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국의 전(前) 국무장관 키신저 박사의 신간 『중국 이야기』가 펭귄 북스(Penguin Books)에서 출판되었다.(1) 2012년에는 중국어판이 재빠르게 북경에서 출판되었다. 책은 모두 18장(章)으로 구성되며, 상당히 중요한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 자체에는 분명 어느 정도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 내용 측면에서 볼 때, 실상 책의 주제는 넓은 의미에서의 중국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 속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위와 공화국 외교 정책에 대한, 중미 관계 수립과 발전의 산 증인이었던 베테랑 외교관의 이해이다.
이 거대한 제목의 저작에서, 키신저 박사는 도입부 세 개의 장(章)에 걸쳐 중국의 문명 전통과 독특한 세계 질서 관념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것이 서구에서 유래한 새로운 세계 질서 관념의 엄중한 도전에 대해 어떻게 맞섰는가를 논한다. 제 4장을 기점으로 저자는 논의의 방향을 마오쩌둥(毛泽东)으로 돌린다. 바로 이 점에서 책의 주된 관심사가 사실상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제 9장부터는 키신저 박사 본인이 그려내는 역사의 화면 속으로 들어가며, 중미 수교와 중미 관계의 여러 측면에 대한 한 개인의 세부적 묘사와 관찰, 사유를 제시한다. 책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저자 자신과 중화인민공화국 지도자—제1세대 마오쩌둥(毛泽东)과 쩌우언라이(周恩来), 제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邓小平), 그리고 제3세대 지도자 장쩌민(江泽民)—사이에서 벌어졌던 외교전과 대화의 상세한 내용들이다.
중미 수교의 전후 맥락이나 파란만장했던 중미 관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있어, 키신저 박사의 현하웅변(懸河雄辯)이 수 많은 희소한 1차 자료를 피력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미 관계 발전의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키신저 박사는 중미 관계 및 그것이 세계 질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 1971년 4월 미국 탁구 선수단의 방중은 중국과 미국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대문을 열어젖힌 사건이었다. 키신저 박사의 서술에서 핑퐁외교의 역할은 크게 퇴색되었고, 직전에 있었던 각종 미중 외교 회담과 제삼국 고위층을 통한 메시지 전달이 중미 고위층 외교의 진정한 기초를 닦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책의 발표에 많은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왔으며, 자연스레 많은 비판과 의혹 또한 직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키신저가 인권문제의 중요성을 희석시켰다고 보았고, 다른 누군가는 대만 해협 위기에 관한 서술의 세부적인 부분에서 착오가 있다(미국 군함은 대만 해협에 진입하지 않았으며, 해협의 다른 한 편에 머물러 있었다고)는 것을 지적했다. 또 어떤 이는 키신저의 서술이 “당시의 상황에서 왜 미국은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해야 할 필요성과 시급성이 있었는가?”라는 문제를 완전히 풀어내지 못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심지어 키신저가 전체 책의 결미에 남긴 후기에서 중미 관계에 대해 밝힌 낙관적인 태도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후기에서 저자는 목하의 중미 관계와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 부상하던 독일과 영국 관계를 비교하면서, 중미 관계가 “제로섬 게임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라는 것을 강조하고, 동시에 “공진화”를 주지로 하여 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이익 균형과 평화를 위한 환태평양 공동체를 제시한다.
책이 출간된 이후로 긍정적 분석과 부정적 비판을 막론하고 모두 키신저 박사의 독자적인 관점의 논술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 예외론에 관한 그의 상당히 재미있는 설명이다. 본인은 이러한 설명이 주목하고 고찰해 볼만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보이는 키신저 박사의 논술에 따르면 중국의 예외주의는 우선 “자랑스레 만방을 거느리는 제국의 구현“이며, “중국인들은 중국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문명이라는 것을 깊게 믿고, 오랑캐들에게 중국으로의 ‘동화(同化)’를 요청하기” 때문이다(72쪽). 이는 또한 전통적으로 중국이 대륙의 제국으로서 지녔던 정체성을 체현한 것이다. 키신저 박사는 특히 외교적인 관점에서 중국 예외론의 특징을 분석하는데, 대략 아래의 몇 가지로 개괄할 수 있다. 첫째로 중국은 특수하고도 우월한 문명을 갖추었다는 것을 자인하고 외국에 대해 예(礼)로써 대하면서도, 중국의 문명과 가치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둘째로 중국이 자신들의 문명을 해외로 수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만, 외국이 그것을 배우러 오는 것은 환영했다(13쪽). 셋째로 농업이 고도로 발달한 자급자족 제국으로서, 중국은 대외적인 영토 확장을 추구하지 않았다(17쪽). 넷째로 중국은 결코 타국의 내정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으며, 조공을 바치는 속국은 독립에 가까운 자주적 지위를 누렸다(73쪽). 중국 예외론에 대해 논할 때, 키신저 박사는 그것을 현 시대에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미국 예외론과 자주 비교하면서, 양자의 취지가 완전히 상반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세계 정치와 천하 질서에 대한 중국 예외론의 인식은 분명히 고대 문명의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키신저 박사는 중국의 지도자, 특히 마오쩌둥과 쩌우언라이에 대한 논의에서도 때때로 이 두 지도자의 외교 수완과 중국 예외론의 특색을 연결 짓는다. 이것은 중국 예외론이 전통 중국에서만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현대 중국 지도자의 세계 질서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외교 활동에서도 명확하게 표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키신저 박사는 중국 예외론을 논의하고 분석하면서, 동시에 주되게는 그것을 미국 예외론과 비교하거나, 때로는 일본 예외론과 서로 비교한다(73쪽). 그러나 그는 중국 예외론과 미국 예외론의 경쟁 문제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으며, 다만 양자가 평화적으로 공생하고 공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비록 중국 예외론은 주로 중국의 전통 문명에 그 연원을 두고 있지만, 키신저 박사의 서술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현대 중국의 지도자에게서 나타나는 중국 예외론의 입장이 외교 관계에서 때때로 상당한 실효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볼 때, 중국 예외론은 완전히 사멸한 전통이 아니라, 현대 중국의 정치 활동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인 영향과 역할이 있다. 서방에서 기원하여 현재 성행하는 현대 국제 체제에서 중국 예외론의 입장은 대체 여전히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서방이건 중국이건 이 모든 것은 아마도 진지하게 고찰해 볼만한 문제일 것이다.
(1) (역자 주) 이하 필자의 주석은 중국어판을 기준으로 한다. 번역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영어 원서와 한국어판의 내용을 역주로 덧붙였으며,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중국어판] 亨利•基辛格 (Kissinger, H. A.) 著, 胡利平 等 译, 『论中国』(On China), (北京: 中信出版社, 2012) / ② [한국어판] 헨리 키신저 저, 권기대 역, 『중국이야기』(서울: 민음사, 2012) / ③ [영어 원서] Henry A. Kissinger, On China, (London: Allen Lane, 2011)
(2) 이에 해당하는 중국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至于中国人知之甚少的远方夷人,如欧洲人,中国虽以礼相对,但始终保持着一种居高临下的疏远。他们几乎没有兴趣让外夷皈依中国文化。” 영어 원서의 본문(p. 17, “As for the remote barbarians such as Europeans, about whom they knew little, the Chinese maintained a friendly, if condescending, aloofness. They had little interest in converting them to Chinese ways. “)과, 한국어판(p. 38, “유럽인들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야만인으로 말하자면, 중국은 그들을 거의 알지 못했기에 (좀 거들먹거리면서도) 우호적인 초연함을 유지했다.”)의 번역을 보면 각각에 미묘하게 다른 어감으로 읽힐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따로 본문을 옮겨둔다.
*주석에 해당하는 판본 별 페이지는 아래와 같다.
출판사 주석 2 주석 3, 4 주석5 주석6
中信出版社, 2012 p. 71. p. 13. p. 17. p. 73.
민음사, 2012 p. 108. p. 38~39. p. 43. p. 111~112
Allen Lane, 2012 p. 78. p. 17. p. 22. p. 80.
①[중국어] 亨利•基辛格 (Kissinger, H. A.) 著, 胡利平 等 译, 『论中国』(On China), (北京: 中信出版社, 2012)
②[한국어] 헨리 키신저 저, 권기대 역, 『중국이야기』(서울: 민음사, 2012)
③[영어] Henry A. Kissinger, On China, (London: Allen Lane, 2011)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2, 2013년 10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