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교수는 우리 한국인에게 이미 많이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에 샌델 교수 모습 자체가 영상이나 강연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그 존재 자체가 우리들에게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6월에 이데일리에서 주최한 ‘세계전략포럼 2013’의 주강사로 초대되기까지 그의 한국방문은 그의 책이 번역되었던 2010년 이후 연 1회 이상은 이루어졌다. 또 그 자리에서 서울시장 박원순 변호사와의 특별 대담 순서가 마련된 것도 그의 인지도와 중요성이 동시에 인정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대담 가운데 박원순 시장이 샌델 교수를 서울시의 명예시민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는 박시장의 말처럼 샌델 교수가 강조한 시민적 덕성이 서울시민의 교양으로서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샌델 교수가 갖고 있는 대중적 인지도가 바탕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세계전략포럼 주강사로서 샌델 교수가 제시한 주제는 경쟁력을 갉아먹는 갈등에 치유책이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된 한국 사회에 대해 그는 자본주의, 평등, 정의 등과 같은 거대 담론들을 수많은 청중들을 대상으로 토론 주제로 삼아 열띤 강연의 자리를 연출했다. 시민사회의 역할을 통해 시장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그의 기조연설 주제는, 적어도 정치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내 눈에는 핵심을 짚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기조연설 다음날, 그와 함께 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나는 두 가지 점을 그에게 말했다. 한 가지는, 가급적이면 이미 활용한 예들을 강연에서 다시 활용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이번 강연에서 그는 작년에 번역 출간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나온 예들을 중요하게 활용했던 것이다. 책에서, 혹은 이전 강의에서 활용된 예들을 다시 활용하면 강연의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그에게 말했다. 사실, 우리들은 유행에 무척 민감해서, 한번 히트를 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면 감동 보다는 실망을 느끼기 쉽다. 그는 이 충고를 흥미로워 했다. 최근 1년 넘도록 수십 개 나라들에 다니면서 자신의 책을 알리고 또 토론하는 기회를 가져왔던 그이기에, 출간된 지 1년이 갓 넘은 책(우리말 번역본과 영어본은 동시에 출간되었었다)의 내용에 대해 벌써 옛이야기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던 것 같았다. 내 우려는 그의 인기 관리에 있지 않았다. 샌델 교수가 던지는 중요한 화두들이 우리에게 흥미 위주로, 혹은 시대의 유행처럼 인식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유행처럼 다루어지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말한 것은, 샌델 교수의 저술과 주장들이 한국에서 묘한 토론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2010년 초,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크게 이슈가 된 이후에 수많은 학회에서 그의 저술과 화두가 다루어졌고, 또 그에 관한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적어도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샌델에 대해 쓰인 적지 않은 글들이 그의 ‘책들’을 제대로 읽지 않고 쓰였고, 또 적지 않은 학자들이 샌델 교수의 주제를 다소 신경질적으로 폄훼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가 허투루 다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최근 이한 변호사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라는 책은 이런 관점에서 흥미로웠다. 샌델을 나름대로 깊이 읽어내고 있는 이 책은 내가 보기에는 샌델이 동의할 수 없는 관점에서 부당한, 그러나 의미 있는 비판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출간은, 샌델 교수가 서 있는 자유적 공동체주의, 혹은 시민적 공화주의의 입장에 대한 체계적이고 날이 선 비판적 토론의 기회의 제공을 요청한다고 나는 샌델 교수에게 말했다. 샌델 교수가 2005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그의 사상이 한국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 왔는지를 주목해 왔던 나로서는, 이제는 이러한 직접적인 이론적 대면이 한국의 비판적 지성과 샌델 교수 사이에 마련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점심시간 이후에 있었던 마이클 샌델과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대담은 아주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이날 점심시간과 대담시간 사이에 있었던 개인적인 대화에서, 샌델 교수는 박시장과의 몇 차례 만남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그는 실로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이다. 2005년에 있었던 그의 최초의 한국 방문 이후 처음으로 내가 그를 다시 만났던 2010년 하버드대학 방문 때, 그는 2005년에 만났던 주요 인사들을 모두 기억해 내었다. 그리고 이날 다시 대화를 할 때도 그는 나와 함께 아는 지인의 안부를 물으며 그동안 이메일로 나누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최근 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를 기억하고 안부를 묻기도 했었고, 내 개인사 및 가족사도 기억을 떠올리며 대화의 주제로 삼기도 했다. 그런 그이기에 그가 박원순 시장에 대해 들었던 평가들과 박시장을 직접 만났을 때 가졌던 인상들이 기억 속에 잘 보존되어 있었던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박원순 시장은 대담 가운데 샌델 교수를 서울시의 명예시민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서울시장으로 초청했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샌델 교수에 대한 이 초대가 흥미로웠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인기가 주요 동인이었지만, 샌델 교수의 경우는 인기가 아니라 그의 철학이 주요 동인이었을 테니 말이다. 서울시를 철학의 도시로 삼겠다는 시장의 말에는 진정성이 충분히 담겨 있었다. 현실 문제를 자신이 철학적 화두로 삼고 발언을 하는 공공철학자 샌델은, 자유, 민주주의, 자본주의, 평등, 정의 등과 같은 ‘거대한 철학적 주제’가 화두로 작용하는 우리나라와 서울시에 필요한 존재일 터이다. 샌델 교수는 이 제안에 대해 깊이 고려하겠다고 대답했다.
샌델 교수는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식당의 웨이트리스가 자신의 책을 흥미 있게 읽었다는 말을 듣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식당의 웨이트리스와 같은 독자에게 보이는 대중적 샌델과, 박원순 시장과 같은 정치가 혹은 행정가에게 보이는 샌델, 그리고 나 같은 학자들에게 보이는 학자 샌델의 모습을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를 위해서 대중적 샌델은 계속 인기를 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던지는 거대한 화두들은 계속 우리 가운데 토론과 논쟁거리가 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런 포럼은 고마운 이벤트이다. 또한, 샌델이 서울시장이 원하는 식의 관계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많은 인세를 지불한 샌델에 대한 좋은 활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그를 학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의 중심에 세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학자들이 가진 역량이 진정한 영향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명예시민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온다면, 그날에는 포토 존에 서 있는 그의 모습만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날선 토론의 중심 자리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럴 때라야 서울시는 박시장이 말한 ‘철학이 있는 도시’가 될 것이고, 또 우리 문화에 사유가 자리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김선욱 세상보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1, 2013년 9월,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