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4-03-08 10:47
중국, 중국인 (7): 유가 입헌정치와 군자의 나라
 글쓴이 :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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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 (7): 유가 입헌정치와 군자의 나라

1.
유가는 중국 전통 문명의 핵심이다. 하지만 현대 중국에서 유가 전통은 줄곧 주변부에 위치해 있었다. 신중국의 혁명 의식과 비판 정신으로 인하여, 유가 전통은 나라 바깥을 떠도는 망령이 되거나, 학술의 상아탑 아래로 숨었던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공화국의 개혁개방과 현대화 과정에 대한 반성이 일어남에 따라 유가사상은 비로소 새로운 굴기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굴기는 여러 가지 층위에서 나타난다. 다른 전통 사상과 마찬가지로 유가 사상 또한 마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와 같은 역할을 하며, 갈 곳을 잃은 현대인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륙의 신유가가 유가 전통의 내성외왕(內聖外王)에 대해 자각적인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륙의 신유가는 현실의 변화에 발맞추어 유가적 정치 전통으로 회귀하는 서로 다른 사유들을 제기하였다.

2.
치우펑(秋风, 본명 姚中秋)의 《유가식 현대질서[儒家式现代秩序]》는 유가적 정치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유가 전통으로의 자각적 회귀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1) 《유가식 현대질서》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상권은 ‘군자(君子)’이념을 주제로 하며, 하권은 ‘제도(制度)’탐색을 주제로 삼는다. 상권에 해당하는 여섯 편의 논문은 신뢰의 재건, 자선관념, 국민정신, 대국의 덕성과 군자양성의 측면에서 어떻게 유가사상을 부흥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탐구하며, 하권의 논문 여섯 편은 법률정신, 통치질서, 입헌 민주주의, 인민의 유학과 중국 사회에서 남방과 북방간 차이 등의 측면에서 어떻게 유가식 현대 질서를 건설할 것인지의 문제를 탐색한다. 유가로 회귀에 대한 치우펑의 사유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특징은 헌정주의의 각도에서 현대 중국과 세계 질서에서 유가 전통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논술한다는 것이다. 이는 저자의 또 다른 책의 제목에서도 매우 명확하게 드러난다.(2)
 
유가 전통으로 돌아가기에 앞서서 먼저 어째서 돌아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저자의 현대성, 특히 중국 현대 질서에 대한 분석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신중국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관건이 되었던 마르크스주의와 그 이데올로기적 대립항인 자유주의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자유주의 진영 출신의 치우펑은 유학의 부흥으로 돌아선 후에, 위의 두 가지 사상 형태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원래 지니고 있던 사상적 입장을 분명히 넘어섰다. 그는 정치사상사가 포겔린(Eric Voegelin)의 명제를 인용하여, 겉보기에 상호 대립하는 듯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사실 “현대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8쪽). 그의 분석에서 양자는 현대성의 두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첫째로 시작점에 있어서, “철학과 윤리학의 출발점은 홉스의 정글상태”이며, 이 때문에 양자는 모두 “신체적 욕망과 계산적 이성의 진실성만을 인정하고, 인간 윤리의 정언성은 박리한다”(7쪽). 둘째로 목표 측면에서 볼 때, 비록 방식상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양자는 모두 개별적인 인간이 최종적 해방을 얻는 아름다운 신세계를 약속한다. “인간은 현존하는 질서를 전면적으로 파괴함으로써, 현세에 완전히 새로운 영구적인 행복의 천당을 건립할 수 있다”(6쪽). 치우펑은 현재의 중국이 양대 이데올로기의 충격을 거치면서, 문명의 폐허를 직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영혼의 폐허, 사회의 폐허, 문화의 사막화 및 공동체 질서의 해체 경향”(8쪽) 등을 지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유가 전통으로 회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것이 회귀인 이유는 여기서 말하는 유가가 바로 중국의 유가이기 때문이며, 이 점은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저자는 중국이, 유가의 중국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고자 한다. 전통 중국이 유가의 중국일 뿐 아니라 현대 중국 또한 유가의 중국이라는 것,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전통 중국이 유가의 중국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우며, 유가는 어디까지나 중국 문명의 핵심적인 사상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역사 속의 중국은 바로 유가의 중국이며, 유가는 중국인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구성하였고, 사람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제도들을 만들어냈다”(13쪽). 그러나 저자의 주안점은 “유가식 현대질서”이며, “유가와 중국의 현대 질서가 일종의 공생 관계이고,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온전할 수 없으며,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유가는 중국의 영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여 “만약 유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중국에는 자아가 없고, 미래 또한 없을 것이며, 이는 중국에 영혼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220쪽). 중국에 유가의 영혼이 적절히 자리 잡아야만 “유가가 삶과 문명의 축으로써 그 역할을 발휘할 수 있으며”, 중국이 “명실상부한 중국이 되고”, “자유 헌정의 중국”을 건립할 수 있다(23쪽). 이러한 논변을 통해 볼 때,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가 아니라 유가전통으로의 회귀를 통해서만 자유 헌정의 현대중국을 건립할 수 있음을 표명한다.

3.
분명 치우펑이 말하는 유가 전통으로의 회귀는 바로 그가 논술한 “유가헌정주의” 혹은 “유가헌정민주주의”로의 회귀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저자는 사실상 헌정주의를 토대로 유가 전통을 새롭게 서술하고, 아울러 이에 근거하여 유가 전통으로의 회귀를 제창한다. 그는 “정치적 경향에 있어서 유가는 헌정주의적”이라고 단언한다(220쪽). 그리고 나아가 헌정주의의 전통이 유가 사상 고금의 전개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구체적으로 유가는 세 가지 헌정주의 제도를 구성하였다. 하나는 주(周) 대에 확립되고 공자가 설명한 예치(禮治)이다. 예치는 두 가지 주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첫째로 예가 인간 활동의 일체를 구속한다는 것이고, 둘째로 규범이 한 사람의 권위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구속한다는 점이다(225쪽). 두 번째는 한무제(漢武帝) 때에 확립되어 만청시기에 이르는 집단통치체제이다. 이른바 집단통치체제는 유가의 도덕적 이상과 황권 통치가 평형을 이루는 체제이다. 저자는 이러한 집단통치체제에서 유가 사대부가 체제의 영혼이자 이성적 역량이라는 점을 강조한다(226~228쪽). 셋째는 만청의 입헌과 신해혁명을 통해 확립된 현대 중국의 헌정체제이다. 다른 많은 논자들과 달리 저자는 황권전제와 유가전통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그는 유가전통을 황권체제의 호위병 혹은 부속품으로 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황권에 대한 균형추, 나아가서는 구속으로 해석한다. 치우펑은 이러한 의미에서 유가를 “고전 헌정주의”로 이해하며, 이는 “유가에서 군왕 및 관원의 지고무상한 권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와 반대로 이러한 권력은 반드시 모종의 외재적 제약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148쪽). 이러한 외재적 구속은 (공자가 말한) 예(禮), 혹은 (동중서가 말한) 천(天)이었으며, 유생들은 이러한 외재적 구속 체계의 실질적 해설자이다.

유가 헌정주의 전통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면, 유생 공동체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사안이 된다. 유생 공동체의 근본은 “화성군자(化成君子)”(3) 이며, 저자도 이러한 근본을 “오천 년 중국의 근본적인 문화 이상”으로 간주한다(117쪽). 저자는 “역사적으로 중국식 치세의 기본적인 형태는 군자에 의한 다스림”이라고 여긴다(119쪽). 중국이 미래에 천하의 질서를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이러한 군자 집단을 형성하여, 일련의 군자식 천하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에 달려있다(123쪽). 중국이 이미 지역 내지는 세계 정치에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덕성(德性)이 바로 전 세계 정치를 이끄는 근본이다(100쪽). 그러므로 저자는 “화하(華夏)의 고전으로 돌아가서, 도통(道統)을 계승하고, 유가의 학술을 발양하며, 군자를 양성하고, 군자의 나라를 창건”해야만, “천하의 질서를 재건할 수 있다”고 본다(116쪽). 뒤집어 말하면 “사군자(士君子)가 있는 한, 중화(中華)는 계속될 것이고, 천하는 반드시 질서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119~120쪽)

4.
저자는 헌정주의에 근거하여 군자의 도와 통치 권력 사이의 긴장을 더욱 강조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유가전통 가운데 군자와 소인 사이의 긴장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군자와 소인 사이의 구별이 빠진 상태에서, 저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현대 중국의 인민주권론을 결합하여 “인민유학(人民儒學)”의 개념을 제기한다. 근본적인 생각은 “군권(君權)”과 “민본(民本)”의 대립으로 눈을 돌려, “인민을 근본으로 삼는” 관점에서 권력에 대한 유학의 균형과 구속 역할을 아래로부터 위로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누락되었기에 저자는 인민유학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대답하지 않고 있다. 인민 개개인으로 하여금 모두 사군자가 되도록 하는 것인가?(4)  만약 그렇다면 치우펑이 주장하는 유가로의 회귀는 슝스리(熊十力)가 말했던 자유와 평등의 대동세계 구상과 동일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사군자의 자질을 갖춘다”고 하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치우펑은 일찍이 슝스리의 사유를 가리켜 무정부주의적인 인상을 준다고 하였다.


秋风:《儒家式现代秩序》,桂林:广西师范大学出版社,2013年。285页。

<주>
1) 秋风:《儒家式现代秩序》,桂林:广西师范大学出版社,2013年。이후의 내용은 이 책을 인용한 내용이며, 모두 내주로 표시하였다。
2) 姚中秋:《儒家宪政主义传统》,北京:中国政法大学出版社,2013年。
3) (역자 주) ‘화성(化成)’과 관련하여 《易 • 恒》에서 “성인의 도가 오래되니 천하의 교화가 이루어진다[聖人久於其道而天下化成]”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교화를 통해 모든 백성이 군자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4) 刘小枫:《共和与经纶:熊十力〈论六经〉〈正韩〉辨正》,北京:三联书店,2012年,第154页 참고。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3, 2014년 3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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