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은 유대땅을 뒤흔들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전 세계 유대인들이 한 자리로 모이는 유월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타날지 여부에 쏠렸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예수님에 대해 냉랭하던 유대지역의 분위기도 나사로가 살아난 뒤로는 갑작스러운 관심과 지지로 돌변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이런 지지와 환영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예수님에게 돌을 던지면서 체포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나,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인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비난만큼이나 지지에서도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들이 꿈꾸고 있는 지도자는 실제 예수님이 아닌 자신들이 머릿속에서 그려낸 투사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으로 구성된 이상적인 지도자의 틀로 규정되기 원치 않았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가하고, 경청하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사람과의 대화를 원했다.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관계를 원했다.
예수님에게는 주위사람들의 이런 환호성과 칭송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갈증과 결핍을 메시아라는 허상에 투사했다. 그 지지는 자신의 환상에 대한 열광이었지 예수님 자신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이 순간이 예수님을 더 외롭게 만들었다. 이 때 예수님에게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베다니! 베다니에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요단강 건너편으로 유대지도자들을 피해서 도피할 때만해도 제자들은 당장 살아남아야 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 후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은연중에 예수님이 로마속국에서 해방시킬 정치인이나 독립군 사령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유대인들의 전폭인 지지를 등에 업은 예수님은 더 이상 단순한 선생님이나 예언자가 아니었다. 유대인들이 수백 년 동안 기다려왔던 다윗 왕과 같은 위대한 통치자가 될 인물이었다.
제자들은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한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는 잘하면 공직에도 진출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예수님의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한 만큼 삼 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제자들의 위치도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는 청탁이 쇄도했다. 평소에 연락이 없던 친구들도 찾아와서 선물을 내밀며 눈도장을 찍었다. 뭔가 모른 흥분에 사로잡힌 제자들이 예수님의 외로움을 알 턱이 없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예수님 가까이에 앉고 싶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사로와 그의 여동생들은 예수님을 베다니 자택의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날 초대받은 손님들은 모두 대선후보 후원의 밤에 참석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수님과 나사로 가족의 마음과 상관없이 주변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고, 그날의 좌석배치에 따라서 예수님의 정권획득 후 논공행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짐작했다. 차기 권력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나사로의 집은 열띤 흥분, 기대,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날의 주인공은 알 수 없는 무기력, 우울함, 외로움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사로는 이 저녁식사를 주최한 주최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다.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서로 인사를 시켜주고, 그들의 질문에 성심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나사로의 존재 때문에 저녁만찬은 활기를 띠었고, 분위기는 한껏 고무되었다. 식탁에 음식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르다는 시종을 시켜서 음식을 재빨리 채워두도록 지시했다. 행사전체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매니저는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탁월함을 과시했다. 타고난 수완은 그녀가 준비한 음식의 양이 적절했다는 데서 빛났다. 친화력 있고 매력적인 호스트와 깔끔하고 사려 깊은 매니저가 준비한 저녁 테이블은 너무도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늘 예수님과 깊이 공감하며 대화하던 마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마리아는 어디 있냐며 묻는다. 예수님도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마리아가 어디 있는지 둘러보았다. 과연 마리아는 어디에 있는가? 파티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가라앉아 어색한 정적이 흐르자 마리아가 등장했다. 그녀는 한 켠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참석자들의 시선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우아한 옷에 쏠렸다. 무엇보다 그녀의 손에 들린 진귀한 향유 한 병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향유 병은 그녀의 소박한 옷과는 대조적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할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는다. 마리아의 움직임에는 따스한 관심, 공감, 동정, 아픔 같은 것이 배어있었다. 그녀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찬찬히 마음을 다해서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는 듯했다. 예수님의 발아래 대아를 받쳐둔다. 향유의 병뚜껑이 조심스럽게 개봉된다. 병을 기울이자 향기로운 액체가 예수님의 발 위로 천천히 흘러내린다. 이 신비스런 액체가 촉촉히 발등을 감싸고 발바닥을 거쳐 대야에 떨어진다. 향유가 흘러내리는 순간 마리아의 눈에도 촉촉한 눈물이 고였다. 그 눈물은 향유처럼 뚝뚝 떨어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향유가 예수님의 발에 닿은 순간, 예수님은 그 차가움에 움찔했다. 하지만, 몇 초 뒤 그 차가움은 신선함으로 바꿨다. 그것은 신기한 개운함이었다. 감미로운 향기가 예수님의 코를 만지작거렸다. 향유는 그 부드러운 촉감과 향기로 예수님의 감각을 열었다. 온몸의 감각이 속속들이 열리자, 답답하게 굳어진 예수님의 마음도 열렸다. 향유의 따스함이 예수님을 감싸자 예수님의 마음에서 새로운 박동이 뛰기 시작했다. 우울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던 예수님의 마음이 새로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 향기가 다가와 예수님의 마음을 열었다.
마리아는 향유를 붓기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베다니를 찾은 예수님은 환호하는 군중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예수님의 눈빛에서 그분의 외로움, 슬픔, 절망, 우울함을 읽어냈다. 그녀는 말로 그분의 마음에 공감한다고 표현하기 싫었다. 그런 표현은 어쩌면 이미 그녀의 분수를 넘어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말을 꺼내기에는 그의 소명은 너무 깊고 비밀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혼수가 될 전 재산을 처분해서 향유 한 병을 사는 것이었다. 나사로 오빠에게 부탁했다. 이 향유를 사달라고 말이다. 오빠는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왜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사는지 묻지 않았다. 오빠는 동생의 행동에 그가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지혜를 믿었다. 오빠로부터 향유를 건네받았을 때, 그녀는 예수님을 떠올리면서 기쁨에 젖어 들었다. 그녀가 예수님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저녁식사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하고 싶지 않았다. 예수님의 슬픔, 외로움, 우울함이 끊임없는 부담감으로 그녀의 마음을 억눌렀다. 그녀에게는 예수님만을 위해서 깊이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예수님만이 아는 길,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길,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길이 앞에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박수치는 순간 단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위해 슬퍼해줘야 했다. 그 알 수 없는 마음에 이끌려서 그녀는 지금 향유병을 들고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녀가 들어선 순간은 파티의 흥겨움이 알 수 없는 정적에 삼켜진 어색한 시간이었다. 이 어색함이 그녀의 등장을 준비한 듯했다. 연회장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그녀의 눈에 예수님이 들어왔다. 그분을 본 순간 그들 사이에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는 서글픔이 찾아왔다. 그분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고, 어두워 보였다. 그녀는 향유를 그 발에 부었다. 그 순간 그녀에게 행복이 찾아왔다. 향유가 예수님의 발에 떨어졌다. 발 위를 덮어 흘러내리는 동안 향기는 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그녀의 전 재산이 예수님의 발아래 쏟아진 순간 그녀는 거대한 희열을 느꼈다. 그 향유가 예수님의 몸에서 가슴으로 촉촉이 스며들고 있음을 체감했다. 예수님의 외로움, 슬픔, 절망, 그림자가 향유의 따스함에 흡수되고, 가라앉고 있었다. 향유가 흐르는 만큼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예수님의 아픔에 대한 깊은 공감의 표시였다. 그 눈물은 점차 감사와 희열의 눈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는 마지막이다. 예수님에게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마지막 기회였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를 풀어 내린다. 그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 위의 향유를 천천히 닦아내었다. 건조하고, 팍팍하던 예수님의 발이 윤기 있고, 탄력 있는 피부로 변화되었다. 머리카락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따스함이 발을 스쳤다. 마리아의 섬세한 배려와 따스함도 예수님의 발을 타고 그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마리아는 향유로, 머리카락으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예수님은 늘 공감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가르쳤다. 마리아로부터 공감 받고, 사랑 받는 예수님은 행복했다. 이제까지는 공감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만 사느라 지쳤지만, 오늘은 충분한 사랑과 따스한 공감이 예수님을 위로해주는 특별한 날이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향유병만 보아도 엄청난 거액이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돈이 예수님의 발에 허비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마리아를 나무란다.
“정말 비싼 향유군요. 그 돈이면 거창한 사회사업을 할 수 있어요. 향유를 쏟아버리다니! 마리아가 실수한 거예요.”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위로에 너무 감사했다. 예수님이 말한다.
“마리아를 나무라지 마세요. 그녀는 저와의 이별을 준비한 거니까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늘 곁에 있지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저와의 이별을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게도 특별한 날입니다.”
예수님은 참다운 삶이 사랑하는 삶일 뿐만 아니라 사랑 받는 삶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사랑과 위로는 주고받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리아로부터 전폭적인 이해와 수용, 격려와 지지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삶은 어떠했을까? 주기만 하는 삶을 살면서 예수님은 점점 더 침울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사랑과 위로를 베풀었다. 그래서, 마리아와 예수님의 만남은 아름다운 향유냄새로 가득하다. 그 공감은 투명한 향유병이 되어 반짝이고, 부드럽고 촉촉한 향유가 되어 흘러내린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각별하다. 그 속에는 향기와 눈물이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4, 2016년 4월, 박현욱,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