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4-17 09:56
[김선욱 세상보기] 아렌트와 하이데거
 글쓴이 : 아포리아
조회 : 26,054  


[김선욱의 세상보기] 아렌트와 하이데거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아렌트와 하이데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는 참 많이 있을 테지만, 나는 이 두 사람의 연애 사건 만큼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2002년에 《한나 아렌트의 정치판단이론》이라는 책을 쓴 뒤에 CBS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해서 약 40분 정도를 대담을 갖고 이 책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다. 인터뷰 끝 무렵에 사회자가 약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던데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두 사람의 연애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왔으나, 나는 그런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할 것이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며 간단히 줄여 버렸다. 일요일 12시, 별로 청취율이 높지 않은 시간에 하는 방송이어서 청취율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주제였기에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와의 다정한 관계를 가졌던 어린 기억을 가진 아렌트에게 부성과 이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연배에다 철학의 매력을 몸으로 체현하여 보여주는 하이데거의 끄는 힘은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고, 철학의 맛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강사로서 자신의 말에 공감하며 남다른 명민함으로 놀라운 이해력을 보여주는 예쁜 여제자인 아렌트의 매력도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서 두 사람의 관계를 다소 적나라한 언어로 설명을 한다거나 상상력을 발휘하여 둘 사이의 있을 법 한 스토리를 메이킹하는 따위의 것, 나아가 두 사람의 이성으로서의 관계가 이들의 철학적 연관성의 근거가 되는 듯이 말하거나 혹은 그 관계로 모든 것을 수렴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말하는 이의 품격의 깊이나 관심사의 소재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학문적으로 주고받은 내용은 그 두 사람의 철학에 깊이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던 독서가나 학도들에게는 흥밋거리가 되겠지만, 그 자세한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은 이 칼럼의 재미를 위해서는 삼가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언급해 두고 싶은 것은,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명성을 갖게 된 정치철학자인 정화열 교수가 두 사람의 차이점을 말한 것이다. 내가 번역한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발문을 부탁하여 얻은 글에서 그는, 하이데거가 인간에 대해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하려 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렌트는 인간에 대해 '탄생성'이라는 생명의 탄생과 관련된 개념을 갖고 설명하려 했음을 언급하였다. 한 사람은 죽음을 향하여, 다른 사람은 새로운 탄생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은 정반대의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렌트의 주저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와 하이데거 사상의 깊은 친화성을 느꼈던 나로서는 큰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의 차이는 현실 인식에 대한 깊이의 차이다. 하이데거가 젊은 학자 시절에 나치에 찬동했고 그 입장을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유를 가볍게 설명하여, 그의 아내가 프러시아 장교의 딸이었고 그녀의 정치적 야심에 하이데거가 깊은 현실 감각이 없이 따라갔다고 하는 식의 말은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다. 물론 깊은 철학적 사색에 침잠했던 하이데거가 현실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갖고 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렌트가 정치의 영역과 철학의 영역이 서로 상극과 같은 것처럼 설명했을 때 하이데거의 예를 중심에 놓고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렌트가 정치적 판단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인간의 정신적 기능인 '판단력'의 중심에 공통감, 혹은 공동체감각( sensus communis)을 놓았을 때, 이 감각은 현실을 제대로 읽어내는 감각, 하이데거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던 그 감각을 말하는 것임도 분명했다.

아렌트의 저술을 꼼꼼히 읽는 독서가들(아렌트 학자는 말할 것도 없고)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그녀의 저술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다보면, 그녀의 탁월한 감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탁월성은 바로 현실을 정확히 읽어내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과, 현실을 정확히 읽어내는 탁월한 감각을 바탕으로 철학적 문헌들을 대하게 되면, 그 문헌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렌트의 탁월성은 바로 여기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책상머리에 앉아서만 작업하려하지는 않았던 나로서는, 하이데거가 범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아렌트처럼 현실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문헌들을 독해해 내는 능력을 갖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작업처럼 보인다. 작년 대선에서 다수의 선택을 받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공안 정국이 한국의 정치사에서 새로이 똬리를 틀어가는 시점에서, 페시미즘에 빠지지 않고 아렌트가 했던 것처럼 학문적으로 정확히 과녁을 맞힌, 정문일침의 개념적 작업을 꺼내놓기가 그토록 힘겹게 느껴지니 말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김선욱 세상보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2,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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