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규정적이면서 동시에 불변하는 단 하나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오규원의 「양철지붕과 봄비」는 굉장히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이 시를 통해 드러나는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는 세계 내에서 벌어진 특정한 현상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부분적인 대상들, 그러니까 ‘못’, ‘새똥’, ‘봄비’ 등은 그 어떠한 의미도 직접 지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못’의 경우 ‘반쯤 빠진’ 상태이거나 ‘반쯤 빠질 작정을 하고 있는’ 상태 ‘사이’에 놓여 있고, ‘새똥’의 경우 ‘퍼질러진’ 상태이거나 ‘뭉개진’ 상태 ‘사이’에 놓여 있으며, ‘봄비’는 ‘또닥 또닥 소리를 내고 있’거나 ‘또닥 또닥 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상태 ‘사이’에 놓여 있다. 이들 대상들이 각각 놓여 있는 상태를 지시하는 ‘사이’는 그들 각각이 변화하고 운동하는 과정의 어느 순간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변화와 운동의 양상을 통해 차이가 드러나는 각각의 존재 상태 간 질적 변화의 양상을 시간 및 공간적 거리로 바꾸어 보여주고 있다. 이들 대상들에 대해 시적 화자는 그 어떠한 판단이나 해석도 내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대상들에 대해 그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들 대상들은 시적 화자의 의식 밖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상태 그대로의 모습으로 묘사될 뿐이다. 따라서 이들 대상들은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 상태로 나타나며, 특정한 의미로 규정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게서 다양한 면모가 생성된다. 즉 이들 대상들은 의미를 잃은 대신 인간 의식으로부터 벗어난 존재 그 자체를 얻게 된 것이다. 

박노해는 민중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 민중시는 사회에서 소외된 피지배계층, 대개 노동자와 농민의 억압된 삶의 현실을 고발하고 더 나아가 이를 비판, 계도하는 목적을 뚜렷이 보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민중시는 자칫 구호만이 난무하는 선동적인 의미 전달 차원에 머물 위험에 노출되곤 한다.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민중시 가운데 첫손에 꼽을 만한 것으로 바로 위의 시 「봄」을 고르는 것에 대해 결코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이유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이 시가 민중시 특유의 전형적인 형식을 잘 갖추고 있고 목적하고 있는 바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시의 일반적인 형식, 다시 말해 이미지를 통한 정서 표출을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민중시는 부의 불균형과 생산수단의 독점 등으로 인해 생겨난 부조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된 채 피폐화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들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대립과 갈등 양상을 고발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갈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민중시가 담고 있는 이러한 내용이 시 형식에 의해 창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생겨난다. 민중시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지점 또한 바로 이것이다. 문학적인 차원에서 민중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면 그 이유는 민중시가 추구하는 내용적 함의를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내용이 왜 하필이면 시의 형식으로 그려지고 있는가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중시의 전형화된 내용 전개와 이를 드러내는 데에 취하고 있는 규정적이면서도 획일화된 구성 방식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민중시임에도 불구하고 박노해의 시편들은 앞서 소개한 민중시가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보이고 있지 않다.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대한 해설에서 채광석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여기 실린 그의 시들은 노동현실의 구체적 체험에 깊이 뿌리박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절망과 슬픔, 원한과 분노의 정서를 놀랍도록 생생히 담아 낼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인간다운 삶을 향한 주체적 일어섬 속으로 녹아 들어가 일궈 내는 민중해방의 정서를 탁월하게 보여 주고 있다.” 채광석의 논의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박노해 시편들이 ‘노동현실의 구체적 체험’, ‘절망과 슬픔, 원한과 분노의 정서’,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향한 주체적 일어섬’이라는 주제를 잘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러한 정서를 ‘놀랍도록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학 장르의 구분 속에서 살펴볼 때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드는 요소는 단연 정서 표출의 측면이다. 시가 담고 있는 내용적 측면은 그 다음 문제이다. 따라서 민중시로 분류되지만 그것이 막연한 선동 구호가 아니라 시여야 한다면, 이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정서 표출을 얼마나 어떻게 잘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채광석은 이를 ‘놀랍도록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는 한 줄의 표현으로 짧지만 강하게 요약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서술한 바 있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이야기와 이에 대한 베르그손의 논의를 참고할 때, 시가 특정한 정서를 ‘놀랍도록 생생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미지의 전개 과정에서 발현되는 지속의 특성, 즉 운동과 변화의 측면이 잘 드러나야 한다. 이를 다시 박노해의 시 「봄」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확인해보자.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숙이’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어떻게 작용/반작용하며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시는 크게 네 가지의 대립 및 갈등 양상이 특정 행위나 동작상이 내재된 상황 묘사 등을 통해 특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1연에서는 ‘허기진 배를 쓰는 행위’(A)와 ‘따사롭게 봄볕이 비추는 상황’(B)이, 2연에서는 ‘시려운 시멘트벽에 어깨를 기대는 행위’(C)와 ‘아련히 떠오르는(“흔들린다”) 추억의 상황’(D)이, 3연에서는 ‘못 먹고 부친 돈으로 빚은 얼마나 갚았을지에 대한 의문의 상황’(E)과 ‘가족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상황’(F)이, 4연에서는 ‘고운 새 옷도 입고 싶고 맛난 것도 배불리 먹고 싶은 개인적 욕구를 이룰 수 없는 상황’(G)과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행위’(H)가 그것에 해당한다. 여기서 ①A-C-E-G와 ②B-D-F-H 등은 각기 관계하며 서로 작용/반작용할 때 의미 생성에 필요한 일련의 계열화가 이루어지며, 그 결과 이들의 관계망에는 각각 ①에서는 ‘숙이’가 처해 있는 부정적인 현실 세계가 놓이며, ②에서는 그러한 부정적인 현실에 대처하는 그의 태도 및 이를 가능케 하는 긍정적인 요인 등이 놓인다. 가령 A에서의 ‘허기진 배’가 C, E, G 등과 계열화를 이룰 때, ‘허기진 배’는 억압된 채 피폐화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숙이’)의 부정적인 현실 세계를 의미하게 되는 데에 비해, 이것이 C, E, G 등이 아닌 다른 것, 이를테면 ‘돈을 많이 버는 전문 직종’, ‘시간 부족’, ‘많은 양의 일’ 등과 계열화를 이루게 되면 전혀 다른 의미(‘열심히 일했다’ 등과 같은)를 뜻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이 시의 시어 각각은 그 자체로 고정된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어 간 관계와 그러한 관계에 내재되어 있는 계열화의 구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를 표상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상은 역으로 B-D-F-H의 관계와 이로부터 생성되는 의미 차원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봄」에서 각각의 시어들이 관계하고 계열화를 이뤄나가는 데에 맞춰 개인주체와 현실 세계 간 대립 및 갈등과 이에 대처하는 ‘숙이’의 태도가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4연에서 우연적으로 발생한 하나의 사건, 즉 ‘숙이의 종종걸음을 살랑 띄우고 가는’ ‘봄바람’의 이미지 작용 때문이다. 여기서 ‘봄바람’이 부는 사건이 현실 세계의 부정성과 이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태도의 긍정성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숙이’와 관계하게 될 때, 그를 둘러싼 두 개의 의미 계열축(부정과 긍정)은 변별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특이성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봄바람’은 ‘숙이’에게 놓인 부정성과 긍정성 어느 쪽과도 직접 상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두 개의 의미 계열축을 따라 ‘숙이’는 질적으로 변화할 뿐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 속에서 확인된다. 과연 ‘숙이’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이에 대한 답으로는 여러 가지가 주어질 수 있다. “겨우내 많이도 기다린 이 봄”과 같은 시구에 주목한다면 긍정적인 답이 내려질 수 있다. 이때 ‘봄바람’은 희망적인 미래를 환기시키는 이미지로 작용한다. 그러나 만약 “착하게 성실하게 모든 것을 견뎌 보겠노라”라는 시구에 주목한다면 부정적인 답이 내려질 수 있다. 그는 부정적인 현실 세계를 견디기만 할 뿐 극복하려는 의사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봄바람’은 그를 향한 위로나 위안을 환기시키는 이미지로 작용한다. 한편 이러한 질적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의 측면은 어떠한가. 그것은 수와 양의 차원에서는 측정 불가능한 강도성을 띠고 나타난다. “봄바람이 살랑 띄우고 간다”라는 시구 중 ‘살랑’에 주목해보자. 그것은 본래 가벼운 운동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더욱이 이것이 ‘봄바람’이 부는 사건과 관계하고, ‘숙이’의 미래에 관한 앞선 물음과도 관계한다는 것에 다시 주목한다면 여기서 ‘살랑’이 뜻하는 가벼운 운동의 정도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길은 요원할 뿐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주어진 강도상의 차이로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기존의 부정적인 현실 세계보다는 긍정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부정적인 현실 세계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는 없는 그 어떤 정도가 ‘살랑’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의 양상일 것이다. 따라서 ‘봄바람’ 이미지를 통해 이 시는 다양한 의미의 차원을 펼쳐 보일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표출되는 정서 또한 특정한 것으로 고정되거나 규정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두 편의 시를 놓고 시에서 언어가 어떻게 객관대상을 그려내고, 시어가 자아내는 이미지가 어떻게 의미와 관계하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시 언어는 인간 의식 밖에서 고유하게 존재하는 객관대상을 그것 자체의 이미지 상태로 구현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민중시처럼 특정한 목적과 의미가 강조되는 시편에서조차 이미지는 다양한 의미를 생성하며 이때의 이미지는 특정한 것으로 고정되거나 규정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결과가 모든 시에서 똑같은 크기로 나타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의 본령이 정서 표출에 있고, 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거나 규정될 수 없는 이미지의 작용 과정과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의미 생성의 다차원에 대한 주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의미를 찾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펼쳐지고 생동하는 이미지를 느끼는 것이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나누는 사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