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2-31 18:46
조선의 책, 조선의 서평 (4): 30년 쓰고 150년 새로 쓴 책, 택리지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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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책, 조선의 서평 (4): 30년 쓰고 150년 새로 쓴 책, 택리지

1. 낯익어서 더욱 낯선 <택리지>

사대부는 말 한 마디 몸가짐 하나에도 의심을 받으니 등용되든 버림받든, 높이 오르든 벼슬이 막히든, 재야에 있든 조정에 있든 간에 몸 하나 용납할 곳이 없다. 결국 글을 읽고 행실을 닦아 사대부가 된 것을 후회하고, 도리어 농부나 기술자, 장사치의 신분을 부러워하게 되었다. 지난날에는 사대부가 당연한 듯이 저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건만 이제 와서는 자신이 더 못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극에 달하면 되돌아오는 법이라더니, 참으로 그러하도다! 하늘 아래 이 세상에서 한번 사대부라는 이름을 얻고 나면 도무지 갈 곳이 없구나. 

동아시아 유교 사회의 전통적인 신분 질서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위계마저 부정할 정도로 절망하고 상심한 영혼으로, 세상 어디에도 머리 쉴 곳 하나 없다고 깊이 탄식하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30년 동안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니며 가장 살 만한 곳이 어디인지를 살핀 끝에 저술했다고 하는, 조선조 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의 마지막 총론 부분이다. 저자 이중환은 이 책 한 권으로 조선조를 대표하는 지리학자요, 실학자로 거론된다.

그런데 살 만한 곳을 발로 찾아다니며 쓴 45,500여 자에 이르는 저술을 마무리하면서 이중환이 다다른 결론은, 하늘 아래 그 어디에도 사대부가 몸 붙일 곳은 없다는 것이다. 사대부만이 아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농부, 기술자, 장사치들 역시 편 가르고 미워하며 각자의 패거리 속에 갇혀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사대부가 만들어낸 편견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이 서로를 용납하려 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그야말로 근원적인 절망의 진단을 내놓는다.

국사 교과서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함께 늘 등장하는 것이 이중환의 <택리지>다. 하지만 여느 고전이 그렇듯이, <택리지> 역시 많은 이들에게 책 이름 이외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는 듯하다.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 낯익은 사람으로 착각했는데 막상 낯을 마주하고 보니 전혀 낯선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듯이, 마음먹고 번역서라도 찾아 읽어보면 오히려 <택리지>라는 책이 참 낯설고 이상한 책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고전’에 기대하게 되는, 심성을 맑게 하는 고상한 삶의 지혜라든가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아름다움, 혹은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해서 벌이는 흥미진진한 서사, 그 어느 하나도 갖추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택리지>라는 참 낯익은 책이 알면 알수록 더욱 낯설어지는 이유다.

2. <택리지>는 우리가 내세울 만한 고전인가?

게다가 <택리지>를 더 읽어나갈수록, 낯섦을 넘어서서 이 책을 왜 ‘고전’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이 책이 지닌 이런저런 단점들이 문외한의 눈에도 너무 쉽게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 단점들이란 대개 이런 것들이다. ‘택리(擇里)’ 즉 ‘살 만한 곳을 택함’이라는 책 이름이 기대하게 하는 주제에 부합할 만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구성을 갖추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중복되거나 상호 모순적인 서술들마저 보인다. 산세와 물길 등 지형을 이야기하는가 싶다가 불쑥 역사의 한 장면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토질, 산물, 교통 등 삶의 기반들에 대한 객관적 서술 사이에 자신이 지은 감상적인 한시를 삽입하기도 한다. 살기 좋은 곳을 고르는 기준의 하나로 ‘인심’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당쟁의 유래와 역사만을 길게 늘어놓아서 일관적 흐름을 방해한다. 게다가 특정 지역을 싸잡아서 좋고 나쁨을 논평하는 방식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떠올리게 하고, 경상도를 높이고 전라도를 낮추는 노골적인 서술들에 이르면 뿌리 깊은 지역감정의 원류를 보는 듯해 읽어나가기에 불편하다. 더욱이 좋은 집터, 좋은 산소 자리를 잡는 데 동원되는 ‘풍수지리설’에 대한 피상적이고 술법적인 이해를 선입견으로 깔고 보면, 애초에 ‘택리’라는 주제 자체도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해야 할 고전으로서는 영 마뜩찮게 느껴진다. 최남선이 편찬해서 지금까지 주로 통행되는 조선광문회 간행 <택리지>에서는 의도적으로 산삭해버려서 보이지 않지만, 원저에는 중국에 대한 선망과 조선에 대한 비하가 강도 높게 표현된 부분도 있어서 더욱 거부감을 준다.

그런데 ‘고전’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힘으로써 그 가치가 인정되어온 책’이라고 한다면, <택리지> 만한 책도 별로 없다. 상업 출판이 활발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얼마나 많이 읽혔는가를 알려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는, 이본(異本)이 얼마나 있는가이다. 1752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1912년 최남선이 간행하기 이전까지 한 번도 간행되지 못한 채 150여 년 동안 필사본만으로 유통되었는데, 그 이본이 최소한 100종을 넘는다. 하나의 텍스트가 이 정도로 많은 이본을 양산한 예는, 대중적으로 널리 읽혔던 소설류에서도 유례가 몇 안 되는 일이다. 그 만큼 <택리지>는 지금 우리가 얼핏 봐서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흥미 혹은 쓸모를 지니고 많은 이들에게 읽혀 온 베스트셀러요, 스테디셀러다. 그렇다면 <택리지>를 과연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이 책이 지닌 흥미와 쓸모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지금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탐색에 앞서서, 아직 <택리지>의 실체를 접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 구성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많은 이본이 있지만 근대 이후 주로 읽힌 조선광문회 간행본을 일단 기준으로 삼는다.

사민(四民): 사대부, 농민, 기술자, 장사치의 신분 구분 유래와 사대부의 처지.
팔도(八道): 전국 8도의 지형, 물길, 기후, 연혁, 산업, 취락, 통상, 역사, 풍속, 문화, 인물, 유적, 시문 등을 기술하면서 거주, 피난, 은둔 등에 적합한 곳 소개.
복거(卜居): 살 만한 곳을 택하는 네 가지 조건. 지리(地理: 물길, 산야, 토질 등), 생리(生利: 농업 생산성, 통상 여건 등), 인심(人心: 인심과 풍속, 사색당파), 산수(山水: 산, 섬, 강호 등 심성 수양에 도움이 되는 아름다운 환경)
총론(總論): 성씨의 유래, 갈 곳 없는 사대부의 현실

3. 그 많은 이름의 <택리지>, 필사와 개작 사이

한글본까지 포함한 100여 종 이본들의 존재야말로 <택리지>라는 책의 실체와 유통을 밝히는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교과서에 거론된 소위 ‘유명한’ 책들마저도 기본적인 이본의 정리와 정본(定本)의 구축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박지원 <연암집>의 경우 첫 완역과 함께 이본의 대조와 종합이 이루어진 것이 2005년인데 그 이후로도 이본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정약용 <여유당전서>의 정본은 8년에 걸쳐 인력과 예산을 투여한 결과 2012년에 비로소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되어 원문본이 출간되었고 이제 막 번역에 착수한 상태다. 이황의 <퇴계집> 역시 아직 정본이 없는데, 근래 진행되던 정본 구축 사업이 정부 지원의 중단으로 답보 상태에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전들의 상황이 이러하니 이들보다 유명세가 떨어지는 <택리지>의 이본이 아직 정리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근래에 들어서 몇몇 연구자들(배우성, 최인실 등)에 의해 이본의 조사와 정리가 진행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다. 이 글 역시 이들 성과에 힘입은 바 크다.

어느 텍스트든지 이본의 정리와 정본의 구축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택리지>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우선 이중환이 쓴 책의 이름이 과연 <택리지>이었는지부터가 검증의 대상이고, 이 책에 주어진 다른 이름들인 <복거설(卜居說)>, <팔역가거처(八域可居處)>, <사대부가거처(士大夫可居處)> 등이 각자 이칭(異稱)이 아닌 초명(初名) 혹은 본명임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 <진유승람(震維勝覽)>, <동국총화록(東國總貨錄)>, <형가요람(形家要覽)> 등의, 도무지 비슷하지도 않은 많은 이름들이 이 책에 주어졌다.

이들 이본들이 단순히 이름만 달리 한 것이 아니리란 사실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오탈자나 축약 수준을 넘어서는 다양한 편집과 가공을 가한 이본들이 제법 있어서 그 각각의 의도와 성패를 고찰해볼 만하다. 더욱이 그 다양한 이본 가운데 저자를 이중환으로 밝히지 않은 것이 대다수이며, 심지어 저자 본인의 흔적이 담긴 “이자왈(李子曰)”이나 “여(余)”라는 문구가 들어간 부분을 삭제하거나 당쟁에 대한 견해를 담은 ‘인심(人心)’ 항목을 통째로 들어낸 것도 있다. 책은 남아 있는데 저자는 증발해버린 셈이다. 의도치 않은 당쟁에 휘둘려 긴 유배와 방랑의 삶을 살았던 이중환의 인생만큼이나, <택리지>라는 책의 운명 역시 참으로 기구해 보인다.

저자 이중환을 밝히지 않은 이본이 많다는 사실은, 남인 입장에서 당쟁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냈다는 점과 관련이 깊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 이본의 하나인 <진유승람>에는 “이중환이 지은 것인데 홍계희가 고치고 삭제한 부분이 많다.”는 기록이 있다. 홍계희는 이중환과 정치적 갈등이 있었던 홍우전의 아들로서 전형적인 노론 벌열가문 출신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연이은 실각으로 불평만 가득한 남인이 지은 불온한 서적이었을 테니, 고치고 삭제해야 할 만큼 거슬리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 당연하다. 정작 궁금해지는 것은 이 대목이다. 왜 이렇게 고치고 삭제해 가면서까지 이 책을 읽었을까? 비판자의 손에 의해서까지 다시 읽히고 새로 편집되어 더 널리 유통된 이 책이 지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4. <택리지> 읽기, 그리고 고쳐 쓰기

일제강점기 시작된 실학 연구의 흐름 가운데 <택리지>가 주목 받게 된 데에는, 이익과 정약용의 언급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익이 이 책에 쓴 서문이다.

지금 우리 집안의 휘조(輝祖: 이중환의 字)가 책을 하나 편찬했다. 그 수천 마디의 많은 말들은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을 찾으려는 것인데, 그 사이에 산맥, 물길, 풍토, 민속, 재화의 생산, 수륙(水陸)의 운송 등을 조리 있게 구분하여 기록하였다. 나는 이제껏 이런 책을 본 적이 없다.

이중환의 삼종조(三從祖)가 되는 이익은 이 책에 대해 써준 다른 글에서 “몸과 집안을 다스리는 것으로부터 산천, 토속, 민요, 물산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잘 갖추어 기술했으니, 요컨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라고 하였다. 정약용은 <택리지>의 발문에서 그 내용을 이어서 “살 만한 곳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물길과 땔나무 길을 살펴보고, 다음은 농산물, 다음은 풍속, 다음은 산천의 경치 등을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

이들 이익과 정약용의 관점은 다분히 실용적인 측면에 놓여 있다. 굳이 근대 실학 연구의 논점에 의거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실용성’은 <택리지>가 널리 유통된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이중환 본인의 저작 의도와는 별개로 이 책이 당대의 독자들에게 준 매력은 “그 사이에 조리 있게 기록해 놓은” 지세, 토질, 물산, 통상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들이었다.

‘일상에 유용한 지식’은 지금 우리에게는 당연히 학습하고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조선조 지식인들에게 있어서는 학문의 대상이나 저술의 주제로서는 미흡하거나 부적절한 것이었다. 더구나 ‘택리(擇里)’라는 말에서 연상하게 마련인 공자의 ‘이인(里仁)’을 염두에 둘 때,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의 일차적인 요건은 도덕과 문화에 있어야지 지형과 산업에 있지 않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리지>가 많은 이들에 의해 읽히고 전해졌다는 현상 자체가 이미 18세기 후반 이후의 문화 흐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 책에 ‘우리나라의 지역별 물산 및 재화 현황의 총록’라는 의미의 <동국총화록(東國總貨錄)>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필사한 이들은 이러한 실용의 흐름을 극대화한 것이다.

나아가 <택리지>가 전면에 제기한 “사대부로서 살 만한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반드시 벼랑 끝에 내몰린 이의 실존적 외침이 아니더라도 당대에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주는 화두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너 나 없이 성리학적 수양을 일생의 목표로 내걸고 정진하던 시대이면서 동시에 집터를 정하고 묫자리를 잡는 데에는 속류 술법으로서의 풍수지리설이 저류의 문화로서 적지 않은 힘을 발휘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사실 풍수지리설은 그 연원과 외연이 워낙 오래고 방대해서 간단하게 논할 것이 아니다. 가문 이기주의를 배경으로 기복 술법 내지 민간 신앙으로 전락하면서 불의한 병폐를 노정한 풍수지리설을 비판하고 배척하는 일은 성리학 본연의 입장에서 이론(異論)의 여지없이 합당한 것이었으나, 정작 자신의 집안 문제에 있어서는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당시 지식인 대부분의 실상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택리지>는 보다 근거 있고 합리적인 일종의 대안으로 읽힐 만했다.

물론 ‘맹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형상’이라든가 ‘날아가는 까마귀가 시체를 쪼아 먹는 형상’ 같은 다양한 형세론을 앞세우고 ‘간룡법(看龍法)’이니 ‘정혈법(定穴法)’, ‘좌향법(坐向法)’ 등을 상세하게 논한 ‘전문적(?)’인 풍수지리서들에 비한다면, 감여가(堪輿家: 직업적 풍수가)의 말을 인용한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문지리적 배경과 취락 입지 조건 등을 서술하는 데 그친 <택리지>는 집터를 잡는 데 구체적인 지침서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책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동시에 미신적인 풍수지리설에 거부감을 지녔던 당대의 사대부들에게는, 이런 점이 오히려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직업적인 풍수가들에게 역시 <택리지>는 술법에만 치우친 자신들의 약점을 채울 수 있는 좋은 참고서가 되었을 것이다. ‘풍수가들이 알아야 할 핵심을 간추린 책’이라는 뜻의 <형가요람(形家要覽)>은 이런 측면의 욕망들을 반영한 이본인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택리지>는 고축적 지도나 여행안내서 등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에, 산수의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와유록(臥遊錄)’ 계열의 산수유기(山水遊記)들이나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 등이 그런 역할을 일부 하기는 했으나, 팔도 전체를 아우르며 산세와 물길을 종합적으로 논했다는 데에 <택리지>의 독보성이 있다. <동국산수록(東國山水錄)>, <진유승람(震維勝覽)> 등의 이름이 쓰인 이본들이 이러한 용도를 드러낸다.

5. 절망으로 그린 이상향 <택리지>

이중환은 “나의 이 글은 살 만한 곳을 택하려 해도 살 만한 곳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넓게 보고자 한다면 문자 밖에서 참뜻을 구하기 바란다.”라고 하며 후세에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으리라 기대한다는 말로 책을 맺었다. “사대부가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놓고 마지막에 가서 “아무리 다녀 봐도 그런 곳은 없더라.”는 탄식으로 끝난다면 이보다 싱거운 책이 있을까? 

사실 이중환은 이 책의 중간에서 “이상적인 조건에 맞는 곳은 없지만 그 가운데 몇 가지를 갖춘 곳을 신중히 택해서 스스로 적응하며 산다면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라는 현실적인 대답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무리를 절망과 탄식으로 채운 것은, 애초에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정말 어디 살 것인지를 찾기 위함이라기보다 일종의 ‘이상향’에 대한 강렬한 추구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음을 시사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상향이란 결국 현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뼈아픈 진단 위에서, 그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내놓는 인문적 욕망과 상상력의 총화일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이상향은 태생부터 절망을 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중환이 <택리지>에 담고자 했던 절망의 깊이와 그 문자 밖의 참뜻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이해되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리고 150여 년, 많은 이들은 이중환의 이 탄식에 자기 나름의 욕망을 더하여 <택리지>를 읽어 왔고, 그 욕망들은 다시 다양한 이본의 형태로 새로운 <택리지>들을 만들어 내었다. 직장과 자녀 교육, 그리고 부동산 시세가 집을 정하는 주된 기준인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에 대한 대답 역시, <택리지>가 정말 어느 지역의 어떤 집을 택할 것인지를 정하는 데 그리 유용한 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이들에 의해 읽혔던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보며 생각해볼 일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조선의 책, 조선의 서평]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송혁기,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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