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초 한동안의 서울사무소 근무를 마치고 수원사업장으로 사무실이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수원으로 이사를 온지 3개월이 지난 2007년 11월 어느 토요일에 일어난 일이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었는지요?” 선릉역 부근 유니온스틸 빌딩의 지하주차장 관리인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앗, 안녕하세요, 그런데 제가 왜 여기에 왔죠?”그분도. 저도. 너무 당황했다. “..??..”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려보니 봉은사 옆 웨딩홀 결혼식장에 가야 할 내가 결혼식장 인근의 오랫동안 출퇴근하던 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진입하였고, 6년간 나와 인사를 나누던 주차장 입구에서 일하시던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기 전까지 나는 이곳으로 운전해서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몽유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매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결혼식장에 가야 할 것을 인근의 전 사무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수원에서 서울로 오는 한 시간 동안 신호위반이나, 작은 접촉사고나 운전을 함에 있어서 어떠한 위험한 일도 전혀 없이 이곳까지 무심코 운전을 해 온 나를 보고 무척 놀랐다.
또 다른 근육 이야기
회사에서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2001년 7월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했다. 신규사업분야의 특성상 수원에 있는 집에서 서울에 따로 마련된 사무실까지, 매일 이른 시간에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해야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매일 같은 코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피곤함을 잊고 살았는데, 서울로 운전하여 출근한지 6년 만에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으로 사무실이 변경되었다. 나로서는 참 편하게 되었다.
그 동안 수원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기가 너무 힘들어 집을 서울로 이사를 갈까도 생각을 해 보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렇게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사무실이 집 앞으로 이사를 왔으니 고민이 말끔히 해결된 것이다. 어쨋든 수원에서 서울 사무소까지 반복되는 운전 속에서, 눈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습관이 된 것이다.
이렇듯 자동차 운전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생각이나 머리로 “아는 것”과 손발이 “실행하는 것”의 관계를 극명하게 설명해 주는 재미난 현상이 발견된다.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처음 일년 동안은 운전이 힘들어 얼굴에 부스럼도 나고 온 몸이 피곤했는데, 계속해서 수년간 같은 코스로 매일 운전을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내가 아닌 손과 발이 알아서 운전을 한 것이다.
운전을 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처음 운전을 배우면 언제 핸들을 돌릴지, 언제 엑셀을 밟을지, 언제 브레이크를 받을지, 깜박이를 넣을지, 그리고 이러한 여러 행동들을 조합으로 동시에 해야 할지, 판단하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피곤해 질 수 밖에 없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처음에는 머리 속의 뇌가 눈과 귀의 신호를 받아 손가락과 발가락에게 지시를 하여 운전을 하다 보니 무척이나 피곤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손발이 훈련이 되니 어느 순간부터 나의 생각, 즉 뇌는 더 이상 운전에 전혀 관여를 하지 않고 눈과 귀의 신호를 손발로 직접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를 이용하여 손과 발이 차를 운전을 함으로서 내 몸은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위치에 있던 결혼식장과 사무실을 혼동하여 많이 다녔던 사무실로 운전을 해 오게 한 것이었다.
김유신 장군과 말
우리가 잘아는 신라의 김유신장군의 젊은 시절 일화가 생각난다. 김유신장군이 한 동안의 방탕한 생활을 접고 큰 결심을 하고 학문과 무술을 연마하기로 했는데, 그 결심을 알 수가 없는 화랑 김유신의 말이 훈련장으로 가지 않고 그 동안 다니던 천관녀의 집으로 발걸음을 하여 칼을 빼어 애지중지 하던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귀족의 자제라서 말 한 필의 가치를 가볍게 보더라도, 자신의 결심을 방해하는 말의 습관을 베지 않고는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김유신은 알았을까? 과연 나는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기 위해 익숙하고 귀한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을까? 아무리 귀하고 아까운 것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그냥 그렇게 사는 보통사람과 뜻을 이룬 사람의 용기와 실행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아무리 마음으로 다짐을 해도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지속적인 실행이 어려우니 반복하고 훈련하여 근육 속에 기억이 되는 습관으로 만들지 않으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 요즘 카톡이나 라인으로 얼마나 좋은 교훈적 글들(로고스)이 많이 오가고 있는가? 유튜브에 키워드 몆 자만 쳐 보면 유명 강사나 인생의 선배, 목사님이나 스님, 신부님이나 책에서 좋은 동영상이 나온다. 이런 강의나 책에서 좋은 글이나 비법을 들으면 아하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고,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새로운 각오를 해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 것은 머리나 가슴만으로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의지 만으로 인생이 바뀌지 않는 것을 우리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람은 오로지 큰 충격을 받아야 바뀌는 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육체는 머리와 몸통, 그리고 지체인 손발의 사지(四肢)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와 몸통은 주인이고, 손발은 일꾼으로 필요한 골절과 근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배우기도하고 상식적으로 아는 바도 그렇다. 즉 머리는 지시하고, 몸통이나 손발은 머리의 생각을 따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스무살(?)만 넘으면 몸이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몸의 지시에 따른다는 느낌이 든다. 몸은 곧, 습관이고 근육의 관성이기 때문일 것이 아닐까.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성경(마태복음 6장 21절)에 있는 말이다. 이 성경구절은 처음 봤을 때 나는 인쇄가 잘못 된 것인 줄 알았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니..” 그러나 이 구절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옳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갈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의 보물은 금은 보화나 돈이 아닌 중요하게 생각하는 귀중한 것이다. 보물은 어떤 때는 나의 은행통장이나 주식시장, 또는 부동산이나 패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미래의 꿈을 가진 청년이나 사업가인 경우에는, 그들의 꿈이 보물이 될 수 있다. 부모님의 경우 자식, 종교인의 경우 그들이 믿는 신이 보물이고 최고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그 보물을 위하여 마음을 바치고 뜻을 드리는 것이다.
요즘은 진보니 보수니하여 집단이나 개인의 성향이 나누어 지는데, 사실 보수든 진보이든 좋은 점과 잘하는 점도 있고, 또 나쁜 점이나 잘못하는 점도 있으리라. 그러니 어떤 성향이든 잘하는 것은 칭찬하고 잘못하는 것은 고치게 하는 것이 정당한 평가일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그렇지 않다. 진보는 진보의 편만 들고 보수는 보수의 편만 든다. 곧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과 응원이 가는 것이다.
우리의 습관
우리의 습관은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훈련되어 근육이 기억하고 있는 반복이다. 일일이 누구한테 물어보거나 지시를 받지 않아도, 자율신경과 근육의 기억에 의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습관적으로 하는 일은 쉽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 일이나 공부는 무척 힘이 든다. 평소에 훈련이 되어 있거나 습관적으로 하면 힘이 들지 않는 것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어쩌면 단순하고 역설적인 표현이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새벽기도를 계속하시는 교회 권사님은 젊은 사람보다도 힘이 없으시고 다리도 불편에 보이지만 그 새벽기도의 보물의 맛을 알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셔서 먼 길을 걸어서 다니신다. 이 분이 새벽기도를 다니시기가 그리 힘들지 않는 것은 그 동안의 훈련과 습관이 몸으로 만들어지셨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한 주나 두 주간 동안 특별 새벽기도를 나가는 사람보다 덜 힘이 드시는 것이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공연이나 손연재 선수의 체조를 보면 늘 음악이 함께 나온다. 연주곡이 선정되면 그 곡에 맞춰서 수 많은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하여, 생각해서 하는 연기가 아니라 근육이 음악을 알아듣고 순간적으로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연습량이 필요하다. 하긴 사람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방울뱀이 피리소리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이건 사람에게 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동물에게도 다 적용이 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2006년 더그 앳치슨 감독이 단어 암기 경시대회를 주제로 한 스펠링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키키팰머 주연의 “아키라 앤 더 비(Akeelah And The Bee)” 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 단어 암기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어린 소녀 아키라의 암기법이 특이했다. 그냥 책상에 앉아서 단어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는 달리면서 외우고 어떤 단어는 줄넘기를 하면서 외우고 어떤 단어는 특정음악을 들으면서 외우는 것이 생각난다. 이 정도면 단어를 머리나 가슴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근육으로 외우는 것이다. 외운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안절부절 하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줄넘기 하는 모습을 보여 주니 그 단어가 생각났다면, 이건 치팅(cheating)인지 아닌지 정말 궁금할 정도다.
학생은 공부하는 근육을, 군인은 조직 생활의 근육을, 회사원은 회사에서도 거기에 맞는 일의 근육을 익혀야 한다.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으로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려우니 누구나 그 직분에 맞는 근육을 만드는 것이다. 키도 작고 힘도 없어 보이는 여성 프로골퍼가 힘센 청년 아마추어 골퍼 보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훨씬 많이 나가는 것을 보면, 아무리 이론을 많이 알고 레슨으로 방법을 많아 알아도 실천하는 근육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생각해서 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코치나 감독이나 선생이 이론적으로 더 많이 알고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매일매일 근육을 만들고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하는 선수처럼 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어떤 것이라도 마음의 다짐은 필요조건이지만 다짐만으로 안된다. 해당하는 근육을 키워서 몸을 만들어야 하리라. 근육이 충분조건이다.
“노브레인”, 청춘구십팔/그것이 젊음/넌 내게 반했어 등을 노래해서 대중의 인기를 모았던4인조 보컬 가수그룹의 이름이다. 노브레인. 뇌가 없다? 뇌를 쓰지 않는다? 노브레인의 뜻을 새삼 생각한다. 주위에서 어처구니가 없는 행동을 하거나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머리는 집에 두고 왔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하게 된다.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훈련과 단련을 무수히 하여 생각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근육이 스스로 움직여서 생각했던 바를 온전히 나타내는 숙달된 선수나 연기자의 모습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NoBrain, 아니면 Without Brain이 아닐까 생각한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Otium Sanctum]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2, 2014년 2월, 권강현, 삼성전자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