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1-04 08:36
중국정치 다시보기 (5): 마오(毛)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12,803  


중국 다시보기(시진핑의 12字 과제 중 제5과제) 마오(毛)

1.

계사년(癸巳年)이 저물어가는 12월 26일, 15억 중국이 마오(毛)탄생 120주년 자축 잔치로 출렁댔다. 살아생전 최강의 황제, 사후에는 영원한 주석으로 등극한 마오의 탄신일에 사람들은 특별한 국수를 먹고 금제동상까지 세웠다.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도 없었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처럼 그는 분명 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 중화인민공화국을 창조한 주역이다. 그가 만든 사회주의 중국은 아편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국공내전으로 패망직전까지 갔던 중국을 구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목도하고 있는 중국은 중국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많고, 가장 부유한 중국이고, 바로 마오의 작품이다. 그래서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라는 과실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마오에 집착하고 열광한다.

2.

마오와 마오이즘에 심취한 젊은 추종자 소위 신인류(新人類)들의 말을 들으면 마오는 중국과 중국인민만을 위해 행(行)했던 성인이다. 중국식 사회주의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극복했으며, 핑퐁외교로 미국을 유인하기도 했다. 중국에게 필요하다면 친구도 공격하고 적과도 동침하는 이가 마오였다. 때로는 봉건적 악습과 투쟁하고, 때로는 외적과 투쟁했던 그의 인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투쟁은 굶주린 인민의 배와 따뜻한 보금자리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그를 신으로 추대했다. 시체를 방부 처리하여 혁명 기념관에 안치하고, 사회주의 중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모셨다. 마르크스-레닌과 같은 배분으로 정리하여 모든 문건과 글의 서두에 명시하게 했다.

인간 마오의 모습도 정비했다. 마오의 사상적 뿌리를 추적하면 수호지와 삼국지 등 몇 권의 소설이 전부이지만 그런 그를 수호지에 등장하는 의협심 강한 남자로 치사한다. 그의 의협심은 도가, 묵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등’사상의 뿌리가 되었으며 그 평등사상이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명한다. 청말민초(清末民初)의 강유위(康有为), 양계초(梁启超), 담사동(谭嗣同), 장태염(章太炎)과 같은 사상가들처럼 마오도 전통적이거나 반전통적인 것과 무관하게 불교, 묵가, 유학의 영향을 받은 위대한 중국 사상가의 일인이라고 고집한다.

3.

그런데 재미난 것은 탄생 120주년을 맞은 마오의 변신이다. 탄생기념 축제날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즐비하게 늘어선 기념화환에 ‘돈’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마오의 사진이 인쇄된 1위안, 10위안, 20위안, 50위안, 100위안 지폐뭉치를 매다는 이도 있고 낱장을 접어 마치 꽃꽂이를 하듯 장식하는 이도 있다. 공통적인 것은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들의 중얼거림이다.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세요” 마치 삼국지의 관운장처럼 마오도 축부(祝富)의 재신(財神)으로 부활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모순된 상황이다. 사회주의 중국을 창시한 영원한 주석 마오가 ‘돈신’이다? 이는 중국 사람들에게 마오가 하나의 이름이나 칭호가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개념화되고 범주화되었고,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 중심이고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긴 한데 방향이 엉뚱하다. 마오가 중국화폐를 차지하는 순간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마오는 더 이상 인간 마오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마오 지향, 마오 사랑을 수옌중(萧延中)은 ‘마오쩌둥현상’이라는 신조어로 개념화했다.

4.

더 재미난 것은 중국정치다. 마오탄생 기념일 이틀 뒤인 12월 28일 점심시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베이징 골목의 만두가게 칭펑(慶豊)을 찾았다. 역사 이래 중국황제가 누추한 만두가게를 직접 찾은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일반 백성들과 나란히 줄을 서서 음식을 주문하고는 직접 21위안(3600원)의 금액까지 계산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백성들과 다정다감하게 담소를 나누며 돼지고기와 양파로 속을 채운 만두 6개, 간(肝) 요리와 야채복음 한 접시를 깔끔하게 비웠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접한 중국인들은 광분했다. 한 네티즌이 찍어 올린 사진이 중국판 트위트 웨이보(微博)에 등장하자 사이버공간은 댓글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서민을 돌보는 지도자 모습에서 존경과 신뢰를 얻었다’, ‘모든 정책과 실천을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군중노선을 견지하겠다는 의지이다’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런데 이 장면은 왠지 익숙하다. 수나라 문제(文帝)가 백성들이 굶는 것을 보고 상에 고기를 올리지 못하게 한 고사, 국공내전 당시 양고기를 물리면서 농민이 먹는 대로 먹겠다던 마오의 고사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설마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오의 흉내를?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마오 탄신일을 맞아 시진핑은 분위기의 절제를 요청했고 시장의 시대에 마오이즘은 한계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얼마 전 문화대혁명 시기의 중국으로 돌아가자던 보시라이의 총칭모델을 묵살하고 그를 제거한 바 있다.

5.

그렇다면 시진핑 중국주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마오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시진핑, 도대체 중국을 어떻게 운영하려 하는가? 해답은 마오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다. 흑묘백묘의 덩샤오핑, 3개 대표론의 장쩌민, 조화사회의 후진타오 모두 마오의 길을 달려온 충견들이었다. 시진핑도 결국 마오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마오의 길에 연결된 ‘덫’이다. 배부른 중국을 만든 마오의 길에 타락한 자본주의라는 덫이 나타난 것이다. 만약 지금의 중국모습을 스스로 자화상으로 그리라면 돈 밖에 없는 중국, 돈만 쫓는 중국인의 모습뿐일 것이다. 

마오가 구상했던 사회주의 중국, 마오가 꿈꿨던 중화제국은? 오리무중이다. 그래서 시진핑의 고민은 깊다. 재신(財神) 마오? 아니면 주석(主席) 마오? 자칫하면 시진핑 대에 중국공산당(共産黨)은 공상당(空想黨)이 되고 평화굴기, 중화부활, 해양굴기 모두 마오의 공상이 될 수도 있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다시보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2, No.1, 2014년 1월,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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