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중산(孫中山)에 대한 추앙으로 인해,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정신은 현대 중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알다시피 이 정신은 공용물로서의 천하 관념, 즉 천하가 천하인들의 천하라는 관념을 드러낸다. 보다 깊은 층위에서 이 같은 정신은 실질적으로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평해진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 (《예기(禮記)•예운(禮運)》)는 정치적 노선을 설명해준다. 이러한 정치 노선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선양(禪讓)의 제도로써, 천자의 자리를 자손이 아닌 현인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일정 정도 정치 대도로서 공천하(公天下)의 정신과 황권 역사로서 가천하(家天下)의 현실은 일종의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우쟈샹(吴稼祥)의 《공천하: 다원적 통치와 이중 주체 법권(公天下:多中心治理与双主体法权)》은 공천하의 대의를 중심으로 하여, 중국 정치의 역사적 변천을 결부시키고, 자신의 독창적 사유에 근거해 중국 정치 체제의 다섯 가지 모델을 분석한다. 동시에 어떻게 해야 안정적이면서도 활력을 잃지 않을 것인가 하는 난제에 대해 자신의 답안을 제시한다.(1)
이 책은 표준적인 학술 저서가 아니며, 동시에 대중적인 베스트셀러도 아니다. 책은 중화 정치 사천 년을 가로지르며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낸다. 그 속에는 현대의 선형 그래프뿐만 아니라 주역의 팔괘 도식 또한 포함되어 있으며, 때로는 견강부회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일련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착오 또한 적지 않아서(예를 들어 유영(柳永)을 남송 사람으로, 원호문(元好問)을 원대 사람으로 본 것), 상당한 비판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고적의 고증에 있어서도 대부분 데이터베이스 검색에 의존하여, 주마간산식이라는 느낌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옥의 티가 옥의 빛을 가리지는 않아서, 문제의식의 예민함과 종합적인 분석의 독특성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공천하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천하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개념의 설명에서 자오팅양(赵汀阳)이 지리와 심리, 정치 세 가지 차원의 천하 개념에 대해 충분히 해명했던 것에 비해, 우쟈샹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천하 개념에 대한 우쟈샹의 논의 또한 대체로 지리와 정치, 그리고 문명 세 가지 차원을 포괄한다. 지리의 차원에서 천하는 바로 온 세상이며, “밝은 하늘 아래”, 혹은 “하늘 아래의 모든 지역”이다. 그는 독일 철학의 “생활세계”를 통해 천하의 의미를 유비한다.(2) 정치 차원에서 말하자면, 천하는 “일종의 극대화된 다양한 지리요소, 민족구성, 문화유형, 정치체제의 이질적 집합체”이고, “불확정적인 경계를 지닌 대규모, 다민족 정치 공동체”이며, “세계적 제국”(3)이다. 문명 차원에서 볼 때, 천하는 “국가-문명 통일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명은 천하의 ‘영혼’이고, 국가는 천하의 ‘신체’이다.” (4) 가장 마지막의 이 차원에서 우쟈샹은 자오팅양에 비해 천하가 마땅히 문명의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다 더 의식하고 있다. 일본의 학자 와타나베 신이치로(渡辺信一郎)의 말을 빌리자면, 전국 말기와 서한 초기의 천하는 기본적으로 “해와 달이 눈부시게 비치는 문명의 영역”을 가리키며, 오랑캐에 상응하는 문명권을 가리킨다.(5) 아쉬운 점은 저자가 문명으로서의 천하라는 이 의의에 대해 분석을 전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바로 이 층위에서 대비를 통해 중국의 천하체계와 서방의 민족국가를 간단하게 구별한다. 이 점에서 우쟈샹과 자오팅양은 유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은 결코 논술 전체의 주지가 아니다. 그는 자오팅양처럼 중국의 천하 체계가 현대 서구의 민족 국가 체계보다 우월하며, 마땅히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중서 정치체제의 대비에서, 우쟈샹은 기껏해야 동-서방 문명의 원초적 형태를 대표하는 중국의 천하 제도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제도를 간단히 대조할 따름이다.(6) 더구나 이러한 대조 또한 그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다. 자오팅양과 달리, 우쟈샹의 논의에서 중점은 중국 정치 체제 자체의 역사와 출로 문제에 있지, 천하 제도를 세계 질서의 준칙으로 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공천하란 무엇인가? 공천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체제이다. 이른바 천하위공은, “군왕의 자리를 선양[君位禪讓]”하는 정치적 대도(大道)를 가리킨다. 이러한 체제는 “최선의 정치체제”이고,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사회가 바로 “대동(大同)”(7) 사회이다. 우쟈샹은 서로 다른 단어로 공천하를 묘사한다. 그것은 “최선의 이상적 정치(大道政治)”이며, “선대의 제왕들로부터 이어져 온 화하민족 최대의 법” 혹은 “불문 헌법”이고, “화하민족 최고의 정치적 이상”, 심지어는 “화하민족의 가장 유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하나의 꿈”(8)이다. 지금의 정치적 용어로 바꿔 말하면 공천하는 가장 아름다운 중국의 꿈이다. 어떤 조어를 활용하든 간에, 공천하는 중국판의 이상적인 정치 형태라 할 수 있다.
비록 중국 정치의 역사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모델이 있었지만, 공천하의 이상적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에서 주로 나타난 것은 가천하(家天下)이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 사이의 대비는 대동(大同)과 소강(小康) 사이의 구분이기도 하다.(9) 중국의 정치적 이상인 공천하가 어떻게 가천하의 서로 다른 모델로 변화하였는지, 이것이 우쟈샹의 전체 저술 가운데 가장 정치하고 독창적인 특색을 지닌 분석이다. 세습제의 가천하가 공천하의 선양제를 대체한 것은, 중국 역사에서 우(禹)가 아들 계(啓)에게 제위를 물려준 것에서 완성되었다. 그는 “대동”이 “소강”으로 전락한 이 같은 변화를 중국판 “실낙원”이라 일컫는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첫 번째 가천하 모델은 우(禹)가 토대를 건립한 “평천하(平天下)”모델이다. “평천하”는 “평치(平治)”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평면(平面)”을 의미한다. 우쟈샹은 우(禹)의 “평천하” 모델이 “평면적 중앙 집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권력 집중을 “바퀴살형 권력 집중”이라고 묘사하며, 대외적으로는 “물결식의”, “문명 전파에 의지하여 매력을 유지하고,” 내부적으로는 강제적인 “국가 권력에 기대어 안정을 유지” (10)한다. 그는 이러한 평천하 모델을 가리켜 왕도 A판 모델이라고도 하며, 그 특징을 “민본+단중심+대일통+무계층”으로 개괄한다. 이것의 장점은 “일반적으로 강압적인 정치가 아니고, 따라서 인명을 초개처럼 여기는 폭력 정치가 아니”라는 데 있으며, 그 주된 병증은 “재화의 과도한 집중으로 야기되는 부패이지, 피비린내가 아니다.”(11)
두 번째 가천하 모델은 서주의 “겸천하(兼天下)” 모델이다. 우쟈샹은 이 같은 모델을 “약한 중앙의 이중적 다중심 통치[弱中央双层多中心治理]”로 묘사한다. 중앙정부의 실제 권력이 지방보다 약한 것, 이것이 약한 중앙이다.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은 이중의 권력 구조를 구성한다. 그리고 지방 기구가 각자의 봉토를 나누어 통치하는 것, 이것이 다중심이다.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치는 주로 “혈연으로 맺어진 종법제도”에 의지하고, 그 핵심은 세습(大一統)과 적장자 (大居正) 계승제도이다. 그는 이러한 약한 중앙의 이중적 다중심 통치 모델을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의 구조에 비유한다. 이 모델은 저자가 가장 예찬하는 역사적 모델이기도 하다. 그는 경우에 따라 서주의 겸천하 모델을 공천하의 정치적 대도(대도 A판)가 구체화된 대도 B판이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공천하와 평천하의 정신을 겸비한 “대도(大道)-왕도(王道) B판”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모델은 전한(前漢), 초당(初唐), 청초(淸初)에 국부적으로 부활하기도 하였으나, 모두 성과를 이루지 못했으며, 주로 서주에서 구현되었다. 그 특징은 “이중 수도+다중심+대거정(大居正)+비권력집중”으로 개괄할 수 있다. 주요한 장점은 “이중의 다중심 통치와 천하 주권의 분배를 통해, 대도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 결점은 저밀도의 정치 권력으로, 권력 구조가 “분지” 상태를 보이거나 혹은 “뒤집힌 금자탑”(12)의 구조를 띠게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가천하 모델은 진대의 “패천하(覇天下)” 모델이다. 이러한 통치 모델 속에서 군현제는 봉건제를 대체하고, 입체적인 중앙집권이 지방분권을 대신하며, 패권이 혈연의 권위를 대신한다. 우쟈샹에 따르면 이러한 모델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법가 사상으로, 핵심 개념은 “법(法), 권(權), 술(術), 세(勢)”이다. 그 특징은 권력의 격차가 크고, 규모 확장의 욕망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유지하는 방법은 “대내적 대외적으로 무제한적인 폭력 사용”이다. 상당히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러한 모델의 실현 조건으로 “사회의 원자화”를 지적한다는 점이다. 비록 저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진대(秦代)의 제도에 대해 극도로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습제의 폐지에서 긍정적인 의의를 보고 있다. 세습제의 폐지는 “황제 이하 개개인의 평등한 직권 향유를 실현하는 데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것은 황위의 계승 제도이다. 그러므로 우쟈샹은 진대 제도에서 패천하 모델의 특징을 “무권위+단중심+군현제+대일통+대거정” (13)으로 개괄한다.
네 번째 가천하 모델은 한대의 “분천하(分天下)” 모델이다. “이른바 ‘분천하’라는 것은 ‘천하’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상정하는 것으로, 그 주식은 약간의 주주들에게 배당되며, 중앙의 왕조는 단지 상대적인 지주회사일 뿐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모델은 사실상 봉건제와 군현제의 혼합체이며, 이로 인해 “주대의 제도와 유사한 외부 분권, 그리고 사실상 진대 제도에 해당하는 내부 권력 집중”의 특징을 지닌다. 우쟈샹은 이러한 모델이 한(漢) 고조(高祖) 유방(劉邦)에 의해 창제되었으며, “한초(漢初), 당초(唐初)와 청초(淸初)에 실행”되었다고 본다. 그 전체적인 특징은 “다중심 통치”, “군현-봉건 혼합”, 그리고 “고압(高壓-내부)과 저압(低壓-외부)의 혼압”(14)이다.
다섯 번째 가천하 모델은 송(宋), 원(元), 명(明)대를 대표하는 “탄천하(呑天下)” 혹은 “용천하(龍天下)” 모델이다. 이처럼 강압적이면서 안정적인 체제는 “중국 사천 년 역사에 걸쳐 실행된 주류 정치체제”이다. 주된 특징은 단중심의 중앙집권, 황제 독존의 군주 전제, 안정적 권위 체계와 강압적 군현제이다. 저자는 이러한 통치 모델이 한 고조 유방과 한무제 유철(劉徹)이 창제한 것이며, “한무제 이후 양한(兩漢), 수(隋), 중당(中唐), 송(宋), 원(元), 명(明) 및 중•만청(中•晩淸)의 여러 왕조에서 시행”(15)되었던 것이라 여긴다.
이상의 다섯 가지 가천하 통치 모델 가운데, 어떤 모델이 공천하의 정신에 가장 가까우며, 어떤 모델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가? 저자의 판단 근거는 “가(家)”의 크고 작음이다. “가”가 클수록, 천하는 일가(一家)의 천하가 아닌 “모두[大家]”의 천하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준에 의거하여 저자가 매긴 다섯 가지 정치 체제의 우열은 “겸천하”, “분천하”, “평천하”, “패천하”와 “용천하”(16)의 순서이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장기적인 측면에서 화하문명의 융합과 분화를 분석한다. 그는 우(禹)의 “평천하”가 “화하문명의 첫 번째 융합”을 촉발했고, 서주의 “겸천하”가 “첫 번째 분화”를 촉발했다고 본다. 분화의 긍정적 결과가 서주 시기에 “중화 문명의 정신적 정점”을 만들어냈다. 진대의 “패천하”는 두 번째 융합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때 융합의 결과로 중화민족은 진대에 “무력의 정점”을 이루었다. 융합과 분화의 배합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이른 결과가 바로 당대(唐代) 정관(貞觀)시기 “종합적 국력의 정점”이다. 이후로 “중국은 줄곧 내리막길로 미끄러져 내려갔으며”, 화하문명의 두 번째 분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17)
과연 어떻게 해야 중화문명은 두 번째 분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분명 저자가 제기한 문제이고, 동시에 자신의 답안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랐던 문제이다. 분명히 저자는 서주 겸천하 모델을 보다 더 예찬한다. 이 모델에서 중앙과 지방은 이중 주체를 구성하며, 지방 사이에서는 다중의 중심 형태가 나타난다. 중국의 미래 문제에 대한 우쟈샹의 대답은 분명 서주의 겸천하 모델에 대한 찬사 위에서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동시에 “복합 공화제”와 “연방제 민주”를 끌어들여 대국 정치에서 “활력”과 “안정”의 균형을 맞추는 유효한 방법으로 삼는다. 서주의 겸천하 모델과 연방제 민주의 복합 공화제를 완전히 동일시할 수 있을까? 중국의 공천하 이념과 현대적인 의미에서 다중심 통치의 이중 주체 법권 제도는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다섯 가지 통치 모델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연결 지어 볼 때, 중국의 미래 방향에 대한 저자의 답안은 확실히 매우 성급하며, 상당 부분 용두사미의 인상을 주고, 한발 더 깊이 들어간 분석과 상세한 논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볼 때 저자가 제기한 근본적인 문제, 즉 가천하 정치가 어떻게 공천하 이상에 무한히 접근할 것인지는 여전히 하나의 꿈에 불과하며, 답안을 기다리는 문제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6, 2014년 6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