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생을 사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좋은 일이 있어서 웃었는데 내일은 갑자기 마음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가정이 평안하면 회사에서 적응이 안 되고, 회사 생활에 재미가 붙으면 갑자기 가정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픈 병이 생깁니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취업에 성공하면 잠깐 동안 기분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되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거나 직장에 출근한 직후부터는 예상외로 일들이 꼬이고 우리는 금방 똥 씹은 표정에 비 맞은 개처럼 기가 죽어서 돌아다니게 됩니다. 일이 너무 많아도 문제이고, 일이 너무 없어도 문제입니다.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사람들이 시키는 일을 하고,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때로는 밤을 새고, 그러고도 일을 잘 못 한다고 욕을 먹거나 무시를 당하기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 부모나 형제 가족이 아닙니다. 내가 힘들어도 어리광을 피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다 내가 현명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하면 인생이 더 힘들어 집니다.
1.2. 변호사 생활과 변호사 업무도 만만치 않습니다. 남의 돈을 먹는 일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많은 공부를 했지만 막상 구체적인 사건과 자문을 잘 하는 것은 쉽지가 않고, 때로 위험하기도 합니다. 법조계는 다른 곳보다도 잘 난 사람이 많고 경쟁적인 자부심과 자랑이 난무하는 동네라서, 어지간히 잘 하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히 인정을 받기도 어렵고, 제대로 명함을 내밀기도 어렵습니다. 법률사무소나 기업에 취업해서 일을 하는 초기의 수 년 동안, 우리는 인생의 재미도 낭만도 찾지 못하고, Partner, 선배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자신감과 self-confidence도 점점 증발해 버리는 상실(喪失)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1.3.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믿음은 어떤 힘을 쓸 수 있는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믿음이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거추장스러운 짐에 지나지 않는가? 사무실에서 일할 때에는 믿음 같은 것은 살짝 옆에 내려놓은 채 일에만 집중하고 믿음은 주일에 교회에서 채우는 것이 불가피한가, 아니면 세상과 일 속에서도 믿음을 붙잡고 씨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도움이 되고 또 가능하기는 한가?
1.4. 직장 생활 초년병 시절에는 세상일에 적응하고 나날이 다가오는 긴장과 갈등을 소화해내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습니다. 따라서 직장과 믿음의 통합, 일과 믿음의 결합, 이런 얘기들은 모두 장래의 먼 얘기이고 비현실적이며 사치스런 논의라고 느끼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소망 없는 인생은 허무하고, 맹목적인 변호사로서의 성공도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합니다(히브리서 4:12). 세상과 일은 온갖 무기로 우리를 공격하고 헤매게 하고 쓰러뜨리려 하는데, 우리들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보검을 써먹지 않고 검집 속에서 녹슬게 만들면서 그저 힘들어하고 슬퍼하고 하냥 없이 괴로워한다면, 이것처럼 바보 같고 억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민법(民法)'도 잘 알고, '형법(刑法)'도 잘 알고 '민사소송법(民事訴訟法)'도 대충 압니다.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은 우리에게 '밥'을 주지만,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의 일과 믿음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민법, 형법, 소송법이 아닌 '믿음으로 사는 법(法)'을 함께 공부해 보았으면 합니다.
2. 기본적인 문제들
2.1.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우선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변호사로서 자리 잡고 성공하는 것', '돈을 벌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이고 생활의 기본목표가 됩니다. 부인할 수도 없고, 부인해서도 안 됩니다. 조용히 자기 손으로 일을 하고(데살로니가전서 4:12) 자기 양식을 먹는 것은(데살로니가후서 3:12), 우리 인생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빵을 만드는 것, 빵을 잘 만드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과 만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변호사로 성공하는 것, 능력 있고 유능한 변호사가 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이것이 '다'이거나 이것이 중심이라면 우리 삶은 빵을 섬기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빵을 섬기는 인생에는 만족이 없고, 결국 다툼이 남거나 허무해 집니다.
인간의 삶에는 한계(限界)가 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산정(山頂) 높이 올라가, 고독(孤獨)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으로, 내 인생을 멋지게 불태우고 싶건만, 그토록 나를 간절히 원하는 21세기(世紀)가 온 지금에도, 우리의 인생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대단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이 찌질합니다. 세상을 향해서 달리는 인생의 끝에는 한계(限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목표들은 '육신(肉身)의 정욕(情慾)과 안목(眼目)의 정욕, 이생(以生)의 자랑'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과 돈, 수입을 위해서, '육신의 정욕(the cravings of sinful man)'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눈과 귀와 몸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안목의 정욕(the lust of his eyes)'을 사랑합니다. 또한 노골적인 욕망을 주장하지 않는 경우라도 우아한 형태의 욕망, 즉 우리가 가진 것과 하는 일을 자랑하는 이생의 자랑(the boasting of what he has and what he does)에 거의 전 인생과 마음을 쏟아 붓게 됩니다(요한1서 2:16). 그러나 이 모든 욕망에는 한계가 있고 제한(制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에 온 마음을 두게 되면, 항상 갈증과 목마름을 그칠 수 없고, 다다른 목표지점에서 나보다 앞선 사람을 발견하고는 죽을 때까지 계속 달음박질해야 하는, 시지푸스의 인생(人生)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2.2. '법과 재판 일은 세상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악한 일인가?'
우리가 다루는 법과 재판 일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일입니다. 민사재판에서는 주로 금전과 권리에 대한 다툼이 문제로 되고, 형사재판에서는 죄의 유무와 처벌의 강도가 쟁점으로 됩니다. 변호사들은 돈을 둘러싼 싸움을 대리하고 분쟁 금액의 일부분을 수임료로 받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나 기업에게서 더 많은 돈을 벌기 때문에, 보통 우리는 더 많은 대가를 주는 의뢰인의 일을 더 친절하게 열심히 해 주게 됩니다. 형사절차에서도 돈이 많은 사람들은 더 좋은 변호를 받고 돈이 적은 사람들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이것 때문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비난이 생깁니다. 우리 중에 조금 더 착하고 정의감이 강하고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벗들은, 손해를 보면서도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를 위한 변론에 투신하고 헌신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돈을 버는 사건에 좀 더 매달리고 재정적 안정과 성공을 도모합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는 법률 일에 대한 두 가지 잘못된 태도가 발생합니다. 하나는 긴장을 완전히 풀고 세상적인 일과 방식에 푹 빠져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호사가 하는 일반적인 법률 업무를 모두 악하고 세상적 욕심에 봉사하는 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2.3. '법과 재판 일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싸움터이다!'
'사람'은 악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과 구원의 가능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중적(二重的)인 존재입니다. '법'과 '재판' 또한 세상 나라의 욕망체계와 인간의 악성을 반영한 죄(罪)의 활동 공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이 역사하는 하나님 나라의 활동공간이라는 이중성(二重性)을 가집니다. 우리가 일하는 법과 재판업무는, 100% 의롭지도 않지만 100% 악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선과 악, 죄와 의가 서로 공존하며 싸우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싸움터입니다.
우리가 하는 법률 일과 재판업무 속에는 세상적인 욕심과 갈등과 분쟁과 죄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개입하는 법조인들의 마음과 태도와 행동에도 욕심과 이기심과 경쟁심과 호승심(好勝心)의 죄성(罪性)이 충만하게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가 하는 법률업무와 재판 일은, 하나님이 주신 공의의 법(율법)과 예수님이 주신 위로하고 구원하는 은혜의 법이 함께 역사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재산분쟁과 가족분쟁 등 민사 분쟁에 휩쓸려,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거나, 그로 인하여 상대방과 세상에 대한 극도의 피해의식과 원망으로 몸부림치거나, 일의 결과가 잘 될까 잘 안될까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민사 사건의 당사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의뢰인들의 입장은 '부분적으로만 정당'하고 '부분적으로만 부당'합니다. 완전히 부당하거나 완전히 정당한 경우는 극히 희박합니다. 이 때 우리가 의뢰인들을 위해서, '그들의 일용할 양식'의 공정한 몫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한편으로는 우리 의뢰인들이 무리한 욕심이나 오해로 세상과 자기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시험에 들지 않도록' 도와주는, 민사 변호사의 일은 가치 있고 소중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무죄인 사람이 사법제도의 한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인생(人生) 하나가 통째로 무너집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오해나 법 적용의 과실로 인하여 죄를 추궁 당하고 있는 형사재판의 피고인이 억울함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죄를 저지른 사람의 경우에도 용서를 받거나 형의 감경을 받을 만한 사정(정상)을 대신 변호해 주는 형사 변호사의 변론은, 죄를 미워하는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죄인에 대한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이 땅에서 실현해 나가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인과 연약한 인간을 변호하시는 예수님과, 세상의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피고인들을 변호하는 우리 세상 변호사들은, 사실상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업자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개별법 분야로 들어가서 예를 들어보면, 사업에 실패하고 방만한 채무부담으로 망한 개인이나 기업이 이 세상의 진(陣) 바깥으로 쫓겨나 영원히 굶주리지 않도록, 채무면제와 복권(復權)을 통해서 재생(再生, rehabilitation)의 기회, 즉 'second chance'를 제공해 주는 파산법 및 회생제도에도 '실패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가 선명하게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마태복음 18:21-35).
이처럼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무의미하고 돈벌이만을 쫓아가는 맹목적인 일이 아닙니다. 죄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가 부딪히는 싸움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눈 감으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죄성과 편파성이 판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긍휼을 따라 행하면 재판과 변론 속에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판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변호사로서 부한 사람들만 편파적으로 돕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변호사의 업무 전체는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을 포함하면서도 그보다 더 크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도 죄인이지만, 가난한 자도 죄인이고, 의뢰인도 의인은 아니며 변호사도 죄인이라는 현실을 우리는 크게 보고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법과 재판 속에 들어있는 세상 나라의 일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잘 분별하고 지혜롭게 행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당당하게 하나님께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편에 계속]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이병주 칼럼]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이병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