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05 10:11
중국 다시보기 (7): 농(農)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13,848  


중국 다시보기 (7): 농(農)
                                   
자연과 상응하는 인간의 생존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가의 흥망이나 정치의 성패도 날씨와 자연의 안배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래서 자연을 기반으로 한 농(農)은 오천년 중국역사에서 천하의 근본(天下之大本)이 되었다. 농경은 정치의 본질적인 임무인 먹고사는 문제를 담당해왔고, 농민은 평시에는 생산력으로, 유사시에는 국방력으로 역할 했다. 정치가 혼란하여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될 때에는 농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정치주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농(農)은 역사의 어머니였고 주관자였다. 마오쩌둥의 신중국도 농의 덕분이었다. 농촌이라는 물적 공간적 기반과 농민이라는 정치적 기반이 사회주의 신중국 개막을 가능하게 했다.

1921년 창당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중국공산당이 혁명적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것도 농촌으로 후퇴한 1927년 이후이다. 농촌은 중국공산당으로 하여금 소련사회주의 노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다. 혁명의 대상을 세계 프롤레타리아에서 중국농민으로 전환시킨 발상은 후일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중국혁명의 특허품이 되었다. 1933년 마오는 “어떻게 농촌계급을 분석할 것인가”라는 문건에서 농촌계급의 분석을 시도하고, 농민을 4가지 계급으로 분류하였다. 자신의 노동 없이 소작료징수만으로 살아가는 지주(地主),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면서 여분을 소작 주는 부농(富農), 생존에 필요한 정도의 토지를 보유했던 중농(中農), 자기 토지가 거의 없이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빈농(貧農), 고농(雇農)이 그것이다. 마오는 이러한 농촌계급 분류를 통해 농촌이라는 공간에서 계급대립과 계급투쟁의 근거를 마련했다. 

1949년 국공내전의 종결로 공산당이 승리했지만 농민에게는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었다. 항일전쟁 동안 지주와 부농을 비롯한 모든 농민세력들과 협력하였던 중국공산당이 토사구팽(兎死狗烹)을 시작한 것이다. 1950년 6월 28일 중국공산당은 토지개혁법을 제안하면서 지주의 토지와 부농의 잉여 토지를 몰수했다. 해당지역 농민협회는 몰수한 토지를 빈농, 고농에게 재분배했다. 토지 분배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은 농촌의 계급갈등을 부추겼다. 그러나 혁명전위대가 되어야 할 빈농과 고농이 지주와 부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토지몰수에 소극적이고, 지주이자 상인과 기업가였던 민족자본가계급도 정리되지 않자 공산당은 전면에 나선다.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혁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토지몰수와 분배의 전면에 공산당이 포진하고 통일 수매와 통일 판매제도를 강제하면서 농지집단화 작업을 서둘렀다. 부농과 지주에게 몰수한 토지를 빈농과 고농에게 분배하는 듯 했지만 집단농장이란 명분으로 다시 빼앗았다. 중국공산당은 목적은 애초부터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려던 것이 아니라 지주의 토지를 강탈하는 것이다. 혁명의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다. 농민은 결국 혁명재물로 재활용된 것이었다. 
   
천하의 근본인 농(農)의 추락은 중국정치를 나락으로 몰았다. 1954년 겨울부터 시작된 식량위기가 그것이다. 그로인해 중국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 초유의 혹독한 홍역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리고 덩샤오핑의 등장으로 중국은 농의 멍에를 벗는 듯했지만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하고 말았다. 도시화와 농민공이다. 중국발전과 중국현대화 과정에서 농은 또 다시 희생물이 된 것이다.   

2014년 시진핑의 중국, 시위가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진원지는 농촌이다. 도시화과정에서 빚어진 농촌 토지 수용과 보상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이미 예견된 사실이었다. 중국도시화를 주도하고 있는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1980년대 중반부터 도시화를 구상한 인물이었다. 그는 『번영으로 가는 전략적 선택 走向繁榮的戰略選擇』이란 책에서 “중국농촌은 산업화과정에서 뒷전에 밀렸다. 도농격차는 계속 확대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산업화방식이 공업발전에서 성공적이라고 한다면 농촌경제의 변혁과 국민 경제의 전반적인 개조라는 측면에서는 실패라고 할 수 있다”고 썼다. 그리고 그는 ‘도시화’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중국의 주요모순이 삼농문제라면 모순자체를 없애는 것이 가장 손쉬운 모순해결방법이고 그것은 바로 ‘도시화’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농촌을 없애면 농민, 농촌, 농업의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다. 

얼핏 기발한 발상인 것 같지만 농자천하지대본의 역사는 그리 녹녹하지 않다. 농(農)은 인간유기체의 생존에 필요한 양식공급원인 동시에 재생의 안식처였다. 농은 사람을 만들고, 정치를 만들고, 세상을 만들었다. 그런 농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농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중국지도부도 인지하고 있다. 매년 3월에 시작되는 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 보고서의 첫머리에 농촌, 농업, 농민이라는 삼농의 문제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2011년에서 2015년 까지 설계된 제12차 5개년 계획요강의 첫 장, 제2편에도 ‘사회주의 신농촌건설’을 과제로 적고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농촌지원(强農惠農)’, ‘농촌지역 가전제품 보내기’, ‘농업세 철폐’, ‘도시화’ 등의 정책이 시도되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농업국가 중국의 농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농(農)뿐이다. 농(農)이 스스로 깨어나 농(農)의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중국은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이 중국정치의 의무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중국의 농이 깨어나 천하의 주인이 되는 그날, 중국은 진정으로 중국다운 중국이 될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다시보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3, 2014년 3월,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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