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3-11-20 10:50
[김덕영 칼럼]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찾아서 [1]: 게오르그 짐멜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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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칼럼]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을 찾아서 [1]: 게오르그 짐멜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의 사회학을 흔히 형식사회학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이해사회학 및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iem, 1858-1917)의 사회학적 칸트주의에 비견된다. 이 세 거장에 의해서 사회학적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데, 이 전환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명백한 형태로 일어난 것이 짐멜이다. 짐멜은 사회를 사회적인 것으로 해체시켰으며 사회학을 역사철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내가 보기에 짐멜의 사회학은 아직도 집단주의적-국가주의적 가치와 윤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사회에 아주 큰 이론적-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1. 사회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해체된다

짐멜은 1908년에 출간된 그의 사회학적 주저『사회학: 사회화 형식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기존의 사회학을 비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사회학은 원래 상호작용하는 세력들이 이미 그 직접적인 담지자로부터 증발되어 이념적 단위가 되어버린 사회적 현상들에 한정되었다. 국가와 노동조합, 성직자 집단과 가족형태, 경제구조와 군대조직, 길드와 지역 공동체, 계급구성과 산업적 노동분업 ― 이 모든 것과 이와 유사한 거대한 조직과 시스템이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에 대한 과학의 영역을 형성하는 듯하다(1).

여기에서 짐멜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스펜서와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회학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스펜서의 사회학은 사회의 구조, 그 구성요소들 사이의 관계, 사회의 운동법칙 또는 발전법칙 등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스펜서의 사회학은 말 그대로 사회에 관한 과학, 즉 ‘사회’ + ‘학’이다.

짐멜에 따르면 사회학을 사회에 관한 과학, 즉 ‘사회’ + ‘학’으로 규정한다면, 사회학은 독립적인 개별과학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다시 말해 인간의 사고와 행위는 사회에서 그리고 사회에 의해서 결정되며, 따라서 인간에 관한 모든 과학은 동시에 사회에 관한 과학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 속하지 않는 과학은 모두 필연적으로 사회학에 속하게 된다. 그리되면 사회학은 윤리학, 문화사, 경제학, 미학, 인구학, 정치학, 인류학 등과 구별되는 개별과학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보편과학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경우 우리는 단지 기존의 모든 과학을 “하나의 커다란 냄비에 집어넣고는” 이 냄비에 ‘사회학’이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2). 사회학은 사회에 관한 과학이라는 생각, 즉 사회학은 사회의 보편과학이라는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짐멜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가 사회에서 그리고 사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이 사회학을 사회에 관한 보편과학으로 만들 수 없는데, 이는 마치 화학, 식물학 그리고 천문학의 대상이 궁극적으로 인간 의식 속에서만 인식되고 그 전제조건에 예속된다는 사실 때문에 이 과학들이 심리학의 내용이 될 수 없다는 이치와 같다.(3)

이처럼 짐멜은 사회학을 사회의 보편과학으로 파악하는 입장을 거부하면서 사회학을 다수의 개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호작용의 ― 내용이 아니라 ― 형식을 연구하는 과학으로 규정한다. 바로 이런 연유로 짐멜의 사회학은 일반적으로 형식사회학이라고 불린다. 짐멜은 사회에 대한 실체론적 개념을 단호히 거부하면서 사회를 개인들 사이의 다양한 상호작용의 총합과 동일시하며, 따라서 사회보다는 사회화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사회란 단지 상호작용에 의해서 결합된 개인들을 지칭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짐멜은 사회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사건이자 과정이라고 규정한다. 사회란 개인들과 그들의 운명 그리고 발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기능에 다름 아니다. 이로써 사회는 개인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해체되었다. 그리하여 사회가 고체적인 것에서 액체적인 것이 되었다. 사회가 “액화”(液化)되었다.(4) 사회를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해체하고 이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학, 사회의 실체화가 아니라 사회의 사건화와 과정화를 추구하는 사회학 ― 이는 사회학사에서 일어난 가장 의미심장한 패러다임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짐멜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학의 패러다임 전환은 생명과학의 패러다임 전환에 비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과학에서는 심장, 신장, 폐, 위와 같이 비교적 크고 고정적이며 명백히 구분할 수 있는 신체기관으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무한한 세포 내에서 진행되는 무한한 생명 현상과 과정으로 인식관심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짐멜은 1907년에 출간된 <사회학의 문제>에서 주장하기를, 비교적 크고 고정적인 신체기관에 한정된 생명과학은

신체의 형태와 기능의 차이점들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생명의 과정은 가장 작은 요소들인 세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들 세포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수많은 상호 작용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세포들이 서로 결합하고 서로를 파괴하는가, 어떻게 서로가 동화되거나 화학적으로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야만 비로소 신체가 그 형태를 구성하고 유지하거나 변화시키는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심장과 허파, 위와 콩팥 그리고 뇌와 운동기관들 ― 이들 커다란 기관들은 세포라고 하는 생명의 기본 요소들과 이들 요소 사이의 상호 작용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특수한 구조와 기능으로 발전한 결과이다. 그런데 가장 작은 요소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수많은 과정들이 ― 이것들은 물론 거시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비로소 결합되고 유지된다 ― 진정하고 근본적인 생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이들 커다란 기관만을 통해서는 생명의 연관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5)

이처럼 생명과학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가능했던 이유는 16세기 말에 세포 내의 생명 현상과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이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의 전래적인 대상을 구성하는 구조물들로부터는 개인들의 체험에 존재하는 실제적인 사회의 삶이 전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개별적으로는 덜 범위가 작은 수많은 합성물이 […] 그들 사이에서 작용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삶은 불연속적인 수많은 체계들로 쪼개지고 말 것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들 사회적 형식들을 과학적으로 확정하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다른 한편 사회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함에 있어서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다. 이는 사회적 형식들은 일반적으로 아직 고정적이고 초개체적인 구조로 응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으며, 또한 사회는 소위 발생하는 상태에 있음을 보여줌을 의미한다. 물론 이 발생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구명할 수 없는 태초에 시작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리고 매시간 일어나는 시작을 가리킨다. 사람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사회화가 맺어지고 풀리며 새로이 맺어진다. 사회화는 영원하게 흐르고 고동치면서 개인들을 결합시킨다. 설령 그것이 진정한 조직으로 발전하지 않는 경우에도 또한 그러하다.(6)

이런 식으로 짐멜이 자연과학적 현미경에 비유되는 ‘사회학적 현미경’을 가지고 관찰하는 사회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에 대해서 시기를 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거나 같이 점심을 먹는다. 그들은 구체적인 이해관계와 전혀 상관없이 서로 공감하거나 또는 반감을 가지면서 접촉한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기도 하고, 서로는 서로를 위해서 옷을 입고 치장을 한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연결되는, 순간적인 또는 지속적인,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덧없는 또는 중대한 이 모든 무수한 관계들(이 가운데 위에 언급한 예들은 아주 자의적으로 고른 것이다)이 우리를 지속적으로 함께 묶는 것이다. 매일같이 그리고 매 시간마다 이와 같은 관계들이 형성되고 소멸되며, 새로이 시작되고, 다른 관계들에 의해서 대체되고, 그것들과 뒤섞인다.(7)

이 모든 것은 사회가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해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짐멜에게 사회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총합을 가리키는 이름에 다름 아니다. 사회란 사회적 상호작용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므로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사회가 존재한다. 단 두 사람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에도 사회는 존재한다. 예컨대 방금 인용한 바와 같이,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는 지극히 순간적인 상호작용의 경우에도 엄연히 사회가 존재한다. 두 직장 동료가 휴식시간에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에도 엄연히 사회가 존재한다. 이렇게 해서 고정적이고 실체적인 사회의 개념은 유동적이고 과정적인 상호작용에 자리를 내주게 되며, 사회학의 인식관심이 사회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바뀐다. 다시 말해 사회학의 시선이 사회의 구조, 그 구성요소들 사이의 관계, 사회의 운동법칙 또는 발전법칙 등에서 개인들의 삶과 행위로,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 안에서 그리고 사회를 통해서 결정되는 개인들의 삶과 행위로 옮겨간다. 이제 사회학은 사회에 관한 과학, 즉 ‘사회’ +‘학’이 아니라 개인들의 삶과 행위,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화된 개인들의 삶과 행위에 관한 과학이 된다. 그것은 사회화에 관한 과학, 즉 ‘사회화’ +‘학’이 된다.

2. 미시냐 거시냐를 넘어서

흔히 짐멜의 사회학은 미시사회학이라고 간주되는데, 이는 여기까지의 논의를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짐멜은 ― 방금 인용한 구절의 일부분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자면 ― “사람에서 사람으로 연결되는, 순간적인 또는 지속적인,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덧없는 또는 중대한 [……] 무수한 관계들”에 사회학적 현미경을 들이댄다. 마치 생명과학자가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생명 현상과 과정에 자연과학적 현미경을 들이대듯이! 그리하여 아무리 미세하고 순간적인 사회적 현상과 과정도 사회학적 인식의 지평으로 끌어들인다. 예컨대 ―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 돈, 유행, 장신구, 식사, 감사, 신의, 일치, 편지, 비밀, 공간, 이방인, 경쟁, 투쟁, 지배와 복종, 빈곤, 거짓말, 감각 등이 사회학적 논의 ― 그리고 철학적, 심리학적, 미학적 논의 ―의 대상이 된다.(8)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그 첫 번째는 사회를 상호작용으로 해체하기 때문이며, 그 두 번째는 이 상호작용을 다시 형식과 내용으로 분리하기 때문이다.

먼저 실체인 사회가 아니라 과정인 상호작용이나 사회화에서 출발하면 사회학적 인식의 외연은 크게 확대된다. 단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는 지극히 미시적인 현상부터 국가와 같이 거시적인 현상도 사회학적 인식의 지평으로 들어온다. 상호작용이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사회가 있기 때문이다.(9)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의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면 사회학적 인식의 내연이 크게 심화된다. 왜냐하면 사회학은 한편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개인들의 동기, 이해관계, 충동, 욕구, 감정, 사랑, 목적, 이상, 가치 등 ― 이를 가리켜 상호작용의 형식이라고 한다 ― 을,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갈등, 협동, 분업, 지배, 복종, 우호관계, 적대관계, 투쟁 등 ― 이를 가리켜 상호작용의 내용이라고 한다 ― 을 다룰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사회학이 내용 따로 다루고 형식 따로 다룬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짐멜은 상호작용을 그 내용과 형식으로 분리한 다음 후자의 관점에서 전자에 접근한다. 말하자면 형식에 담겨진 내용을 다룬다. 바로 이런 연유로 짐멜의 사회학을 형식사회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10)

이 논의의 맥락에서 1907년에 출간된 짐멜의 작은 글「감각의 사회학」을 언급할 만하다. 사실 이 글은 제목 자체가 사회학자들에게 퍽 낯선 것이다. 감각은 사회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니 사회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감각은 생물적, 생리적 또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간주하지 사회적인 차원으로 간주하지 않으며, 따라서 생물학적, 생리학적, 심리학적 또는 인간학적 접근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사회학적 접근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통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멜은 이러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짐멜에 따르면 감각은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감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세하고 보이지 않는 관계들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감각은 “사회구조에 작용하는 생산적이면서 형식을 부여하는 힘들” 가운데 하나로서 인간의 사회적 삶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11) 이와 관련해 짐멜은「감각의 사회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본 연구는 감각기관을 통해서 우리가 서로를 인지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인간들의 공동체 삶, 다시 말해 그들 사이의 공존 관계, 협력 관계 및 적대 관계에 대해서 어떤 의미들을 가지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우리가 상호 작용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우선 우리가 서로에게 감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일반적으로 자명하고 의견의 일치를 본 사실로, 다시 말해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치 않은 사실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감각기관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인상은 단순히 사회적 관계들을 구성하는 공통적인 ― 곧 모든 인간 사회에 보편적인 ― 기초와 전제 조건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감각에 의한 인상이 단순히 모든 인간 사회에 공통적인 기초와 전제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관계의 구체적인 내용과 특성들은 이것과는 무관하게 전혀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 생겨난다. 모든 감각은 다른 한편으로 그 개별적 특성에 따라서 사회화된 존재의 구성에 나름대로 특색 있는 기여를 한다. 사회적 관계가 지니는 특수성들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받는 인상들의 뉘앙스에 상응한다. 개인들이 접촉할 때에 어떤 감각이 다른 감각에 대해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 자주 다른 경우에는 창출될 수 없는 사회학적 색채가 그러한 접촉에 부여된다.(12)

짐멜에 따르면 감각적 인상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먼저 “어떤 사람에 대한 감각적 인상은 주체의 내부에 영향을 미치면서 유쾌함과 불쾌함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감각적 인상이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수단이 되면 이것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내가 그로부터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이제 단지 다리에 불과하다. 나의 객체인 다른 사람에게 도달하기 위한 다리 말이다.” 요컨대 “모든 인상은 감각적 분위기와 정서를 느끼는 주체로 환원되다가는, 다시금 감각을 통해서 인식되는 객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13) 바로 이 두 가지 방향의 공동작용을 통해 감각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구성한다. 이에 근거해 짐멜은「감각의 사회학」에서 눈(시각), 귀(청각), 코(후각) 등 인간의 감각기관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짐멜의 사회학을 일반적인 의미의 미시사회학이 아니라 미시사회학 중 미시사회학 또는 미시사회학의 미시사회학이라고 불러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 짐멜은 진정한 의미의 미시사회학의 창시자이다.(14) 그리고 미시사회학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사회학자들은 짐멜로부터 정말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다. 짐멜의 사회학은 미시사회학의 진정한 보고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이 있으니, 그것은 짐멜을 단지 미시사회학자로만 간주하거나 짐멜의 사회학을 미시사회학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짐멜의 사회학을 보는 것은 사회학 이론과 역사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오해이자 오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짐멜은 미시냐 거시냐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짐멜은 아주 미시적인 것과 동시에 국가, 교회, 시장, 가족, 계급, 노동조합, 길드와 같은 거대하고 초개인적인 구성체나, 시스템 또는 조직도 사회학 인식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것들에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다. 짐멜은 이것들을 개인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이것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객관적 구조물로 응축되거나 결정화된 것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논리와 원리에 따라 존재하고 작동한다. 그리하여 개인들의 자발적인 상호작용과 갈등을 일으키거나 대립적인 관계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사회학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거대하고 초개인적인 사회적 단위들을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의 관점에서 관찰해야 한다. 사회학은 사회의 원자들, 즉 개인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상호작용에서 출발해야 하는바, 그 이유는 바로 이 상호작용이 “아주 명백히 드러나는 또는 아주 신비로운 사회의 생명력에 나타나는 모든 완강함과 유연성 그리고 모든 다채로움과 통일성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15) 사회학적으로 보면 사회의 원자들인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 원자들을 넘어서는 거대하고 초개인적인 사회적 단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의 관계, 즉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거대하고 초개인적인 사회적 단위들의 관계는 무엇인가? 짐멜에 따르면 전자에서 후자가 형성되며 후자는 전자를 위한 수단 또는 도구가 된다.

여러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객관적인 제도가 형성되는데, 그 이유는 우연적인 것이 마멸되고 이해관계의 동질성으로 인해 개인들의 기여가 통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제도들은 말하자면 개인들의 무수한 목적론적 곡선들이 모여드는 중앙역(中央驛)을 구성하며, 또한 개인들에게 이 목적론적 곡선들을 다른 방식으로는 달성 불가능한 것에까지 확장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도구를 제공해준다.(16)

예컨대 국가를 언급할 수 있는데, 이 국가가 개인들에 대하여 지니는 도구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민법의 경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민법상의 특수한 제도들은 개인들에게 그 제도들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실현할 가능성을 제공해준다. 계약, 유언, 입양 등의 법적 형식이라는 우회로를 통하여 개인들은 사회 전체에 의해 제작된 도구를 사용하는데, 이 도구는 그들의 힘을 배가시키고 그 작동범위를 확대하며 그 결과를 확실하게 보장한다.” 또한 교회의 의식도 ― 한 가지 예만 더 들어보면 ―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 거기에 참석한 개인들을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다시 말해 교회의 의식은 “교회 전체에 의해 만들어져서 교회 전체에 전형적인 감정을 객관화하는 도구”이다. 그것은 확실히 “신앙이 추구하는 내면적이고 초월적인 궁극적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우회로”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지까지나 “도구를 통한 우회로인데, 이 도구는 일체의 물질적 도구와는 달리 개인들이 혼자서는, 즉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성취할 수 없다고 믿는 목적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에 그 전체적인 본질이 있다.”(18)

3. 개인과 사회 ― 사회학의 근본문제

짐멜에게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사회학의 근본문제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사회는 실체론적 존재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개인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상호작용들의 총합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상호작용들이 객관적 구조물로 응축되거나 결정화된 제도, 조직, 체계, 구조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후자는 전자와 대립적이거나 갈등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전자를 위한 수단과 도구가 되며, 따라서 후자의 관점에서 전자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관점에서 후자에 접근하는 것이 사회학적으로 타당하다. 이렇게 보면 짐멜의 사회학에서는 사회가 사회적 상호작용 또는 사회화로 해체되고 다시 이로부터 재구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짐멜에 따르면 개인은 사회 내적 존재인 동시에 사회 외적 존재, 또는 달리 말하자면 개인은 사회화된 존재인 동시에 비사회화된 존재이다.(20) 그러니까 개인은 “호모 듀플렉스”(Homo Duplex), 즉 이중인간인 셈이다.(21) 사회 내적 존재 또는 사회화된 존재로서의 개인은 다양한 사회적 집단과 영역의 교차점이나 결절점이 된다. 다시 말해 이 경우 다양한 사회적 집단과 영역이 개인에서 교차하거나 결절되면서 그의 사고와 행위를 규정하고 결정한다. 이에 반해 사회 외적 존재 또는 비사회화된 존재로서의 개인은 사회적으로 조건지어지지 않으면서 내적으로 완결적인 그리하여 외적으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존재로서의 개인을 가리킨다. 전자와 후자를 달리 객체적 개인 또는 자아와 주체적 개인 또는 자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객체적 측면과 주체적 측면이 합해져서 개인을 구성한다.

1890년에 짐멜의 저서『사회분화론: 사회학적 및 심리학적 연구』가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짐멜이 낸 최초의 사회학 저작이라는 점에서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저작은 그것 말고도 사회분화에 대한 독특한 이론을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이론이란 구체적으로 사회성의 증가가 개인성의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역으로 표현하자면 개인성의 증가는 사회성의 증가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짐멜에 따르면 근대로 들어오면서 사회적 집단과 영역의 수와 종류, 그러니까 개인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수와 종류가 증가한다. 이렇게 사회적인 것이 확장되면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증가한다. 다시 말해 개인성이 증가한다. 왜냐하면 개인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다양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전통적인 사회체와의 전인격적인 결합관계와 구속관계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짐멜에게 사회분화란 사회성이 증가하면서 그에 따라 개인성이 감소하는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성의 증가하면서 그에 따라 개인성이 증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리하여『사회분화론』의 부제가 흔히 표상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사회분화의 사회적 차원을 다루는 “사회학적 연구”가 아니라 거기에 더해 사회분화의 개인적 차원을 다루는 심리학적 연구가 부가된 “사회학적 및 심리학적 연구”가 된 것이다.(22)

짐멜의 사회학적 ‘처녀작’인『사회분화론: 사회학적 및 심리학적 연구』가 나온 지 근 20년만인 1908년에 그의 사회학적 주저인『사회학: 사회화 형식 연구』가 나온다. 이 방대한 저작은 짐멜이 그 동안 수행한 사회학적 연구를 결집한 것이다.(23) 거기에는 “어떻게 사회가 가능한가?”라는 작은 보론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사회의 사회학에 대한 우리의 논의에 아주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24)

짐멜이 던지는 “어떻게 사회가 가능한가?”라는 문제는 그 제목이 암시하듯이, 칸트의 인식론이 자연과학적 인식과 관련해 던지는 “어떻게 자연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사회학적 인식에 적용한 것이다.(25) “어떻게 자연이 가능한가?”는 자연세계를 관찰하는 인식주체의 정신적 행위를 규정하는 선험성에 대해 묻는 것이다. 그것은 순수한 인식론적 문제이다. 칸트에 따르면 자연세계는 대상을 자신의 선험적 원리나 법칙 또는 도식에 따라 종합하고 구성하며 판단하는 관찰자의 정신을 통해서만 존재하고 의미를 갖는다. 이에 반해 사회세계에는 그 인식대상의 존재론적 성격상 단순히 관찰하는 주체의 정신으로 환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회가 가능한가?”는 순수한 인식론적 주제인 “어떻게 자연이 가능한가?”와 달리 인식론적이면서 (사회)존재론적 주제이다. 인간사회는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는 상호작용을 하는 개인들을 가리키는 이름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 개인들이 (사회)존재론적 논의의 대상이 된다. 순수하게 인식론적 측면에서 보면, 사회에서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은 자연세계와 마찬가지로 관찰자의 정신적 작용에 의해 종합되고 구성되며 판단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세계와 달리 관찰자의 정신에 의해 단순히 해체되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사회학적 인식의 대상이 되는 개인들은 자연과학적 인식의 대상이 되는 외적-물리적 사물들과 달리 그 자체가 “독립적 존재, 영혼의 중심, 인격적 통일성”이기 때문이다.(26)

짐멜은 자연세계와 구분되는 사회세계의 존재론적 고유성을 ‘나’(자아)와 ‘너’(타자)라는 사회적 최소단위, 즉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개인들을 가지고 설명한다.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따라서 나의 표상에 관계없이 존재하는 무엇이다.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환원되거나 소급될 수 없는 근원현상 또는 원천현상이다. 너의 영혼은 나에게 “나 자신과 똑같은 실체를 가지는바, 이 실체는 물질적 사물의 실체와 완전히 구별된다.” (27) 그러므로 사회학적 인식은 자연과학적 인식과 달리 사회학자의 인식하는 표상에 완전히 해체시킬 수 없는 실체를 자신의 표상의 생산물과 내용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짐멜은 이를 “사회화의 가장 심층적인 심리학적-인식론적 도식이자 문제”라고 규정한다.(28)

결국 짐멜이 사회학적 인식과 관련하여 던지는 (사회)존재론적 문제는 심리학적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에서 ‘심리학적’이라는 말은 개별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사회현상이 자연현상과 달리 정신적-주관적 존재인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짐멜에게 사회는 “개인들 사이의 정신적 상호작용”에 다름 아니다.(29) 그러므로 사회적 존재는 어디까지나 개인들을 통해서 실재적인 것이 된다. 요컨대 사회는 “주관적 영혼들의 객관적 형식”이다.(30) 이렇게 보면 짐멜이 요구하는 사회학적 현미경은 곧 심리학적 현미경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의 사회학적 처녀작『사회분화론』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그 부제가 단순히 “사회학적 연구”가 아니라 “사회학적 및 심리학적 연구”이다. 짐멜에게 사회학적 논의는 동시에 심리학적 논의가 된다. 왜냐하면 심리학이 사회학적 인식의 선험성이기 때문이다. 아니 심리학은 모든 과학적-철학적 인식의 선험성이 된다.(31)

4. 역사철학적 목적론을 넘어서

짐멜이 사회학의 발전에 기여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업적은 사회학을 엄격하게 역사철학으로부터 구분하려고 한 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미 사회학의 인식대상을 결정하는「사회학의 문제」(1894)에서 이루어진다.

짐멜이 보기에 역사철학은 보편적인 개념들에 힘입어 무한히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총체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지적 수단인바, 흔히들 말하기를 “역사는 이들 개념에 의하여 특정한 요구, 이를테면 윤리적, 형이상학적, 종교적 또는 예술적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러한 역사철학과 달리 사회학은 철저하게 현상학적으로 경험적 현실들과 관계하며 심리학적으로 행위하고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의 영혼으로부터 출발한다.(32) 짐멜의 눈에는 역사철학이 가정하는 보편타당한 역사법칙은 그저 사변적일 뿐이다. 그러한 법칙을 찾아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 자체가 대단히 복잡한 구조물이며, 그 자체로 질서가 있는 사건으로부터 매우 불확실하고 주관적으로 경계를 설정한 단편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발전과정에 대한 통일적인 공식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33)

그러므로 보편적이고 총체적인 역사철학적 고찰방식은 이제 경험적 현실 가운데 특정한 부분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일련의 개별과학들에 의해서 대체되어야 한다.(34) 사회학은 이 일련의 개별과학 가운데 하나로서 개인들 사이에서 전개되는 상호작용의 형식을 그 인식대상으로 한다.

주
1) Georg Simmel, Soziologie. Untersuchungen uber die Formen der Vergesellschaftung(1908): Georg Simmel Gesamtausgabe 11,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2a, 32쪽.
2) 같은 책, 14-15쪽.
3) 같은 책, 15쪽.
4) 이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Heinz Bude, “Auflosung des Sozialen? Die Verflussigung des soziologischen ‘Gegenstandes’ im Fortgang der soziologischen Theorie”, in: Soziale Welt 39/1988, 4-17쪽.
5) 게오르그 짐멜,「감각의 사회학」.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새물결 2005 (김덕영ㆍ윤미애 옮김), 153-174쪽, 여기서는 153-154쪽.
6) Georg Simmel, 앞의 책(1992a), 32-33쪽.
7) 같은 책, 33쪽.
8) 짐멜이 다루는 주제가 얼마나 다양한가는 다음을 참조할 것. 김덕영,『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 도서출판 길2007,  126쪽.
9) 이처럼 상호작용에서 출발해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을 감싼다는 점에서 짐멜의 사회학은 방법론적 상호작용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방법론적 상호작용주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 및 방법론적 전체주의와 구별되면서 이 둘의 중간에 위치한다. Hartmut Rosa, David Strecker & Andrea Kottmann, Soziologische Theorien, Konstanz: UVK Verlagsgesellschaft 2007, 93쪽. 짐멜에 따르면 상호작용은 사회세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세계에도 존재한다. 그에게 상호작용은 세계원리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계의 모든 지점과 다른 모든 지점 사이에는 힘들이 작용하고 오고가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제적 세계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Georg Simmel, Uber sociale Differenzierung. Sociologische und psychologische Untersuchungen(1890), in: Georg Simmel Gesamtausgabe 2,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89, 109-295쪽, 여기서는 130쪽.
10)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짐멜이 형식사회학을 구성하는 논리는 다루지 않도록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김덕영, 앞의 책(2007), 329쪽 이하.
11) 게오르그 짐멜, 앞의 글(2005), 174쪽.
12) 같은 글, 155-156쪽.
13) 같은 글, 157쪽.
14) 이 맥락에서 요즈음 한창 르네상스가 일고 있는 프랑스의 범죄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사회심리학자 가브리엘 타르드(1843-1904)에 대해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질 들뢰즈(1925-1975)는 가브리엘 타르드의 철학은 최근의 위대한 자연철학 중 하나라고 평가함으로써, 그리고 타르드를 미시사회학의 창시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타르드가 재평가되고 복귀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서는 타르드의 자연철학을 논할 수는 없고 그의 주저『모방의 법칙』(1890)을 중심으로 그의 사회학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타르드는 자연과학적 인식모델에 입각해 사회에 대한 보편이론을 추구한 오귀스트 콩트와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학에 반기를 들고 개인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사회학의 인식대상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실체로서의 사회를 개인들의 역동적인 행위로 해체시켰다. 이 점에서 타르드는 분명 미시사회학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진정한 미시사회학이 성립하려면 사회를 사회적 상호작용의 총합으로 파악하고, 이 상호작용의 다양한 형식, 예컨대 갈등, 지배, 복종, 협동, 분업, 투쟁 등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경험적-역사적 연구 및 비교연구를 해야 한다. 모방도 중요한 사회적 상호작용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드는 『모방의 법칙』에서 모방을 사회 자체와 동일시했으며, 이는 결국 모방으로 모든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사회학, 그러니까 사회에 대한 보편이론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타르드가 앞문으로 내다버린 콩트와 스펜서 유의 사회학이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타르드는『모방의 법칙』을 순수사회학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모방에 대한 그의 정의를 읽어보면 이것이 얼마나 공허한가가 곧바로 드러날 것이다. 타르드에 따르면 모방은 “한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의 원거리 작용, 즉 어떤 뇌 속에 있는 음화陰畵를 다른 뇌의 감광판感光板에 거의 사진처럼 복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작용”이다. 가브리엘 타르드,『모방의 법칙』, 문예출판사 2012 (이상률 옮김; 원제는 Gabriel Tarde, Les Lois de L'imitation), 8쪽. 솔직히 오늘날에는 자연과학, 아니 뇌과학이나 신경과학도 이런 식의 정의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타르드를 잊혀진 사회학자로 만든 원인이었다. 타르드와 경쟁적인 관계에 있던 에밀 뒤르케임은 유전적, 기후적, 지리적 또는 심리적 현상으로 간주되던 자살을 사회적 통합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함으로써 자살에 대한 엄밀한 사회학적 인식을 구축할 수 있었다. 뒤르케임에 따르면 자살은 개인들에 대한 사회적 통합이 너무 강하거나 약하면 일어나는 사회적 사실이다.『모방의 법칙』은 콩트와 스펜서 유의 사회학이 지배하던 1890년대에 모방이라는 미시적 사회현상을 사회학적 인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지성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진정한 미시사회학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짐멜보다도 앞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모방의 법칙』은 19세기 사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것 중에 하나라는 앙리 베르그송의 평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모방의 법칙』은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거기에는 모방이라는 사회현상에 대한 아주 풍부하고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짐멜도 이 책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사회는 그 어느 사회보다 모방이 중요한 사회관계의 기제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회학 이론에 대한 일정한 수준의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나 사회학에 대한 잘못된 표상에 빠지지 않으면서 필요한 경험적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김덕영,「명저 새로 읽기: 가브리엘 타르드‘모방의 법칙’」,『경향신문』(2013년 02월 16일)을 약간 변경한 것이다.
15) Georg Simmel, 앞의 책(1992a), 33쪽.
16) 게오르그 짐멜,『돈의 철학』, 도서출판 길 2013 (김덕영 옮김; 원제는 Georg Simmel, Philosophie des Geldes), 330-331쪽.
17) 같은 책, 330쪽.
18) 같은 책, 331쪽.
19) Georg Simmel, Grundfragen der Soziologie. Individuum und Gesellschaft(1917), in: Georg Simmel Gesamtausgabe 16,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9a, 59-149쪽.
20) 이것은 짐멜이『사회학: 사회화 형식 연구』에서 제시한 세 개의 사회학적 아프리오리 가운데 두 번째이다.  그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다음과 같다. 먼저 우리는 모두 단편적 존재인데 다른 사람의 눈에 의해 완전하고 이상적인 인격체로 재형성된다. 그리고 사회는 불평등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구설물이다. 모든 개인은 그가 지닌 특성에 근거해 자신의 사회적 환경 내에서 특정한 지위를 차지하며, 또한 그에게 이상적으로 속하는 이 지위는 실제로 사회 전체에 존재한다. 이처럼 짐멜이 세 개의 사회학적 아프리오리를 제시한 것은 사회학적 인식의 사회존재론적 조건과 한계를 규정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사회학적 아프리오리는 ― 짐멜은 이렇게 주장한다 ― “비록 현실적으로는 결코 완벽히 실현되지 않더라도 그래도 완벽한 사회의 이념적이고 논리적인 전제조건들”로서, “실제적인 사회화의 과정을 상대적으로 완전하게 또는 상대적으로 불완전하게 결정하는” 데에 그 의미와 기능이 있다. Georg Simmel, 앞의 책(1992b), 46쪽, 47쪽 이하. 이 점에서 짐멜의 사회학적 아프리오리는 ‘이념형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할 것. 김덕영, 앞의 책(2004), 268쪽 이하; 김덕영, 앞의 책(2012), 513-514쪽(각주 155번).
21)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할 것. Regina Mahlmann, Homo Duplex. Die Zweiheit des Menschen bei Georg Simmel, Wurzburg: Konigshausen & Neumann 1983.
22) Georg Simmel, 앞의 책(1989).
23) 짐멜의『사회학: 사회화 형식 연구』는 782쪽(『게오르그 짐멜 전집』에서는 863쪽)에 달하는 저작으로서 그의 지적 유산 가운데 가장 방대하다. 이 책은 일명 “큰 사회학”으로 불리면서 일명 “작은 사회학”으로 불리는『사회학의 근본문제: 개인과 사회』(1917)와 대비되는데, 그 이유는 후자가 98쪽(『게오르그 짐멜 전집』에서는 91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4) 이 보론은 Georg Simmel, 앞의 책(1992a), 42-61쪽의 총 20쪽으로 되어 있다.
25) 짐멜은 다음의 저작에서 역사세계와 관련해 “어떻게 역사가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던지고 있다. Georg Simmel, Die Probleme der Geschichtsphilosophie(Zweite Fassung 1905/1907), in: Georg Simmel Gesamtausgabe 9,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7, 227-419쪽. 이렇게 보면 짐멜은 인식론적으로 칸트주의자임이 드러난다.
26) Georg Simmel, 앞의 책(1992a), 44쪽.
27) 같은 곳.
28) 같은 책, 45쪽.
29) Georg Simmel, Grundfragen der Soziologie. Individuum und Gesellschaft(1917), in: Georg Simmel Gesamtausgabe 16,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7, 59-149쪽, 여기서는 12쪽.
30) Georg Simmel, 앞의 책(1992a), 41쪽.
31)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할 것. 김덕영, 앞의 책(2007), 387쪽 이하.
32) Georg Simmel, “Das Problem der Sociologie”(1894), in: Georg Simmel Gesamtausgabe 5. Aufsatze und Abhandlungen 1894-1900, Frankfurt am Main: Suhrkamp 1992b 52-62쪽, 여기서는 59-60쪽.
33) 같은 글, 60쪽.
34) 같은 곳.

* 이 저술은 '도서출판 길'에서 출판될 예정입니다. 아포리아 북리뷰는 '도서출판 길'로부터 허락을 받아 인터넷과 카카오페이지에 게재합니다. ([김덕영 칼럼]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4, 2013년 12월,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  


amisdame 13-12-05 06:58
 
* 비밀글 입니다.
아포리아 13-12-05 13:39
 
* 비밀글 입니다.
amisdame 14-04-24 14:38
 
안녕하세요? 답변을 주신 건 감사한데, 비밀글로 적어두셔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제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다셔야 보이는 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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