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7-08 19:47
중국 다시보기(9): 면(面)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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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시보기(9): 면(面)

사람 노릇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졌고 세상인심이 각박해진 탓도 있지만 알고 보면 정(情)이 없어진 탓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득하던 정(情) 대신에 법(法)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주석이 “어떤 조건보다 사람간의 화합이 중요하다(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고 말은 하였지만 인화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그가 더 잘 알고 있다. 인화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정을 나누는 것인데 정을 나누려면 체면을 차려야 하고 체면을 차리다보면 법보다 정을 앞세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화를 강조한 그조차도 이미 정(情)과의 전쟁을 발동한 상태다. ‘파리부터 호랑이까지 다 잡겠다’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선포가 바로 그것이다.

‘부정부패’는 중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공산당 지도부는 문제의 원인을 개혁개방이후 중국이 택한 사회주의초급단계라는 제도와 그 제도가 만든 물욕과 사리사욕 때문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중국역사에서 어느 한 순간 부정부패가 없었던 적은 없다. 부정부패는 모든 사회가 가진 문제이며, 중국사회에서 좀 더 유별난 문제이다. 그럼 중국사회에서 부정부패가 일상화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정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꽌시(關係)는 기본적으로 정의 산물이고, 정이 만든 관계 속에서 청탁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게 되는 것은 체면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정리하면 부정부패=꽌시=정=체면의 등식이 성립한다.

문제는 체면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이다. 중국인들은 목숨보다 체면을 더 중시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실제 그렇다. 중국인들이 입버릇처럼 되새기는 ‘띠우리엔(丢面, 丢體面)’은 창피를 당하다, 체면이 깎이다, 망신스럽다, 체면을 구기다는 의미다. 체면(面子, (臉)을 도덕표준으로서의 사회적 구속수단인 동시에 일종의 내화된 자기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체면을 잃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중국인에게 있어 체면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면(面)과 검(臉) 두 글자는 기원전 4세기 전부터 중국문헌에 나타난다. 체면에 관한 연구서들을 보면 인간사회에 체면이 필요한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은 공평법칙, 균등법칙, 수요법칙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공평 법칙은 개인이 행한 객관적인 공헌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대가나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균등법칙은 개인의 객관적인 공헌의 대소에 상관없이 모두가 이윤과 손실을 일률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상대방 사람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사람’으로 한 단위가 되는 것이다. 수요법칙은 이윤, 성과 기타 이익을 개인별 공헌에 상관없이 수익자의 합리적 요구에 상응하도록 배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모든 구성원이 집단의 복지와 발전을 촉진하는 상황에서 구성원간 관계가 아주 밀접할 때 가능하다. 개인과 타인의 감정이 돈독하고 밀접한 ‘동일관계’일 경우에 가능하다. 중국의 체면은 과거에는 수요법칙이 적용된 결과였다. 필요한 사람을 위한 배려가 체면을 차리고, 세워주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근 중국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공업화, 도시화, 교육보급, 신속한 정보교류 등으로 분배에 대한 기대가 바뀌게 되었다. 배려가 기초가 된 수요법칙에 따른 분배가 아니라 상호이익 즉 주고받는 개념의 균등분배로 바뀌고 있다. 인정(人情)도 마찬가지이다. 보답(報)이라는 상호성이 있을 때 더 긴밀하게 형성된다. 인정은 규범적인 사회교류의 규칙일 뿐만 아니라 폐쇄적이고 구조적인 사회 환경에서 일종의 ‘쟁취 가능한 가치’가 되었다. 결국 인정은 체면으로 연결되고 인정과 체면으로 작동하는 일종의 사회기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중국사회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꽌시(關係)이다. 정과 체면으로 형성된 꽌시가 법체계를 무시하고, 법체계를 무시하는 꽌시는 언제든지 부정부패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面子’의 추락이다. 수 천 년 중국역사가 자랑하는 공자, 맹자, 장자, 노자 등 자(子)자 반열의 성인만큼이나 중요하고 위대했던 ‘面子’가 하루아침에 악(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는 전통중국을 지탱했던 ‘가(家)’가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인정과 배려가 사회관계 운용의 원리였던 중국사회가 변한 것이다. 말 그대로 물질과 물질적 가치를 주고받는 관계만 존재하는 삭막한 세상이 되었다.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살지 못하고, 물이 탁해도 고기가 살지 못한다했다. 부패와의 전쟁을 치르는 시진핑 정부도 이쯤에서 공자가 이야기한 ‘중용’의 지혜를 발휘해서 ‘面子’를 성인반열에 올리기를 기대한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7, 2014년 7월,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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