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水)은 하늘(天)과 땅(地) 사이를 순회하면서 생명을 관장한다. 물은 천지만물과 가장 존귀한 존재인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의 신체가 수소 63%, 산소 25.5%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물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동시에 힘의 원천이다. 모든 생명체는 물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특히 인간에게 있어 물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나 문명의 생멸도 관장한다.
황하문명이 그렇다. 용을 상징으로 삼았던 황하문명은 물을 기반으로 형성, 유지, 발전되었다. 중국인들은 황하가 만든 자신들의 독특한 영역을 중화세계라 칭하였고, 그 속에 한자, 유교, 중국화한 불교, 율령 등의 문화적 보편성과 조공책봉관계로 만들어진 정치적 자기완결성을 담았다. 일종의 자신감이고 우월감이다.
2.
황하문명이 하나의 ‘세계’로서 조건을 갖춘 시기는 수, 당대였다. 수당시기의 중국은 양주, 광주 등의 무역항과 실크로드 연변의 오아시스 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고 개방적 국제주의가 전개되었다. 오만, 파라문(인도), 토번, 소륵, 고구려, 신라를 비롯하여 인근 국가들과 생동적인 교류가 진행되었고, 자연스럽게 운하문화와 연결되어 중국 중심의 중화세계가 형성되었다.
그 중심에는 항구, 오아시스, 운하가 있었다. 당시 말(馬)이나 도보가 이동수단의 전부였던 인류에게 물의 이용은 속도와 수송량 면에서 획기적인 혁명이었다. 실제로 중국은 수당대운하(隋唐大運河)와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로 동서남북을 소통시키고, 중국역사상 최초로 대일통(大一統)을 이루었다. 수양제가 판 남북대운하는 동서남북을 물로 연결시켜 중국을 하나의 수망(水網)으로 만들었다. 수망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가 생성되었다. 인재가 모이고 분업이 발생하고 다양한 직업군과 문화가 연생하면서 도시는 확대되었다. 운하는 바로 도시의 촉매제였다.
중국 역사를 반추하면 양주, 서안, 북경 삼대 세계도시는 운하가 만든 작품이다. 양주는 대운하의 기점이고, 서안은 중간점이고, 북경은 종점이었다. 대운하가 만든 세 점은 정치, 경제, 문화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형성된 중원문화는 운하를 매개로 북방과 남방으로 확산되었고 동시에 북방초원문화와 남방문화를 중원으로 유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민족융합과 교류 및 중외국제교류가 이루어져 중화민족대가정, 나아가 중화세계를 만들었다.
3.
중국인에게 물은 끊임없는 도전과제이자 혜택이었다. 삼황오제 시기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사활을 걸었던 중국이 지금도 그 난제 속에 갇혀있다. 수나라의 운하정책이 남수북조(南水北調), 샨샤댐(三峽大坝)으로 이어지고 있고, 목마른 대지, 오염된 물을 상대로 처절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더 광범위해지고, 더 심각해지고, 방향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2002년 8월 29일 중화인민공화국은 수법(水法)을 공포하고 수자원의 개발, 이용, 절약, 보호를 명문화했다. 위기를 절감한 때문이고 물의 국가로 복귀하고자 하는 염원 때문이다. 물의 국가 중국이 ‘승천하는 중국용’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시진핑정부 등장이후 중국인들은 수직적 체계와 수평적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인 물을 장악하는 것이 ‘중국의 꿈’을 이루는 첩경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황하가 중원문화, 중화문명과 중화세계를 만들었던 기억을 되살리고, 물을 지배했던 명나라 시기 정허(鄭和)의 남해원정과 물의 지배권을 상실했던 청나라시기 아편전쟁의 경험을 곰씹고 있다. 최근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발언에서 해양굴기, 해양권익이 추임새처럼 흘러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황화문명을 황하(黃河)에서 황해(黃海)로 황해에서 태평양으로 확대시키고 싶은 것이다. 중국 역사를 만들었던 물의 정치무대를 황하와 장강 중심의 강하(江河)에서 대륙과 대륙을 포괄하는 대해(大海)로 넓히고 싶은 것이다. 무색무취무미의 물에 중국 황토를 섞어 세상을 중국의 색깔, 중국의 향기, 중국의 맛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4.
‘물의 정치’가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숙제가 남았다. 바로 정치원리로서의 치수(治水)이다. 치수는 성장의 정치인 치산(治山)에 대비되는 분배의 정치이다. 사회주의 신중국의 성립은 치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분배의 정치였고, 공산당의 중국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그 명분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정치는 물을 떠나 산으로 가고 있다. 빈부격차는 물론이고, 빈부격차가 만들어내고 있는 사회계급들을 보면 더 이상 중국을 사회주의 중국이라 말할 수 없다. 물은 높은 곳에서 흘러 평평한 상태가 될 때까지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간다는 이치를 잊은 것이다. ‘물의 정치’가 가진 참의미를 잊은 중국이 대양으로 가는 것을 ‘물의 정치’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이는 자칫 모순투성이의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른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1, No.3, 2013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