스트라들을 특별한 사람들이라며 애정을 보내고 있다. 이 엑스트라와 같은 보통 사람들, 그들이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가 끌어안으려고 하는 대상일 것이다.
이 영화의 공간은 수평적으로는 서베를린, 베를린장벽, 동베를린을 지난다. 수직적으로는 다미엘과 카시엘이 자주 머물며 지상을 내려다보는 승리의 여신상부터 바로 이 지하 공간까지일 것이다. 승리의 여신상은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만들었으나 베를린 사람들은 승리의 여신상을 골델제(Goldelse, 황금의 엘제)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승리는 싸움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하 공간은 피터 포크가 출연하는 영화의 촬영 현장이다. 소위 ‘히틀러 붕커(Hitler Bunker)’ 가운데 하나다. 지하의 저 나치 깃발 때문에 그러니까 골델제상과 대비시키기 위해 이 영화의 독일어 제목은 <베를린의 하늘>이 아니라 <베를린 위의 하늘>이 되었을 것이다. under의 반대는 of가 아니라 over이니까.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이 걸으며 나누는 대화 속에 인류의 전체 역사가 담긴다. 태고부터 대홍수, 전쟁, 나폴레옹, 그리고 지금까지. 첫 번째 이미지는 카오스, 두 번째 이미지는 대홍수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이어서 두 천사는 장벽을 통과해 동베를린을 걷는다. 다미엘은 인간이 되겠다는 결심을 밝힌다. 페터 한트케의 문장은 온통 놀랍다. 난 그냥 ‘느낌 아니까!’ 정도이지만.
촬영 현장과 더불어 피터 포크에게 중요한 공간인 임비쓰(Imbiss)이다. 간식과 음료를 파는 곳이다. 이 임비쓰에서 전에 천사였던 포크는 보이지 않는 천사 다미엘의 존재를 느끼고 손을 내밀며 ‘커피와 담배를 같이 하면 끝내준다.’며 인간이 될 것을 권유한다. 다미엘은 그 손을 잡지만 다른 임비쓰 장면에서 카시엘은 포크의 손을 잡지 않는다. 임비쓰 뒤로 건물이 하나 보인다. 이 건물도 ‘히틀러 붕커’ 가운데 하나다. 이제는 나치의 폭력을 기억하는 공간이 되었다. 건물 벽에 ‘Wer Bunker baut wirft Bomben’이라고 쓰여 있다. 그대로 옮기면 ‘벙커를 짓는 자가 폭탄을 던진다.’는 뜻이다. 폭격을 하려는 자는 벙커부터 짓는다. 자신도 피폭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는 피폭이 자신들 탓이라는 독일인들의 반성이 먼저 들어가 있는 것 아닐까?
베를린장벽 사이에서 천사에서 인간이 된 다미엘이 기쁨에 넘쳐 처음 큰 길로 나서는 장면이다. 직전 쇼트부터 요란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구급차가 다미엘과 겹쳐져 지나간다. 보는 사람에게는 마치 구급차가 다미엘을 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8번 글에 나오는 ‘억눌린 자의 입장에 서면 역사는 전혀 진보하지 않았다. 늘 예외상황 곧 비상사태(Ausnahmezustand, state of emergency)이다.’라는 내용을 상기시키는 경고로 들린다.
인간이 된 다미엘과 마리온이 만나는 클럽에서 천사 카시엘이 등을 돌리고 있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가 앞에서 불어오는 폭풍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두 가지일 것이다. 폭풍에도 불구하고 날개를 접어 앞에 펼쳐진 파국을 끌어안거나, 폭풍에 밀려 뒤로 물러나다가 결국 등을 돌리거나. 카시엘이 등을 돌린 것은 물론 자신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일 테지만 말이다. 다미엘처럼 다가가는 천사도 있어야 하지만 자신처럼 여전히 전체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며 인간을 응원해야 하는 천사도 있어야 할 터이므로.
인간이 된 다미엘과 마리온이 만나고 있다. 만나야 할 것이 만나고 있다는 듯 두 사람의 만남은 당연하게 그리고 무슨 제의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 정도가 아니다. 마치 새로운 아담과 이브가 창조되는 순간 같다. 자신들이 새로운 시조가 될 것이란다. 자신들로 해서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이란다. 호머가 꿈꾸는 포츠담 광장의 복원이, 역사의 구원이 둘의 만남으로 이미 이루어진 듯하다. 이런 어마어마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만남이 단순한 남녀의 만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미엘은 역사를 태고부터 지켜봐 온 전체로서의 과거다. 그것도 억눌린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온. 이 과거가 공중그네에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리는 마리온이라는 현재와 만난 것이다. ‘경이(Staunen)’의 순간일 수밖에, 이 순간이 바로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지금시간(Jetztzeit)’일 수밖에...
하나가 된 다미엘과 마리온은 그들이 만났던 클럽에서 이제는 같이 일을 한다. 마리온이 위에서 밧줄 연기를 하고 있고 다미엘이 밑에서 그 밧줄을 잡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 새로운 현재를 이루고 있다. 이 현재는 더 이상 위태롭지 않다. 천사 카시엘은 여전히 흑백의 세계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다미엘이 읊조리며 적는다. ‘어떤 천사도 모르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이 문장의 주절은 ‘나는 이제 안다.’ 이다. 영화의 처음이 ‘아이는 몰랐다.’인 것과 대비를 이루며 이미지에 마침표를 찍고 있다. 이 영화가 <욕망의 날개>나 <베를린 천사의 시>라면 영화는 여기서 끝나야 한다. 형식상 마침표를 찍기에 이 지점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터이므로.
그러나 카메라는 카시엘, 호머 쌍을 다시 한 번 짧게 보여준다. 천사 카시엘은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골델제상 위에서 베를린을 내려다보고 있고, 호머는 포츠담 광장에서 베를린장벽 쪽으로 다가가며 인류는 그들의 대변자인 이야기꾼을 필요로 한다면서 이야기에 대한 의지를 다시 강하게 피력한다. 그 사이 카메라는 베를린장벽 위의 나눠지지 않은 하늘로 천천히 올라간다.
영화가 끝났음을 알리는 자막이 ‘The End’가 아니라 ‘To be continued’인 것은 속편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아닐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박흥식의 자기 소개 :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다.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 영화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베를린 천사의 시>를 다시 볼 일이 있었고, 이 영화의 바탕에 발터 벤야민의 사유가 깔려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흥분하여 10번 정도 더 보았고 벤야민에 대해 어설프게 알고 있던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가다듬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난 학자가 아니다. 참고한 국문, 독문, 영문 자료 등을 통해 이 영화와 벤야민의 연관에 대해서도 이미 연구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벤야민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이 글을 쓰는 것은 단지 조금 더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느낀 것이 이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도 보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비평이 아니라 일종의 해설이다.
* 이 글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박흥식의 영화이야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 2. No. 4. 2014년 4월, 박흥식,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