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0-11 08:55
[이상국 칼럼] 확률과 대칭의 문제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35,322  


[이상국 칼럼] 확률과 대칭의 문제

"벼, 변수야." 입술까지 창백해진 카플란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어떤 결론도 낼 수 없는 어떤 것. 과거에서 온 인간. 컴퓨터가 분석할 수 없는 인간이야. 변수 인간!" 

- '변수 인간', 필립 케이 딕 

1.

필립 케이 딕의 변수 인간은 지구와 센타우루스 은하 제국 간의 전쟁을 다룬 경력 초기의 중편 소설이다. 지구는 센타우루스에 대한 공격 시점을 결정할 때 컴퓨터가 완벽하게 계산해주는 승전 확률이 1/2이 넘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하지만 물론 계산에 포함하지 않은 요인 때문에 전쟁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간다. 하지만 완벽하게 정확한 확률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할까? 얼마 전에 쓴 글에서 관찰할 수 없는 내재적 성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살펴본 적이 있는데 (참조:초기값과 내재적 성질) 확률과 통계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확률과 통계는 수학에서의 정의, 응용수학에서의 정의,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대화속에서 의미하는 바가 각각 다르고 전문가들 조차도 용어를 혼란스럽게 사용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정의하여 다루기가 매우 힘들다. 그나마 통계를 ‘과거의 관찰에 대한 요약’으로 정의하고 확률을 ‘미래의 사건에 대한 가능성의 수치화’라고 정의하면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이런 혼란스러운 개념들을 최대한 아우를 수 있을 것 같다. 통계가 현재의 관찰에 대한 내용도 포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현재에 대한 관찰은 불가능할 것 같다. 관찰이 된 사실이라면 이미 그 사실은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률을 정의하면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났을 확률'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어진다.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날 확률'만 말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와 바둑알로 홀짝 게임을 한다고 했을 때 친구가 주먹에 쥔 바둑알의 개수가 홀수일 확률은 얼마일까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주먹에 쥔 바둑알의 개수는 홀이거나 짝이거나 이미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확률을 따지는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 내가 홀이라고 개수를 찍었을 때 그것이 맞을 확률은 얼마일까라는 질문도 의미가 없다. 홀이라고 이미 찍었다면 더 이상 확률을 따질 수는 없다. 친구가 홀이나 짝을 이미 선택했다면 유일하게 확률을 따질 수 있는 질문은 '내가 임의로 홀 또는 짝을 찍었을 때 그것이 맞을 확률은 무엇인가'라는 것 뿐이다. 반면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홀짝 맞추기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를 든 것 뿐이다. 때문에 이런 이야기 속에서는 확률이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하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친구가 주먹에 쥔 바둑알의 개수가 홀수일 확률은 1/2인 것이다. 시험에 나오는 확률문제에서 과거와 미래를 따질 필요가 없는 이유도 이런 이유이다. 시험 문제나 이야기 속의 시제는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이 아니라 조건형이다.

하지만 이렇게 확률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말하는 확률과 실제 확률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확률 및 통계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거의 항상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기상청에서 내일 비가 올 확률이 50%라고 했을 때 혹은 통계를 냈을 때 신뢰수준 95%에서 유의 범위가 얼마얼마라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매우 알기 어렵다. 신뢰수준에 대해서는 통계청의 통계학 용어 소개 페이지에도 간단하고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끔은 전문가들까지도 혼란을 겪는 경우가 있는 것 같은데 마릴린 폰 사반트가 몬티 홀 문제에 대한 바른 설명을 했을 때 수학 교수들까지 말도 안되는 공격을 한 것이 흥미로운 예이다. 사실 몬티 홀 문제는 그렇게 복잡한 문제도 아니고 답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금방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은 확률적으로 생각하도록 진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복권 숫자를 고를 때 '3,7,11,23,25'를 골랐다면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내가 '1,2,3,4,5'를 뽑았다면 왜 그렇게 가능성이 없는 숫자를 뽑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확률에 대해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2,3,4,5'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어떤 숫자 조합도 똑같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확한 사고방식이다. 아무튼 앞서의 정의 하에서는 확률은 관찰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서술이라고 볼 수 있고 그렇다면 예전의 논지와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통계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만 확률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따져볼 수 있다. 


2.

하지만 확률이 존재하지 않을 리는 없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펴보면 맹백히 확률과 통계라는 장이 있는데? 감히 수능에 나올지도 모르는 개념인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니 너무 무엄한 얘기가 아닐까?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 확률이 ½ 이고 주사위를 던져 6이 나올 확률이 1/6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인가? 물론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올 확률은 1/2이고 주사위를 던져서 6이 나올 확률은 1/6이다. 하지만 이런 확률 문제들에는 한가지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다루는 대상이나 사건들이 모두 '대칭'이라는 점이다. 대칭은 일반적으로 좌우를 뒤집어도 똑같은 그림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들 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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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일반적으로는 무언가를 바꾸어도 전체적인 면에서 변화가 없는 것을 대칭이라고 부른다. 보통 동전은 앞뒤를 바꾸어도 똑같고 주사위는 숫자들을 바꾸어도 똑같다고 말하는데 이 때 똑같다는 말이 바로 대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대칭은 물리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물리학에서 여러 보존 법칙과 같은 기본 원리나 심지어 소립자들과 소립자들 간의 힘조차 모두 대칭과 대칭의 파괴에 기반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주사위는 앞뒤가 똑같기 때문에 앞이 나올 가능성과 뒤가 나올 가능성이 똑같고 따라서 각각의 확률은 1/2가 되고 주사위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6이 나올 확률은 1/6이다. (좀더 정확히 따지자면 동전이나 주사위를 잡거나 던지는 방법도 대칭이 되어야만 이런 확률을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따지면 얘기가 너무 복잡해질 것 같으니 무시하도록 하자)

3.

그렇다면 대칭이 아닌 경우는 어떨까? 찌그러진 동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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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한 주사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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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대칭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확률을 어떻게 구할까? 약간 복잡하기는 해도 어떤 고도의 계산을 통해서 확률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방법이 존재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칭에서 멀어질수록 확률이라는 개념은 점점 더 불명확해지고 무의미해진다. 이는 기술적인 오차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확률이 미래시점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고 우리가 신과 같은 관찰 및 계산 능력을 가진다고 해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이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우주가 기계적이거나 양자역학적이어야 이런 주장을 펼 수 있다.

4.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라플라스를 또다시 끌어들여서 미안하지만 라플라스가 가정하는 기계적 우주에서는 현재의 우주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면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만약 이런 우주에서 실제로 우리가 모든 정보를 갖고 있다면 미래는 하나의 경로로 정해지기 때문에 확률은 의미가 없다. 주사위를 던질 때 이미 그 주사위가 어떻게 움직일지 확실하게 안다면 결과는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래에 대한 서술은 과거에 대한 서술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라플라스의 논리에 따르면 이런 우주에서 확률이 의미가 있는 것은 정보의 부족 때문이다. 즉 우리가 우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보가 없다고 해도 기계적인 우주에서는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의 부족이란 현재 우주의 상태에 대한 정보의 부족과 현재와 우주의 관계에 대한 역학적 관계에 대한 정보의 부족을 말할 것이다. 여기서는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의 부족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아래 그림에서 가운데 공을 떨어뜨렸을 때 공이 왼쪽 구멍으로 들어갈지 오를쪽 구멍으로 들어갈지 확률을 계산해보자. 공의 위치가 5.0보다 작으면 즉 왼쪽으로 치우치면 왼쪽 구멍으로 들어가고 5.0보다 크면, 즉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오른쪽 구멍으로 들어간다고 해보자.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은 공의 현재 위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최대한 5.0에 맞추긴 했지만 정확하게 5.0일 수는 없고 (연속적인 실수값중에서 임의의 값을 취했을 때 그 값이 어떤 특정값을 가질 확률은 0이다. 경우의 수가 무한이기 때문이다.) 위치값은 5.0보다 크거나 작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공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특별히 치우칠 이유가 없다면 공이 왼쪽으로 들어가거나 오른쪽으로 들어갈 확률은 모두 1/2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렇게 쉽게 확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두 개의 구멍이 대칭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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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 개의 구멍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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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가운데 구멍과 양쪽 구멍은 상당히 다른 처지에 놓인다. 어떤 의미로 봐도 대칭은 파괴되었다. 물론 양쪽 가장자리의 두 개의 구멍 사이에는 대칭 관계가 존재한다. 만약 우리가 현재 상태와 미래 상태의 역학 관계를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예를 들어 공의 위치가 5.1 이상이면 오른쪽 구멍으로 들어가고 공의 위치가 4.9이하이면 왼쪽 구멍으로 들어가고 4.9에서 5.1 사이이면 가운데 구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보자. 이 경우 공이 왼쪽 구멍으로 들어갈 확률은 얼마일까?

왼쪽 구멍과 오른쪽 구멍은 대칭관계에 있기 때문에 왼쪽 구멍으로 들어갈 확률과 오른쪽 구멍으로 들어갈 확률이 같다는 것은 합리적인 추정이다. 그러나 가운데 구멍과 왼쪽 구멍 사이에는 대칭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체적인 확률은 커녕 가운데 구멍으로 들어갈 확률과 왼쪽 구멍으로 들어갈 확률 중에서 어느 것이 클지조차 알기 힘들다. 대체로 이런 경우에는 공의 위치에 대한 확률 모델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공의 위치가 4.9 이하일 확률은 10%, 4.9에서 5.1사이일 확률은 80%, 5.1이상일 확률은 10%,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결과에 대한 확률도 그대로 정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위치에 대한 확률 모델의 근거는 무엇인가? 현재 상태에 대해 이러한 확률 모델을 정하기 위해서는 현재 상태에 대한 꽤 정확한 정보가 필요가 필요하다. 정보가 부족하다면 그럴듯한 값을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적당히 찍은 값이 그대로 구멍에 들어갈 확률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현재 상태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확률을 따질 필요가 없이 역학적인 계산으로 백퍼센트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상황이 조금이라도 비대칭이 되면 확률 계산은 무의미해진다. 

5.

기계적인 원리를 따라 움직이는 우주는 20세기에 그 종말을 맞았지만 일상의 스케일에서 보면 우주는 여전히 기계적인 원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인다. 때문에 기계적인 우주에 대한 분석이 전혀 의미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긴 해도 이제 아주 작은 스케일에서는 기계적인 원리, 즉 뉴턴 역학적 원리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스케일에서의 분석은 궁극적으로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것이 확률적으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앞서의 논지가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양자역학에서 관찰 이전의 상태가 확률적이라는 것은 벨의 정리에 대한 검증을 비롯한 많은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때문에 상대성 이론으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세계관을 흔들어 놓은 아인시타인조차 죽을 때까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양자역학에서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관찰 이전까지는 말이다. 관찰 이전과 관찰 이후의 확률 분포의 변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설명을 찾지 못했고 어쩌면 영영 찾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위해 어떤 물리학자들은 셀 수 없이 많은 관찰 불가능한 우주까지 도입하기도 하는데 이는 상당히 무리한 노력처럼 보인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양자역학적 스케일에서는 분명히 확률이 존재하지만 이것이 거시적인 스케일까지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소립자들의 상태에 대한 확률분포는 거시적인 스케일에서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대부분 사라지고 그런 영향까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스케일에서의 관찰 능력이 거의 신의 수준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능력이 있다면 이미 확률은 필요 없는 개념이 될 것이다.

만약 앞서 정의한 대로의 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확률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 생각에 현실 속에서 확률이 어떤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값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개념이 이를 대체해야 할까? 한가지 가능한 방향은 확률을 '통계적 관찰에 대한 요약'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확률이 이렇게 정의된다고 보는 사람이 꽤 많은데 사실 이런 정의도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통계라고 하면 관찰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서술 밖에는 가능하지 않다. 때문에 사람들이 확률이라는 단어에서 기대하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은 배제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선택적 관찰의 문제이다. 만약 모든 경우에 대해 관찰이 가능하다면 통계적 분석은 필요가 없다. 어떤 상품에 대해서 전수조사를 한다면 불량률을 정확하게 (물론 관찰 상의 오류 때문에 백퍼센트 정확할 수는 없지만 그런 오류는 보통 무시할 만하고 현재의 논의에서는 다룰 만한 것이 아니다)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수조사가 가능한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 자동차의 안전 시험을 위해 모든 차에 대해 충격 시험을 실시한다면 팔 수 있는 차는 한 대도 없을 것이다. 여론 조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에 대해 조사할려면 영원히 조사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조사할 사람을 정하는 과정이다. 이상적인 경우라면 완벽하게 무작위로 조사 대상을 골라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수집 수단의 제약, 조사하는 사람들의 편견 등의 이유로 무작위로 대상을 고르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조사 결과와 실제 간에 엄청난 간극이 생기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통계에서 말하는 95%의 신뢰 수준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 현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또한 이론적으로 봐도 완벽한 무작위란 가능하지 않다. 어떤 무작위인지도 주관적 판단이 들어갈 수 없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 중에 베르트랑의 역설이 있다. 문제는 무작위로 원의 현을 선택했을 때 그 현의 길이가 특정 길이(구체적으로는 내적하는 정삼각형의 한 변의 길이)보다 길어질 확률이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인데 잘 정의된 수학 문제처럼 들리지만 이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구하기는 어렵다. '어떤 무작위'를 말하는지에 따라서 확률은 달라진다.(1/4에서 1/2까지 거의 아무값이나 답이 될 수 있다) 주사위나 동전처럼 아주 단순한 대칭이 아니면 이상적인 경우에도 무작위라는 말은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상적인 상황에도 무작위 선택이 어렵다면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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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 분석은 과거에 대한 서술이지만 때로는 근원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에 소개된 예를 들자면 담배를 피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지 여부에 대한 분석이 있다. 담배와 폐암의 인과 관계는 이제는 상식이 되었지만 과연 그 관계를 통계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책에 따르면 현대 통계학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로널드 피셔의 경우 담배를 피는 것과 폐암 간의 인과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통계 결과에 따라 둘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확실한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인과 관계를 증명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무작위로 두 그룹을 선택해 한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담배를 피우게 하고 다른 그룹에 속한 사람에게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실험을 해야 하지만 이는 도덕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실험이다. 따라서 피셔의 반응은 학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상관관계가 있다고 해서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사람들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 사고 과정에서는 그런 말이 잘 반영되지 않는 현실을 볼 때 피셔와 같은 자세는 오히려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확률을 보는 또 한가지 방법은 확률을 그냥 미래에 대한, 혹은 내재적 성질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주관적인 의견이라고 한다면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베이즈 확률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베이즈 이론이 얼마나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해주는지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는 대로 좀더 자세하게 생각해보기로 하자.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백프로 정확한 미래에 대한 서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측은 절대 불가능하고 미래는 항상 불확실성 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불확실성에 숫자를 부여함으로써 무언가 미래에 대한 좀더 확실한 정보가 있는 것 같은 환상을 가지려 한다. 그러나 그 숫자는 현재의 상태에 대한 정보의 부족에 대한 서술을 나타내거나 때로는 그저 주관적 의견을 나타내는 숫자에 불과함을 대부분의 경우 미래에 대한 근사적인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와 미래의 대칭

미래는 예측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사실 먼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다. 왜냐 하면 그런 예측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유행한 사피엔스라는 책 마지막 부분을 보면 미래에 대한 황당한 예측들이 조금 나오는데 그에 대한 반박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다. (책의 앞부분이 꽤 흥미로워서 뒤부분에 대한 실망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책의 저자가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그런 황당한 예측들을 모아 책으로 내놓았다.)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고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사실 전문가랍시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내놓는 경우는 많지만 사실 그 예측이 맞았는지 따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측을 할 때 그저 오늘의 운세 쓴다는 기분으로 해도 커리어에 크게 지장은 없는 것 같다. 이런 예측은 대부분 잘 살펴보면 미래가 과거와 똑같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즉 대부분의 예측이 과거와 미래가 대칭이라는 가정 하에서 이루어진다. 내일이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꽤 합리적인 생각이다. 가장 적중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쓸모없는 예측이기도 한데 정작 필요한 변화를 예측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극희 발생 빈도가 낮지만 발생하면 큰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들인데 예를 들어 자연 재해 같은 것이 그 예가 되겠다. 이런 것은 정의 상 확률모델로는 분석이나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관측의 스케일과 복잡계의 문제가 관련이 있을 텐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 이 글에 대한 권한은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이상국 칼럼] Aporia Review of Books, Vol.4, No.10, 2016년 10월, 이상국,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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