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8-26 11:37
요한 이야기 (5): 배반의 그늘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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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이야기 (5): 배반의 그늘

예수님에게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무엇보다 제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따스함이 있었다. 그들 내면에 깃들여 있는 독특한 매력,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는 탁월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과 눈을 맞춘 사람들은 그 깊은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예수님은 항상 마음과 마음이 공명을 이루는 순간을 원했다. 그래서 마음을 닫고, 예수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깊은 안타까움과 좌절을 느끼곤 했다. 

예수님은 주변사람들이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다. 이런 얄팍한 인간관계를 정당화하는 문화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 없이 스치고 지나가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나사렛 청년은 늘 진실한 관계만을 원했다. 만나는 사람들과 더 깊고, 친밀하며, 따스한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수많은 대중을 상대로 설교하며 사역하는 것보다는 작은 그룹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즐거워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날은 반드시 한적인 곳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런 시간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가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가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을 만나서 대화 나누는 것이 좋아했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그런 예수님도 진실한 관계를 만드는데 실패한 일이 있다. 제자 유다의 눈에는 반짝이는 영리함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누군가는 경리를 맡아야 하는 법이다. 직업이 돈 계산이었던 세관원 출신 마태가 있었지만, 경리업무는 유다에게 맡겨졌다. 그의 정확성, 신속성, 유연성이 여느 제자들보다 출중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이런 제자들에게 돈 관리는 불편하고, 까다롭고, 신경 쓰이는 업무였다. 이렇게 살림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유다가 고마웠다.

유다는 매사에 빨랐다. 모인 사람들의 인원수만 보아도 식비로 얼마가 소요될지 추산할 수 있었고, 미팅에서 오간 대화 몇 마디에서 사람들의 역학관계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예수를 따른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재리에 밝고, 현실정치에 눈이 열린 유다와 나사렛 예수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권력과 돈에 끌리는 유다가 비주류 예언자 무리에 합류한 것은 의외였다.

유다는 예수님에게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독특한 가능성을 보았다. 당시 유대는 사회적 적폐들이 쌓여 신음하고 있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이방민족에게 지배 받는다는 서러움이 있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언젠가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한편, 종교지도자들은 로마와 결탁해서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그들은 성전과 제사라는 유대교 신앙의 형식과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과 지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로마제국과 공존하기 위한 적절히 타협하면서 자신들의 이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토라에 충실하게 종교를 삶의 구체적인 규범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이렇게 여러 정치집단이 얽히고 설켜 있는 곳이 유대지방이었다. 유대사회는 내부적으로는 알 수 없는 답답함, 불합리, 불의, 혼돈, 분열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다는 이런 문제가 내부적인 몇 가지 개선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의 엘리트가 나서서는 유대사회가 혁신될 가능성도 없고, 실질적인 리더십을 얻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평범한 민중 가운데서 제대로 된 리더가 등장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고, 사회혁명의 도화선이 될 것을 간파했다. 그런데 그 앞에 예수가 등장했다. 그는 예수의 상품성을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거절하고, 무시할지는 몰라도 그 사람됨과 지혜에 언젠가는 설득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저평가된 우량주가 언젠가 적당한 시기를 만나면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제까지는 그 주식의 가치는 저평가를 넘어서 폭락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하지만, 나사로를 살린 이후로 정치지형은 180도로 바꿨다. 어제까지 쓰레기로 평가되던 예수님의 가치가 이제는 최고의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유다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3년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왔다. 유다는 쾌재를 불렀다. 역시 자신에게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고, 정치판을 읽는 혜안이 있었다. 이제 예수님이 깃발을 들어올리면, 모든 사람들이 결집해서 정권을 획득하면 될 일이었다. 유다는 이미 계산을 끝냈다. 그들이 정권을 획득하면, 즉시 현재의 종교지도자들을 축출하고, 예수를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해서 로마로부터 독립을 얻어내는 것이다. 로마가 너무 세게 나오면, 현재의 지배층처럼 로마와 타협하고, 로마의 세력이 약화되면 독립국가를 밀어붙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복병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이 예수라는 인물은 정권획득, 혁명, 독립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자신에게 찾아온 천우신조의 기회를 동네 닭 보 듯이 무시했다. 제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자고 간곡히 부탁해도 뜬금 없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유다에게 예수는 한심스러운 고집불통 철부지처럼 보였다. 현실과 정치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순수한 촌뜨기에 불과했다. 

유다는 제자들과 한 마음으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저녁식사에 등장한 예수님은 파격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대야를 놓고, 수건을 허리에 두른 채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이었다. 그 행동은 예수님에게서 돌아선 제자들의 마음을 다시 예수님에게로 돌려놓았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말이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강력하게 형성되었던 이질감, 갈등이 발을 만져주는 예수님의 손길에 녹아 내렸다.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다시 새로운 공감대와 이해가 싹틀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유다는 직감했다. 예수님이 하자는 대로 하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유대사회에서 숙청될 운명이었다. 예수님은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위험요소였다. 지금의 유대백성의 지지를 활용해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면, 유대지도층들이 먼저 예수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불꽃에 무작정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설득해내면 답이 보였을 것이다. 이제 분위기는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설득된 모양새였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그룹에게 남아있는 것은 숙청뿐이었다.

이제 유다에게 남아있는 선택은 너무도 분명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개죽음을 당하느니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이제까지 예수님의 개혁적인 단체의 회계담당자로 살았던 삼 년이 후회되었다. 그런데 그런 회한에 절망해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지금 이 순간 넋 놓고 있다 보면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의 인기에 잠시 뒤로 물러서 있을 뿐이지 이런 분위기가 가라 앉으면, 어떤 죄목이든지 붙여서 예수를 죽이려고 들 것이다. 어제만해도 권력자의 막후의 실세가 되어 유대지방에 자신을 뜻을 펼쳐보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예수는 이렇게 잘 차려진 밥상을 발로 차버렸다. 유다는 예수라는 인물이 권력, 돈과 같은 현실과 접촉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타협하는 인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는 그런 권력과 돈에는 정말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진실에 따라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답답한 사람인지는 미쳐 알지 못했다.

유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예수의 근거지와 움직임을 종교지도자들에게 알려주기로 결심했다. 예수가 숙청되기 전에 유대종교지도자들 편에 줄을 서서 자신이 예수의 제자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회심했다는 사실을 공식화할 수 있었다. 유다를 만난 종교지도자들은 너무도 반가웠다. 어떻게 예수를 죽여야 할지, 체포해야 할지 답이 없었는데, 늘 예수와 붙어 다니던 제자 중에 하나가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그 제자가 예수의 동선만 확인해주면, 유대군중들이 없는 곳에서 예수를 체포하면 족할 일이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은화 30개를 주어 약속을 분명히 했다.

예수님은 이미 유다의 마음에 미묘한 변화를 읽고 있었다. 발을 씻길 때도 마음을 열 생각이 없었던 것은 유다 뿐이었다. 유다의 얼굴은 실망과 절망, 분노와 회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유다의 그 냉랭한 얼굴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한다.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한 시간이 늘 행복했어요. 여러분들의 발을 씻기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연결되는 것을 느꼈어요. 하지만, 여러분 중에 한 분은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군요. 그 사람은 저와 같을 길을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저를 종교지도자들에게 넘겨줄지도 모르겠어요.”

제자들은 당황했다. 조급한 마음에 베드로는 요한에게 그게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재촉한다. 요한은 묻는다.

“예수님, 도대체 우리 중에 누가 예수님을 배반한다는 말인가요?”

예수님은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마음을 열 수 없는 제자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구나. 우리 모두가 함께 식탁에 앉아 친구로 남고 싶구나. 나를 떠날 사람에게 빵을 나눠주겠다.”

예수님은 그 빵 조각을 유다에게 전해주었다. 유다는 빵을 받기 전부터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모두 읽어내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빵은 발을 씻긴 예수님의 화해의 제스처였다. 하지만, 유다는 그 빵 한 조각을 받아먹고 싶은 생각도, 마음을 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순간의 선택이 유다의 인생을 좌우했다. 이런 때, 인정에 얽매여 판단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다. 예수님이 착하고 따스한 것은 인정한다. 그가 그렇게 따스한 사람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장래를 의탁하기에는 너무도 유약하고, 순진해 보였다. 예수님께 인생을 거느니 예수님을 죽이려 드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의탁하는 것이 더 확실해 보였다. 그들은 분명하게 돈을 약속해주었다.

빵을 받아 든 유다의 얼굴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유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던 예수님은 자신의 시도가 실패했음을 알았다. 

“유다야, 네가 계획하는 일을 하려무나. 너무 끌지 말고 신속하게 마무리 짓거라.”

제자들은 유다가 배반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예수님이 유다와 자금관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만 생각했다. 

결국, 유다는 빵조각을 받아든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유다가 떠난 빈자리는 쓸쓸해 보였다. 유다의 뒷모습은 한없이 측은해 보였다. 예수님은 유다가 어디로 가서 무슨 행동을 할지 직감했다. 그런 마음을 먹고도, 불편함이나 죄책감도 없는 유다가 불쌍했다.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있는 유다는 진실된 마음을 거부하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곳에는 예수님과 연결될 마음의 공간이 없었다.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뒤로 하고, 홀로 밤길을 나섰다. 유다에게는 낮보다 밤이 더 편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하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살아 남아야 한다. 살아 남아야 한다.’

한참을 걷다 보니 오른손에는 예수님에게서 건네 받는 빵조각이 있었다. 순간 주저했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흔들리면 안 된다! 빵이 쓰레기인양 길가에 던져 버렸다. 이 빵은 그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이다. 유다는 선언한다. 

‘이제 예수와는 끝이야!’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3, No.9, 2015년 9월, 박현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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