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서의 Geschichte를 담당하는 다미엘과 마리온이 만났다. 정지상태의 변증법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난 ‘지금시간’은 이제 미래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좌표는 수정되었고 미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굴러갈 테니까… 

이야기로서의 Geschichte를 담당하는 호머는 베를린 장벽으로 다가가며 마지막으로 ‘우리는 승선했다!’라고 불어로 외친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 이렇게 자신 있게 외쳐도 된다. 과거와 현재가 변증법적으로 만나 얻어낸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이제 그것이 말로 하는 이야기이든 글로 하는 이야기이든 이미지로 하는 이야기이든, 이야기하는 자의 사적인 기억이 아니라 인류라는 공동체의 기억이 될 것이므로. ‘To be continued’는 역사도 역사를 올바로 담은 이야기도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Geschichte(역사)를 Geschichte(이야기)하라!’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두 가지 정도 있다. 이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유년’, ‘아이’, ‘어린아이 같은’의 의미가 그 한 가지이다. <유년의 노래>라는 한트케의 시가 영화를 끌어가는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천사가 아이에게만 보인다는 점 등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호머는 '아이의 눈으로 땅 아래와 하늘 위의 길들, 문들, 틈들을 본다면 살인도 전쟁도 없는 역사가 시작될 텐데...'라고 안타까워한다. ‘유년’은 인류가 죄를 짓지 않았던 때, 우리가 본래의 우리였던 때 등을 상징하는 것 같다.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 시절>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거니와 벤야민에게도 ‘유년’과 ‘아이’가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도 더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한 가지이다. 천사들이 도서관에 머물고 있는 까닭은 도서관이 그들이 지켜봐 온 역사의 파편들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모든 지식인들에게 도서관은 특별한 곳일 테지만 벤야민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벤야민은 이삿짐 푸는 것을 도서관을 푸는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고, 1933년 히틀러 집권 후에도 위험한 베를린으로 돌아가 자신의 책들을 덴마크에 있던 브레히트에게 보내놓고는 안도하기도 했었다. 자본주의를 첫 단추부터 다시 꿰어 파악하려고 했던 벤야민의 야심찬 구상인 <파사젠베르크>의 자료들이 파리의 국립도서관 장서 사이에 있다가 전후 바타이유에 의해서 그리고 40년이 더 지나서 아감벤에 의해서 나머지가 발견된 것도 더불어 떠오른다. 포츠담 광장 바로 옆에 있는 베를린 주립도서관은 역시 폭격으로 포츠담 광장처럼 폐허였던 곳에서 1967년에서 1978년 사이에 솟아났다. 새 도서관인 셈이다. 옛 도서관은 프로이센 시기에 만들어진 왕립도서관으로 지금은 훔볼트 대학의 법학과 건물로 쓰이고 있다. 이 도서관은 과거 시민들 사이에서 ‘서랍장Kommode’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동베를린 구역이었던 이 옛 도서관 앞, 바벨 광장에서 1933년 나치의 대학생들이 분서를 저지른다. 그리고 곧 갱유가 벌어진다. 이때의 ‘유’는 유대인을 말한다. 이 분서를 기억하기 위해 바벨 광장 바닥에 1995년 서랍장 모양의 도서관이 땅 밑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그 도서관의 사진이다. 책도 없고 사람도 들어갈 수 없다. 천사만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서관 옆에 동판이 있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100년도 더 전인 1820년에 한 말이 적혀 있다. ‘그것은 서곡일 뿐이었다. 인간이 책을 불태우는 그 자리에서 인간은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 현대의 예언자는 예술가다. 이야기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